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치를 찾는 법
해무가 가득했던
그날의 바다는
작은 배 한 척만으로도 충분했다.
텅 빈 공간이 가득 찼다.
-케이론
어느 겨울, 남편과 함께 궁평항에 갔다. 오랜만의 느긋한 하루였다. 밥도 먹고, 따뜻한 커피도 마시며 여유를 한껏 즐겼다. 부둣가로 산책을 나간 건, 잔뜩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는 핑계였다.
그날 바다는 유독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해무가 수평선을 삼키고, 하늘마저 흐려 온통 안개빛이었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경계가 사라진 풍경은 신비롭기보다 혼란스러웠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안갯속이었다.
온통 하얗기만 한 공간 속에서 바다라는 걸 알려준 건 저 멀리 보이는 점 하나, 작은 조각배였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네.”
“그러게, 저 배 아니면 바다인지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없어 혼동스러운 때, 바다를 드러내준 건 그 작은 존재였다. 그 하나가 하늘과 바다를 나누고, 내 시야에 세상의 질서를 주었다.
존재 하나로 세상을 완성하다니. 그 울림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왔다. 내가 혼란스러울 때 나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주는 단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늘이 가지지 못한, 바다의 속성을 알려주는 한 척의 작은 배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 단 한 사람의 믿음과 지지로도 충분하다.
문득 버티고(vertigo) 현상이 떠올랐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밤이나 구름 속에서 자칫하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잃는다. 위인지 아래인지, 심지어 자신이 뒤집혀 있는지도 모른 채. 이 때문에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추락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눈앞의 감각이 아니라 계기판 하나를 믿는다. 혼돈스러울 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 하나의 기준, 그것이 사는 길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감각이 흐려지고, 시야가 가려질 때, 내 안의 ‘계기판’ 하나만 있다면 충분하다. 내 위치를 알려주는 믿음직한 사람, 또는 내 중심을 붙드는 기준. 그 하나가 있어 비로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한다.
해무 속에도 길은 있다.
그날의 작은 조각배처럼, 폭풍우 치는 내 안의 바다도 고요해지면서 방향을 드러낼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