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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Nov 16. 2024

대영이_세 번째 이야기

후루룩후루룩 루루루루

후루룩후루룩~


오직 이 소리만이 주방을 가득 매웠다. 창밖에선 후드득 빗소리가 들리고 정원에 있는 나무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런 순간에 이렇게 맛있는 짜파게티를 먹는 기분이란!


"뭐... 쫌... 맛있긴 하네?"


"야~ 쫌 맛있는 거 치고는 너무 싹싹 비운 거 아니냐? 후후~"


"뭐래~ 음식 남기면 복 떨어진다고 할머니가 늘 그랬거든?"


"그럼 난 요리했으니깐 설거지는 네가 해라~난 이만 올라간다~"


"이것도 요리라고~ 알았다. 알았어. 내가 한다."


대영이 녀석은 이마에 난 땀을 한번 쓱 쓸어 올리고는 욕실로 향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너무 졸려서 눈이 감기고 있었지만 설거지를 다 마치고 바로 소파로 직행해서 누웠다.



(대영이)의 속마음


"뭐야... 자는 모습도 귀엽네... 토끼다... 토끼... 야... 미우... 너 진짜 날 기억 못 하는 거냐... 허긴... 내가 좀 존재감이 없긴 했지... 늘 조용했으니까... 그러다 전학 갔고... 난 늘 너만 봤는데... 네가 보고 싶어서 혼자서 서울로 온 거야... 나 그동안 진짜 많이 외로웠거든... 캐나다에서 엄마 아빤 늘 바빴고... 근데 넌 원래 수다스러운 애였는데 왜 이렇게 조용해진 거냐? 뭐 어쨌든가... 난 그때의 너도 지금의 너도 좋으니까... 몰라... 그냥 너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 그때나 지금이나 토끼같이 귀여운 네가... 그러니까 이제 나 그만 싫어하고 나 좀 제대로 봐주라... 응?"




자려고 누웠지만 너무 피곤해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대영이... 어렴풋이 기억 날 것도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창가 쪽에 앉아서 늘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 그래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감쪽같이 그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그런데 대영이가 그 아이라고? 말도 안 돼. 그때 그 아이라기엔 너무 많이 변했잖아.




"일어났냐?"


핫케이크 냄새에 잠에서 깼다.


"이 엉아가 솜씨 좀 부려봤지~ 넌 복 받은 줄 알아라~"


"내가... 언제... 해달라고 했냐..."


왠지 모르게 대영이가 그 아이라고 생각하니 좀 어색해졌다. 그래서 저 녀석이 나도 모르게 더 신경 쓰였나...


"그래도 네가 특별히 해준 거니까 먹어는 볼게..."


핫케이크가 정말이지 봉긋했다. 수플레 핫케이크에 내가 좋아하는 슈가파우더가 듬뿍 뿌려져 있고 그 위에 앙증맞게 블루베리가 올라와있었다. 그리고 핫초코에 생크림이 듬뿍 얹어져 있고, 그 위에 초코가루가 눈 내린 듯 뿌려져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와~ 진짜 맛있다! 대영아... 나 이거 다음에도 또 해주라~ 앞으로도 계속..."


"뭐야~ 엉아가 해준 게 그렇게 맛있냐? 그래. 얼마든지 해줄게~"


아침을 먹고 테라스 소파에 앉았다. 어디서 왔는지 방울 달린 고양이가 배를 내밀고 발랑 뒤집어져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영이는 가만히 나를 봤다. 나도 가만히 대영이를 봤다.


아무래도 나 대영이한테 반한 거 같다. 첫사랑이 이렇게 시작되나 봐...


"대영아... 나 실은 어제 네가 하는 말 다 들었어... 왜 진작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 실은.............. 네가 먼저 날 알아봐 주길..... 기다렸어... 나를 발견해 주길..."


대영이 눈에 물이 고였다.


"야~ 너 울어?... 아... 당황스럽네... 으..."


옷소매 끝을 구부려서 대영이 눈에 붙어있는 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 품을 파고드는 게 아닌가. 난 그대로 얼어버렸다. 심장이 쿵.... 쿵..... 쿵.... 귓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뛰기 시작했다. 그 녀석의 머리칼에서 나는 샴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가을날... 대영이는 꽤 한참 동안 그렇게 내 품을 깊숙이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난 이 녀석을 왠지 떼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너무 따뜻했다. 그렇게 한참을 품에 안겨있던 대영이가 두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고 가만히 날 봤다.


"귀여워~너무 귀여워~"


"뭐냥? 그만 놓지 못할까?"


"발끈하는 것도 귀여워~~ 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또 자지러진다. 이 녀석은 아마도 날 아주 많이 좋아하나 보다. 생각해 보니 대학교 입학 후에 계속 내 주변에는 이 녀석이 있었다. 늘...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우리... 오늘은 그럼 뭘 할까?"


"음... 난 오늘 그거 하러 갈 건데?"


"뭘?"


"여기 맛있는 빵집이 있대~거기 가려고~"


"나도 빵 엄청 좋아하는데~"


"그럼 나 준비하고 올게~빨리 출발하면 점심때쯤에는 도착  수 있을 거야."


"오키~나도 얼른 준비하고 올게~"


숙소 앞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빵집 앞에서 내렸다. 빵집은 소문대로 오래됐지만 깔끔하고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회전은 빨랐다. 10분 종도 기다리니까 우리 차례가 왔다. 야외 테라스가 있어서 우리는 주문을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테라스 옆으로는 나무들이 있어서 숲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빵과 핫초코가 나오고 우린 그걸 정말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배가 너무 고팠으니까.


"너 오늘은 정말 와구와구 먹는구나?"


"우웅....넘으러아ㅏㄹ 배고아러ㅏ팠어ㅡㄹ의"


"대답 안 해도 되니까 어서 먹어~하하~너무 귀여워~"


"난... 그... 사귀어 본 적 없어... 흠..."


"난... 많은데? ㅎㅎㅎ 제니~ 키디~ 등등~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는데?"


"야!!! 대영이 너~ 완전 카사노바 아냐~흥!!! 뭐야~너 같은 녀석한테 내 마음을 줄 수 없다~글렀다~"


"농담이야~농담~나 가서... 영어로 제대로 말하게 될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적응하느라 바빴어... 그럴 때마다 나... 네 생각하면서 견뎠어... 늘 반짝거리던 널 떠올렸어..."


"내가 그랬나? 헤헤..."


대영이는 태양이 해바라기를 비추듯 나를 봤다. 그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자꾸 그 눈빛 속으로 나도 파고들어 갔다.


"손 좀 내밀어 볼래?"


대영이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지였다.


"이거 내가 공방에서 직접 만든 거야... 너 주려고..."


반지는 마치 원래부터 내가 주인이었다고 말하는 듯 딱 맞았다.


"와... 진짜 이쁘다... 나 이거 항상 끼고 있을게..."


대영이는 내 손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나는... 미우 너랑 영원히 함께 할 거야... 너의 모든 미래를 함께 할 거야..."


"뭐야~벌써 프러포즈냐?"


"나... 이건 진심이야... 그러니까 잘 들어야 돼... 나... 진짜 너만 좋아했고, 계속 너만 좋아하고 있고, 너만 좋아할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대영이의 입술에 입맞춤했고, 대영이는 내가 자주 짓는 놀란 토끼눈을 했지만 곧 눈을 감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만약에 살다가 끝도 없는 어둠 속을 걷더라도 대영이와 함께라면 즐겁게 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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