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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Nov 02. 2024

대영이_두번째 이야기

"자꾸 이유가 붙어... 왜?"

봉긋하게 우유거품이 솟아 오른 핫초코가 마냥 귀여워서 보고 있는데 아니 역시 대영이 녀석은 인정사정없이 잔을 들고 후루룩 마셔버린다.


"남자아이가~"


"야~안 뜨겁냐?"


"나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아이가~캬하~"


"말을 말자~"


귀걸이까지 해서는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이 오글거리는 맨트만 해대니 너무 간지러웠다. 대영이 녀석은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지 앉고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지극히도 평범한 내 의식구조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하나_녀석이 꽤 순수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어느 날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우연히 대학 캠퍼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대영이를 발견했다. 대영이는 그때 아기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렸다. 녀석은 그 아기 고양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다 큰 녀석이 콧물까지 훌쩍거리면서... 그때 난 순간 좀 대영이 녀석이 순수하다고 느꼈다.


'남자애가 눈물도 많네... 참...'


그런 녀석이 능글능글 내 앞에서 저런 짓을 해대는 꼴이라니... 그래도 봐줄만해서 봐준다.


"야! 넌 핫초코를 눈으로 마시냐? 그러다 다 식겠다. 근데 이 집 핫초코 진짜 맛있다. 맛집 인정!"


"마실거거든~ 난 너처럼 원샷 안 한다. 품위 있게 마시지... 메롱~"


"너 지금 메롱 이라고 했냐? 짜식이~말이야~오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요 녀석이~!"


"누가? 네가 왜 내 오빠냐? 나 오빠 없거등~"


창밖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다. 가을 날씨 알 수 없다더니 하늘이 정말 거짓말처럼 잔뜩 찌푸렸다. 핫초코를 호로록 홀짝였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이 매장을 가득 메우고, 어두운 조명은 분위기를 더했다. 좀 졸렸다. 대영이가 눈앞에 있는데도 자꾸만 눈꺼풀이 감기려고 하고 있었다. 꿈속을 헤맸다. 꿈속에서 나는 할머니와 꽃반지를 만들어서 나눠꼈다. 할머니는 나비를 쫓는 내 뒤를 계속 따라왔다. 그렇게 한참을 나비를 쫓다가 바다가 나왔고, 할머니 손을 잡고 계속 바닷가 백사장을 걸었다. 그러다 잠에서 스르륵 깼다. 그런데 내가 대영이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게 아닌가. 아! 어쩌지?


"야... 어깨에 감각이 없는 것 같아... 으으윽..."


"으으윽~~~ 지금 몇 시냐?"


"한 9시쯤?"


"야! 그럼 깨웠어야지~ 난 이만... 갈게~ 숙소 예약해 놨거든~"


"야~ 미이~ 너~ 이렇게 또 혼자 가버린다고?"


"그럼 뭐 어떡하라고?"


"여자 혼자 낯선 숙소에 혼자 위험하지 않을까? 내가 같이 가줄까?"


"뭐? 네가 더 위험해~ 됐고 난 간다~"


 

밖에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숙소로 향했다.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한참을 달린 후에야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숲 속의 작은 오두막집이 수십 채가 모여있는 이곳은 숲 속의 작은 오두막집 펜션 202호이다. 숙소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고, 작은 벤치와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장비들이 한편에 놓여있었다. 안내문에 이런저런 주의사항들이 적혀있고,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비번을 누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복층구조로 되어있어 다락방도 있고, 1층 공간에는 벽난로와 러그가 깔려 있고, 한쪽 벽으로 작은 싱크대가 달려있는 주방이 있었다. 그리고 테라스로 이어진 큰 창에 투명하고 하늘 거리는 커튼이 걸려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렸다.


'정말 완벽하다.'


그때였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야! 네가 여길 왜와? 이젠 진짜 화가 나려고 한다."


대영이 녀석은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 다락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다락은 내가 찜!"


"내가 졌다~졌어~이제 너랑 실랑이할 힘도 없다. 대신 내 구역 침범하면 죽는다~!"


내가 엄포를 놓았는데, 대영이 녀석은 배꼽을 잡고 웃어버렸다.


"내가 뭐 웃긴 얘기라도 했나? 헛~ 어이가 없네. 정말."


"그렇게 토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웃음이 나오지~하하하 아이고~배 아파~하하하"


"그래. 맘대로 웃어라. 웃어. 난 너무 졸려서 이만 잔다."


"야~ 배 안 고프냐? 이 오빠가 뭘 사 왔게?"


그러더니 대영이 녀석은 품에서 짜파게티 두봉을 꺼냈다. 순간 반할 뻔했다. 내가 라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짜파게티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짜파게티를 처음 맛본 순간 어떻게 짜장면이 집에서 그것도 요리도 못하는 엄마 손에서 나오나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정말 매주 일요일이면 짜파게티를 먹었다. 요리담당은 아빠였지만 아빤 일요일이면 등산을 다녔다. 일요일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 되었다.


"음... 뭐... 좀 배고프긴 하네..."


"조금만 기다려~이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끓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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