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시작
어려서부터 내 왼쪽 엄지가 싫었다. 짧고 통통한 손에, 옆으로 퍼진 납작한 손톱까지 더해져 도무지 예뻐 보이지 않았다.
“넌 엄지손톱이 왜 그렇게 생겼어?”
철없던 시절, 동네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 올 때면 손을 뒤로 숨기며 입을 다물었다. 뭐, 손톱이 납작한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부끄러웠다. 그나마 괜찮은 오른쪽과 달리, 왼쪽 엄지는 유난히 납작했다. 짝짝이인 그 손이 늘 마음에 걸렸다.
새벽 버스를 타고 중고등학교를 등하교하던 시절,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도 항상 오른손을 내밀었다. 다른 손가락은 손잡이 아래로 감춰져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게 엄지손가락이었다. 왼손을 쓰면 납작한 엄지가 드러날까 봐 창피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써야 할 때면 엄지손톱을 다른 손가락 밑으로 숨기곤 했다. 불편했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스스로 자꾸 감추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우연히 내 손톱을 보고 말했다.
“어? 우리 이모도 이런 손톱인데. 이런 손이 손재주가 진짜 좋대. 너도 그렇잖아.”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웃자 다른 친구들도 와서 엄지손톱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아니야, 우리 엄마도 그랬어.”
“와 진짜 납작하다. 나도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
잡혀있던 엄지손가락을 빼면서 숨기자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친구의 말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보기 싫던 손톱이 처음으로 다르게 보였다. 괜히 자꾸 내 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 작은 손재주들이 진짜 이 손톱에서 온 걸까 근거도 없이 상상해보기도 했다. 사실 손톱 모양으로 무슨 재능이 발현된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자꾸 보다 보니 감추던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내 엄지손톱을 본 사람들에게 가끔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온라인수업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어느 날, 어딘가에서 그 수업 영상을 본 대학 친구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나인지 어떻게 알았어?”
“엄지만 봐도 넌 줄 알았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 영상에서 유일하게 나온 손을 보고 바로 나인 줄 알았다니! 이후로도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던 몇몇 대학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납작하다고 감추던 손이, 이제는 나를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 되어 있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나의 왼손 엄지손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덜 두는 방법을 배웠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도 일부러 얘기한다. 선생님 엄지손톱은 정말 납작하다고. 하지만 이 손으로 모든 걸 다했다고. 손톱이 납작하다고 못할 것도 없고 좋은 일, 궂은일은 모두 이 손이 다 해냈다고. 그리고 내 손이니까 좋아한다고.
그림 그릴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손을 그리곤 했다. 오른손잡이이니 항상 왼손을 그리게 된다. 바라보고 바라본다. 찬찬히 관찰한다. 손 모양대로 서서히 연필을 움직인다. 손톱의 모양대로 짧고 납작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움직였다. 고생했다. 내 손.’
때로는 뭐, 어때하는 마음으로.
특이했던 나의 왼손은 어느새 지문처럼 내가 되어 있었다. 납작한 손톱을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지금이 좋다. 그건, 나를 사랑하게 된 첫 번째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