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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Oct 12. 2024

대영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였다면'

대영이를 만난 건 대학교 1학년때였다. 영이는 유독 눈에 띄었다. 다른 남자애들처럼 우람하지도 키가 크지도 않았고 남자다움이란 1도 없는 그런 애였다. 대영이는 마른 몸에 키가 작은 편이었고,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브라이언을 닮았다. 귀 한쪽에는 귀걸이를 했는데 우리 과에서 귀걸이를 한 건 대영이가 유일했다. 나는 그런 대영이가 처음엔 그저 신기했다. 그런 외모를 가진 남자아이를 눈앞에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영향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호감이 갔던 건 아니었다. 무슨 남자애가 저렇게 기생 오래비처럼 하고 다니나 하고 속으론 비난을 퍼붓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난 왜 대영이한테 끌렸을까. 피부도 허여멀건 해서는 여자앤지 남자앤지 구분도 안 가는 대영이를 말이다.


학생이 된 나는 고등학교때 하지 못했던 걸 다 하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탈색을 하고 노랗게 염색도 했다. 그래서 반 남자애들은 나를 '예쁘장하게 생긴 애'라고 불렀다. 시골에서 자랐다고 하기에는 피부가 하얬고, 왠지 모르게 우쭐해졌지만 워낙에 낯가림이 심해서인지 늘 조용하게 의자에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기대서 자는 척을 했다. 친구가 없을 때 내가 유일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다. 별다른 리액션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나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나를 특별하게 생각했고 그중 유독 리나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야~ 같이 밥 먹을 친구 없으면 나랑 먹자~!"


리나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나는 내심 좋았지만 워낙 포커페이스에 감정내색을 안 하는 편이라 고개만 까딱했다. 그런데도 리나는 내 어깨에 자기 팔을 두르고는 나를 끌고 가다시피 했다. 리나에게서는 베이비파우더 향이 났고, 나는 그 향기만으로도 리나가 좋았다. 어렸을 적부터 삼촌에게서 나던 향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다 들일을 가거나 바쁠 때면 외동이 이던 나와 놀아주던 건 늘 삼촌이었다. 우리 집은 태생이 시골사람은 아니었다. 아빠랑 엄마가 공무원이었다가 귀농을 했고, 나는 엄마 아빠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태어났다. 그러니까 지금은 엄마 아빠가 모두 다 환갑이 된 것이다. 어려서는 대학생이라고 할 정도로 젊은 엄마 아빠들 틈 속에서 흰머가 희끗희끗한 엄마 아빠가 창피하기도 했었다. 또 외동이라서 그런지 엄마 아빠의 사랑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때로는 그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학교 수업이 끝날 때가 되면 전화를 하는 엄마랑 아빠가 조금 불편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그래 일탈 나도 일탈을 해보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나는 무진으로 가게 된 거다.

대학 1학년 가을




<엄마, 아빠... 나 1박 2일로 기차여행 갈 거야. 잘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마. 나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고!>


기차역 플랫폼


계속 전화기 진동이 울려대서 방해금지모드로 바꿔버렸다. 그러다 문자가 온 걸 확인했다.


<미이야~ 그래... 아빠는 우리 미이 믿는다. 잘 다녀와. 차조심, 사람조심 명심하고!!!>


아예 휴대폰을 꺼버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사 안이 작지만 2층에는 무인카페도 있고,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많아서 그 속에 파묻히기가 좋았다. 창가석 구석에 앉아서 평소 좋아하는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카페인은 못 마셔서 디카페인으로 한잔 뽑았다. 그리고 시럽을 듬뿍 넣었다. 달달함과 함께 느껴지는 이 자유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행복이 다 내 것인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지?'


무작정 아무 티켓이나 끊었는데, 여기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무진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열차시간 5분을 남겨두고 플랫폼에 가보았으나 역시나 연착이다. 대기열에 앉아서 하늘을 봤다. 놀라웠다. 어쩌면 저렇게 눈부시게 예쁠 수 있을까? 가을하늘은 파랗고 너무 맑고 구름은 손으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 너무 예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눈을 손으로 가리고 턱으로 머리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헉~ 누구... 세...?"


"짠~! 놀랐지?"


"아니 넌... 네가 왜 여길?"


"화창한 토요일에 집에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갈 거면 나도 데려가라~"


"내가 왜?"


"야~ 전부터 느낀 건데 넌 내가 왜 그렇게 싫은 거냐?"


"내가 언제?"


"표정에 다 보이거든? 그리고 그거 아냐? 넌 표정이 참 다양한 거... 지금은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가

내 질문에 감춘 억지 표정 훗~ 근데 너 되게 귀여워~"


대영이는 내 볼을 꼬집으면서 대놓고 이런다.


"아니 너란 앤 대체... 길게 말할 것 없고 각자 갈길 가자~"


기차가 도착하고, 계단 위에 발을 올렸다. 아니, 그런데 대영이 이 녀석도 옆 칸에 타고 있지 뭔가? 아휴 모르겠다. 그냥 모른척해야지. 운 좋게 혼자서 창가석에 앉게 돼서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을 펼치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집중이 되질 않아서 창밖 풍경들을 봤다. 이렇게 가만히 창밖을 본 적이 있었던가.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던

나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기 일쑤였다. 때로는 엄마 아빠가 과잉보호를 한 탓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그냥 나는 나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친구들은 다가와서 계속 말을 걸었고,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저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이 발그레해져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애들은 나를 좋아했다. 어쩌면 신에게 감사해야 될 일일까?  


그런데 왜 난 대영이한테는 자꾸 대꾸를 하고 싶지?


창밖풍경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드디어 무진에 도착했다. 무진에 도착하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 문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꽃무늬 두건을 쓴 할머니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쭈뼛쭈뼛하며 서서 어디에 앉을까 주변을 살폈다.


"거기 아무 데나 앉어~  뭐 줄까?"


"..."


"빼짝 말라서 누가 보면 밥한술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줄

알겠네~기다려봐~맛있는 거 해줄게~"


30분 넘게 기다리니 커다란 원형 쟁반에 반찬이 열접시는 되고 밥하고 국하고 숭늉까지 있었다. 반찬에는 내가 좋아하는 햄과 소시지 부침도 있었다.


"우리 손녀딸한테 해주던 건데 딱 내 손녀딸 같아서 해주는 거야~지금 우리 손녀딸은 해외에 있어~여기 사진 보이지? 어려서부터 똘똘하니 미국까지 가버리대..."


할머니는 손녀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얼굴에 짙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게 밥상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평소 밥을 적게 먹는데 그날따라 나는 공깃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할머니는 손녀딸 같아서 돈 안 받는다며 만 원짜리 지폐를 극구 사양했다. 그러고는...


"그냥 가끔 여기 와~내가 진짜 손녀딸 같아서 그래..."


나는 대답대신 할머니 손을 꼭 잡아드렸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밥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내가 문밖으로 나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드셨다. 그때였다. 그 녀석이 나타나서 떡하니 내 어깨에 자기 팔을 걸치더니 한마디 했다.


"야~찾았잖아~~~ 밥 먹고 있었냐"

 

"내려라... 하나... 둘... 세에~"


"알았다~알았어~"


대영이는 계속 내 뒤를 쫓았고, 한참을 걷다 보니 작고 아담한 카페가 나왔다. 나는 핫초코 생각이 간절해서 들어갔다.


"핫초코 한잔 주세요~"


"아니요~~~ 두 잔입니다. 저기 수제 생초콜릿도 종류별로 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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