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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Aug 31. 2024

연애는 선택

운명일까? 

<에필로그>



"딸~ 늦었어~ 어여 나와서 밥먹어~!!!"


원래 5분이면 준비가 끝났는데, 오늘따라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들었다 놨다 내가 뭘하는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안하던 짓을 하려니 영 어색하다. 평소 입지 않던 치마를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다 결국은 내려놓고 평소 입던 정장을 입었다. 


"우리 딸~ 오늘 뭐 약속이라도 있어? 머리에 롤을 다 말았네~ 무슨 일 있어? 허허허"


"일은 무슨...헙...늦었다! 아빠 나 밥 못 먹을 거 같아~나 갈게~"


"에그~ 또 굶고가? 그럼 가면서 이거라도 먹으면서 가~"


아빠의 샌드위치_내가 밥을 못먹고 출근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니 그럴때마다 싸가라고 미리 몇개씩 냉장고에 쟁여둔다. 아빠의 샌드위치에는 계란과 치즈 그리고 햄과 양배추와 케찹과 마요가 합쳐진 아빠표 사우전드 드레싱이 들어가는데, 소스에 뭘 넣었는지 그 맛이 또 기가 막힌다. 아빠에게 아무리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도 말해주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알아내고 말아야지. 




오늘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엘리베이터로 진입_어김없이 변호사님이 서있었다. 변호사님과 눈을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젠 잘 잤어요?"


변호사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활짝 웃으면서 아침인사를 건넸다. 


"네...뭐..."


나는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면서 변호사님을 힐끔 봤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변호사님은 성큼성큼 더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1센치도 안되는 거리에서 변호사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순간 숨이 막혔다. 그때였다. 5층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우리가 가야하는 층은 10층이었고, 우리는 더 밀착됐다. 변호사님은 팔을 뻗어서 내가 사람들에게 눌리지 않게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고는 계속 뚫어져라 날 봤다. 그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 당장 어딘가로 숨고만 싶어졌다. 그런 내 표정을 보면서 변호사님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듯 계속 입술을 앙 다물었다. 


'하...아...이제 살겠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숨이 막혔던 건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변호사님이 너무 가까이에 있으니 온몸이 경직됐다. 


'큰일났다. 정신차리자. 최가을!!! 이래가지고 변호사님하고 일을 하겠냐? 정신차려! 최가을!!!'


나는 안그럴줄 알았다. 혹시라도 사내연애라는 걸 하게 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변호사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곤두박질쳤고, 일하는 중에도 자꾸 변호사님 얼굴이 머리속에 떠올라 업무에 제대로 집중이 되질 않았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야겠다 싶어서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옥상정원에는 각양각색의 나무와 꽃들이 있고, 중간 중간 벤치가 있는데, 오늘은 정중앙에 있는 나무 그네에 앉았다. 사무실에서 타온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면서 하늘을 봤다. 벌써 입김이 나올 정도로 제법 쌀쌀해졌다. 약간 몸을 움츠리고 있는데, 뒤에서 변호사님 목소리가 들렸다. 


"가을 변호사님~ 여기 있었어요?"


고개를 돌리니 변호사님이 서있었다. 그리고 변호사님은 담요를 펼쳤다. 변호사님은 털이 북실북실한 담요를 내 어깨에 포근히 감싸주었다. 추위로 살짝 떨렸던 몸이 녹아내렸다. 


"감사합니다."


"애인이면 이런거 당연히 해야되는거 아니에요?"


나는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애인...하하하"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애인' 태어나서 처음 호감을 느낀 사람에게 '애인'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설레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너무 기쁜 나머지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났다.  


"뭐야? 가을변호사님 왜 자꾸 더 이뻐보여요?"


변호사님은 더 가까이 그리고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곁으로 다가왔고, 태어나서 첫 입맞춤을 했다. 변호사님의 입술은 갓 구워낸 모닝빵처럼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 변호사님에게 이미 푹 빠져버린 것 같다.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에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가을변호사님_좋아해요...나 가을변호사님을 너무 많이 좋아해요..."


"변호사님...저는 태어나서 이런 감정이 처음이에요. 가슴이 너무 벅차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이렇게 가슴이 뻐근하게 벅차는 감정인지 몰랐어요..."


"나도 그래요...이 나이 먹고, 연애도 못해봤냐고 하면 좀 창피하기도 한데...그동안 특별한 감정을 느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럼 우리 둘다 연애초보인거에요? 하하하"


"그래도 뭐~ 나름대로 책으로 공부 많이 했어요~하하하"


"변호사님 답네요~하하하"


11월 중순 바람이 찬데도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저어...이번주 주말에 우리 여행갈까요?"


"여행이요? 어디로요?"


"음...우리...거기 가요~ 전주!"


"전주요? 네...뭐...저도 좋아요~후훗~"




토요일 아침_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슬링백 하나를 매고 털이 북실북실한 방울모자를 썼다. 창밖을 보니 변호사님은 이미 와있었다. 엇! 그런데 이게 왠일? 후드티 색깔이 똑같았다. 누가 봤다면 딱 커플티를 입었다고 할 것이다. 순간 갈아입을까도 고민했지만 거울을 보면서 모자를 한번 더 고쳐쓰고 밖으로 나갔다. 


변호사님은 내가 등장 하자마자 후드티를 번갈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가을변호사님~ 우리 그럼 오늘 커플티 입은 거네요? 하하하"


나는 대답대신 볼이 발그레져서 미소지었다. 변호사님은 오늘도 차안에 간식거리를 잔뜩 사두었다. 오늘은 **시간 초코바를 하나까서 조심스레 변호사님 입에 넣어주었다. 


"가을씨가 먹여주니까 더 맛있네요~"


"엇~ 뭐예요? 지금 가을씨라 그랬어요? 하핫"


"이제 밖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부르면 어떨까 해서요~"


"네...그럼 저는 뭐라고 부를까요?"


"음...우리 가을씨는 그럼 '오빠~' 어때요? 흐흐흐"


"앗~ 뭐야~~~~~흠...그럼...오....아아악~ 오글거려서 못하겠어요~으으으"


"아~한번만 해줘요~~~제발~~~"


"오....빠~"


변호사님 눈에서는 정말 꿀이 떨어졌다. 계속 시선이 날 향했다. 그 시선이 때론 너무 뜨거워서 몸둘바를 몰랐다. 너무 행복한 고민인가? 후훗~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붐볐다. 길거리마다 사람들이 가득찼고, 상점에도 사람들로 꽉꽉 찼다. 평소에 그렇게 시끄러운걸 좋아하지 않아서 순간 멍하니 서있는데, 변호사님이 손을 꽉 잡더니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다. 영문도 모른채 그냥 변호사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이게 뭐하는 거지?'


어쩌다보니 내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일인가 싶고, 뭔가 얼떨떨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설렜다. 준비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니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양반집 도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채 키도 크고 훤칠한 사람이 한복을 입고 있으니 진짜 조선시대 도련님이었다면 동네 처자들이 다 울고 갈뻔 했겠다 싶어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잠시 펼쳤다. 


"오셨소~ 낭자~하하하"


"에? 도련님? 부끄럽사와요~하하하"


우리는 사진사의 요청에 따라 이리 포즈를 취하고 저리 포즈를 취했다. 색다른 경험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좀 놀랐죠?"


"네...이런 이벤트가 있을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네요~좀 당황했지만 재밌었어요~"


"그럼 더 놀랄 수도 있는데...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변호사님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상자속에는 반지 두개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가을과 수완...


"우리 이제 연인이니까 뭔가 작은 표시라도 좀 내고 싶었어요. 내가 가을씨를 너무 좋아해서 좀 앞서가는 걸 수도 있는데, 이런거 전부터 여자친구 생기면 꼭 하고 싶었거든요."


대답대신 눈물이 났다. 이 행복이 깨지면 어떡할까 걱정이 될 정도로 행복의 오름 정상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변호사님 품에 파고 들었다. 엄마 품이 이런 걸까? 변호사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그렇게 한참을 놓아주지 않고 품에 더 바짝 파고들었다. 변호사님은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한손으론 등을 가만히 감쌌다. 


"가을씨~언제 놔줄거에요?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면 나도 숨을 쉬기가 어려워요. 내 심장소리 들려요?"


"앗...안놔줄거에요~ 영원히..."


"나도 영원히 가을씨한테 붙잡혀 있고 싶네요~ 하하"


변호사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더니 반지를 끼워주었다. 나도 변호사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제 내꺼해요."


"변호사님도 이제 내꺼해요."


우리는 손을 잡고 한옥마을 거리를 해가 질때까지 쏘다녔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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