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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픈손가락 Dec 01. 2022

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하루 배움 한 걸음

인간은 순전히 오류 덩어리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세상 곳곳에는 너무나 많은 함정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오류를 이용해

이익을 얻고, 매출을 늘리려는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이를 연구할 뿐 아니라

또 돈을 들여 이곳저곳에 함정까지 파 놓는다.


자기들이 조언해 기업들이 파놓은 함정에

제법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도 속수무책으로 빠진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함정에 양발 모두를 빠트리고, 천진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보통 사람들은

나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위한

가능한 한 모든 심리점 위험을 점검했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제력 부족 때문에 또 비이성적인 행동을 거듭한다.


우리가 자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과 각오는

채소로만 구성된 식사를 힘겹게 마친 뒤

사치스러운 온갖 디저트가 담긴 디저트 카트를 맞이하는 것과 같은 위험에 늘 직면한다.

그 비싼 디저트들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 어서! 한번 살고 가는 인생인데 쓰고 보는 거지 뭐? 어때?"


운전 도중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동을 생각해 보자.

우선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

이 문자를 당장 확인할 때의 비용이나 편익,

사고를 내서 죽거나 혹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운전 도중 휴대전화를 열었다가는 어찌어찌해서 목숨을 잃은 가능성이

갑자기 그것도 매우 높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런 행동이 자기 목숨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실도 모두 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일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그 짓을 한다.


왜 우리는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할까?


만족을 유예시키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운전 도중에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불확실성,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

이외에도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감정적 요인은 너무나 많다.


이런 모든 요인이 하나로 합쳐져 인간의 가치 등식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미래 시점에서 보면, 우리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지만,

문자 메시지는 현재 시점에 존재한다.

그리고, 미래보다 먼저 현재가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초과해서 돈을 쓰고 음식을 먹는다.

또 신의 존재를 믿는 자기만의 기준을 초과해 죄를 짓는다.


유혹을 통해 우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이성적으로 마땅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본인이 실제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뼈아픈 간극이 있음을 확인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 행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텔레비전을 켜거나 핸드폰을 들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잡지를 읽거나 쇼핑몰을 걸을 때까지

우리 매일, 매시간, 도처에 깔린 유혹의 함정들과 마주한다.


이미 함정에 빠져 두 발을 푹 담그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려면,

현재의 유혹을 인지하고,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해당 유혹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의지력은 기본적으로 '노력'이란 행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유혹에 저항하려는 노력, 본능을 거부해 보려는 노력,

공짜 마시멜로나 멋진 오토바이 장비,

혹은 정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외면하려는 노력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지력에 대해

온전히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깨끗하고 신선한 채소를 사다가 식탁에 올리는 것보다

기름기가 많은 인스턴트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게 더 편하다.


자기 행동을 고치기보다 합리화하는 게 더 편하고,

가끔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게 아니라

달달한 맛을 가진 초콜릿 케이크가 잘못한 거란 이상한 논리까지 펼친다.


상황이 이럴진대 모든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가능할 리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다간 제대로 숨 쉬고 살 수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함정과 유혹 중에 하루 딱 한 가지씩만 정신 차리고 피하자는 계획을 세워보자.

더도 덜도 말고, 하루 한 가지씩만.

앞으로 전진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서도 마찬가지다.

정 힘들면, 하루 딱 한 걸음씩만 발걸음을 떼고, 주저앉는 것도 방법이다.


물속으로 깊이 잠수해야 할 때,

맨 마지막 가장 크게 한숨들 이켠 사람이 더 오래 버틸 확률이 높다.

정 힘들면, 숨이라도 한껏 들이켜 어깨 봉 세우고, 가슴도 앞으로 내밀어 보자.

세상에 맞설 기세로 말이다.


오늘 하루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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