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론이 뭐예요?

닉네임, 또 다른 정체성

by 케이론

​“케이론이 무슨 뜻이에요?”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선이 연결되던 시절, 나는 ‘케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처음 연결되었다.‘케이론’—30년 가까이 내 이름 옆의 또 다른 닉네임이다. 쓴 지가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하이텔, 천리안 시절부터였다.

초임 시절, 처음으로 PC통신을 접했다. 지금의 인터넷과는 달리, 전화선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뚜뚜뚜, 삐~ 소리와 함께 모뎀에 접속되었다. 그 소리가 마치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는 신호처럼 들렸다. 뒤가 튀어나온 모니터 안에서는 명령어를 기다리는 작은 커서가 깜빡인다. 뭐든 호기심으로 처음 접하면 홀딱 빠지는 나는 한동안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려면 닉네임이 필요했다. 뭘로 정할까 고민됐다. 그즈음 읽고 있었던 그리스 신화에서 찾은 닉네임이 케이론이다.

"케이론? 괜찮네. 케이론!"

의술과 예언, 음악, 사냥에 능한 현자 케이론. 그가 영웅들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그에게서 내 미래의 빛을 보았다. 영웅을 가르치는 현자의 모습이 막 교단에 선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름 원대한 의미를 담아 닉네임으로 정했다. 미래의 작은 영웅들이 될 아이들을 가르치는 멋진 스승이 되고 싶다는, 신규교사다운 원대한 꿈이었다. 너무 거대해서 처음엔 무슨 의미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닉네임을 말할 때마다 항상 교사로서의 꿈을 떠올렸다. 이 별명은 이후 바뀐 적이 없다.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SNS에서도 자연스럽게 '케이론'을 쓰게 됐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영상을 올리던 유튜브 채널도 자연스레 케이론샘으로 정했고 실명을 쓰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이 닉네임을 사용했다. 이제는 누군가 ‘케이론샘’이라고 부를 때, 내 이름이 불리듯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또 다른 나의 깊은 이름이 되었다.

온라인상의 닉네임은 자신을 감추는 가면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희망사항을 담아 정해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남에게는 적당히 낯설면서 내겐 스스로를 잊지 않게 하는 이름이었다.

요즘엔 닉네임을 대충 짓기도 한다지만 나처럼 의미부여된 닉네임도, 별 의미 없이 정했다가 그 자체가 그 사람을 표현하는 간판이 되는 별명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닉네임을 보면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 이름을 짓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을 표현하기도 해서 흥미롭기도 하다. 나처럼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따서 짓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의미 없이 말장난처럼 짓기도 한다. 익명성이 당연해진 시대에 닉네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스스로를 다시 소개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름은 나를 부르는 소리, 닉네임은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당신의 닉네임은 무엇인가. 어떤 꿈을 부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