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지기
요즘에 유행하는 MBTI에 의하면 나는 INFP이다. 사실 그런 검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용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생각이 많고, 멀찍이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금이야 사회화가 많이 되어 다소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모임에서 별 주제 없이 나누는 일상 대화, 소위 ‘스몰토크‘ 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주기적인 모임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도 인물 초상화였다. 부족한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정말 많이 관찰했다. 요즘 간단한 드로잉 할 때도 주로 사람을 그린다. 사람과의 만남이 부담스럽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즐거웠다. 나만의 시선으로, 속도로, 적당한 거리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지칠 때가 있다. 정말 힘들 때는 사람을 그리고 싶지 않다. 애정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흐른다. 그 에너지조차 고갈되면, 다시 채우기 위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혼자 산책을 하거나, 카페 한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멍하니 고요를 즐겼다. 그래야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다시 생겼다.
작년 이맘때. 한창 더워지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 지친다, 진짜.’
너무 힘든 날이었다. 바쁜 학기말에 성적처리와 온갖 업무의 마무리로 정신없었다. 더워지는 날씨와 방학을 앞둔 아이들의 들뜬 분위기로 교실은 산만해졌고, 잔소리할 일도 많아졌다.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고, 집안일에 아이들 챙기는 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게다가 비는 왜 그리 추적추적 계속 오는지.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감정이 상처받을 때 더욱 지친다. ‘왜 나만’, ‘왜 우리한테만‘ 억울함과 피곤함이 뒤섞였다.
드로잉북을 펼쳤다. 평소처럼 인물 사진을 참고자료로 찾았지만, 30분이 지나도 도저히 고를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가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그리지 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멍하니 휴대폰 화면만 하염없이 쓸어 올렸다. 그림이 힘들어진 걸까, 아니면 내가 힘들어진 걸까.
그때였다. 손가락을 멈추게 한 한 장의 사진-설산이었다.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 색색의 노을빛이 반사되어 흰 눈이 아닌 오색으로 빛나는 풍경. 노을 지는 따스함과 서늘한 눈의 온도가 느껴졌다. 바로 그리기 시작했다. 오일파스텔로 꾹꾹 눌러 칠하는 동안, 바쁘고 복잡했던 마음이 그 풍경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람으로 지칠 때는 자연스럽게 사람이 아닌 것에 마음이 간다. 산, 바다, 하늘, 나무, 혹은 동물에게로. 그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에게서 받지 못하는 사랑과 위로를 다른 존재로부터 받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인류는 지금까지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상처받는 순간, 마음은 그를 지운다.
사람으로 지칠 때는, 잠시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가족이나 아이, 또는 소중했던 사람들에게서 잠시 멀어져도 괜찮다. 지나친 신경 씀에서 벗어나자. 자연에게, 혹은 고요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자. 그렇게 잠시 떨어져 있어야 다시 다가설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