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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픈손가락 Aug 07. 2022

삶의 중간에 서면 진지하게 다가오는 질문들

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 당신은 왜 책을 읽으려 하는가


얼마 전 수강생이 나에게 진지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강사님! 강사님은 왜 책을 읽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읽으려고 해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지만 질문을 곱씹어보고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기 보다 수강생의 진지한 태도에 나 역시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몇 마디 어설픈 얘기로 답을 때울 일이 아니었다. “흠.. 저도 좀 고민을 해 답을 드려야겠군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그날 집으로 돌아간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책을 읽으려고 하는가”, 대체로 이 질문을 따라 나오는 답들은 통상적으로 뻔하다. 책을 읽으면 좋다 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삶을 바꾸고 싶어서 라는 등의 누구나 한 번쯤 예상했던 답들이다. 그 대답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왜 읽으려고 할까? 무엇 때문에? 진짜 속 마음은 뭐지? 글을 쓰는 동안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모호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책을 읽으려는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경험들 때문이다. 실례로 그날 역시 새벽 운동에 나선 나는 밀리의 서재 오디오 북을 들으며 가벼운 런닝을 했다. 김옥선 작가의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라는 책이었다. 김옥선 작가는 58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이기도 하고, 세계 각지를 도는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에피소드는 그녀가 스위스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꿈에 그리던 스위스 스키장을 방문한 그녀, 함께 간 동료들 중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 있어 다소 무리인 고급자 코스로 안내되었다. 그녀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말 그대로 눈만 있는 허허벌판, 이곳에서 각자의 수준에 맞춰 떨어져 있다간 쉽게 서로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때문에 동행하게 된 고급자 코스는 정말 황망했다. 그 황망한 눈 덮인 벌판 한가운데 우리 두 사람 외엔 어떤 안전장치나 안전요원도 없었다. 그리고 그 흔한 가이드조차 찾을 수 없어 겁이 났다."


듣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우리 인생도 그렇네. 아무런 안전장치도 그렇다고 나를 지켜주는 안전요원도 없어. 어릴 땐 늘 곁에서 보듬어 주시는 안전요원 같은 부모님이 계셨지만 우리가 조금 더 크면 부모님 곁을 떠나야 하니까. 훗날 좋은 친구를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며, 그 사람과 결혼까지 생각하는 건 아마 인생의 안전요원을 다시 가져야겠다는 무의식의 발로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 누군가의 안전요원이 된다? 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네.”


내가 지금 당장 스위스 스키장에 간다고 해서 갑자기 저런 생각이 들리도 없겠거니와 똑 같은 상황을 만든다 해도 같은 깨달음을 얻을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게 책으론 가능하다. 작가의 경험이 생각으로 농축된 책 속엔 그때의 깨달음도 함께 박제된 듯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책을 읽을 때마다 스며 나온다. 이때 우린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들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내 생각을 키울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 인도에서, 죽을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어릴 적 기억에서, 멈추게 하고 싶은 행복의 절정에서 느꼈던 작가의 인생을 우린 책을 통해 잠깐이나마 대신 살아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갖게 된다.


수강생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은 대체 왜 지금 책을 읽으려고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잠깐이나마 내 인생의 시간 안으로 끌어들여 중첩시키고, 책을 읽는 동안 대신 살아볼 수 있으니까. 그것도 단돈 2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때로 운이 좋으면 그 인생의 여운이 오랫동안 삶의 향기로 남아 내게 향수처럼 풍겨질 테니 안 읽을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 삶의 중간에 서면 진지하게 다가오는 질문


어쩌다 보니 나이 50이 넘었다. 바야흐로 100세 (호모 헌드레드 : homo hundred)시대니까 나는 딱 삶의 중간에 서 있는 셈이다. 각박한 세상이라 그런지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른다.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은 즐거워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괴로워서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안 보는 사이 마치 누가 시간으로 장난치는 것처럼 휙휙 지나간다. 이런 바쁜 세상 한 가운데에서 정신 안 차리고 휩쓸리며 살다 보면, 문득 어느 순간 브레이크를 밟고 싶어진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한때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던 스님이 알고 보니 세속에 찌든 한낱 중생이었다는 사실은 자못 우리 입맛을 씁쓸하게 하지만 정말 멈추어 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목표를 정해두고 전력을 다해 뛰는 사람도, 굶주린 사자가 바짝 뒤쫒아 와 어쩔 수 없이 힘껏 뛰는 사람도 저 마다 멈출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면 결코 자의로는 쉽게 멈출 수 없는 이유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멈춘 건 정말 예기치 않은 절친한 형의 죽음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만 달렸다. 그렇게 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딱 멈춰 서고 나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충격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지고, 쥔 주먹은 온통 땀 범벅이 된다. 전화를 걸고, 형의 운명 소식을 형수에게 듣고, 울며 불며 화장터로 달리면서 쏟아냈던 숱한 후회의 말들을 난 아직도 슬로 모션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아마 오랜 시간동안 난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한 동안 난 넋이 나갔다. 정신이 출장나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단어들은 “죽음”, “예기치 않은 이별”, “후회”,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이 단어에 심하게 몰두했다. 그때부터 샤워를 위해 눈을 감으면,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땐 극심한 공포로 내리치는 물 줄기를 벗어나 몸에 흐르는 물을 미친듯이 걷어내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공황장애’라는 걸. 한동안 그런 증상은 더 심해져만 갔다.


죽음, 예기치 않은 이별 외에 제일 많이 한 생각은 “과연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 다음이 ‘지금 떠난다 해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였다. 어딜가든 이 두 가지 질문은 나를 따라다녔다. 좀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밥을 먹다 가도, 일을 하다 가도, 내가 뭘 하든 불쑥 튀어나와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 이 물음은 지독하게 반복됐다. “괜찮겠냐고, 지금 그렇게 살아도”


이제 막 그것도 간신히 경제적 궁핍을 벗어난 내게 최적의 솔루션은 역시 책이었다. 다만 그 주제가 마케팅에서 ‘죽음과 삶’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인생의 멘토가 될 만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생각보다 이 주제를 다룬 철학 책들은 많았고, 웬만한 에세이 역시 소목차 한 둘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살았던 이들이 겪어 이겨낸 소중한 경험은 내게 새 삶을 위한 동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 늦기 전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버킷 리스트’였다. 그러다 문득 내가 꿈꿨던 것들을 내 생엔 다 할 순 없다는 걸 깨닫고, 순위를 가리기 시작했다. 삶의 중간에 시작해도 늦지 않는 것들은 우선 순위를 높였고, 아쉽지만 좀 더 젊었을 필요가 있는 것들은 순위를 내려 쟁여 뒀다. 도저히 버릴 수는 없었다. 비록 도전하진 못해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좋은, 그런 꿈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내가 못 이룬 꿈은 그간 쌓아 온 노하우로 다른 젊은이들을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겁고 조급했던 마음들이 차츰 가라 앉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떠난 형이 무척 보고 싶다. "형!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거 맞지?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거지?"


■ 내가 책과 친해진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


1. 꼭 완독할 필요가 있을까?


책을 꼭 완독할 필요가 있을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강연에서 늘 하는 얘기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책 읽기를 두려워하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이유에선지 하나 같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려 한다. 이유는 사회적으로 그리 학습된 것일 수도 있고, 특별한 과거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의 완독 여부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다.


완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 말했지만 나는 다음 두 경우 완독을 적극 권한다. 첫째, 책 읽기를 처음 하면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고 할 때다. 둘째, 책의 효과를 제대로 짧은 시간 안에 얻고자 하는 경우에 그렇다.


책 읽기에서 습관은 독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껍지 않은 책을 골라 나름 애쓰면서 완독을 하게 되면, 뭐랄까 쉽게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란 게 생긴다. 나는 그걸 심지(心地)라고 부른다. 심지 혼자 있다고 양초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양초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게 중요한 심지가 생기면, 이는 곧 동기부여가 되어 다음 책을 또 집어 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새 당신은 책 없이 살 수 없는, 책이 일상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 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요령은 완독하기 좋은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두께는 얇고, 글자가 빼곡하지 않은 조금 만만해 보이는 걸 골라서 읽기 시작해보자. 응원한다.


다음은 독서 효과를 제대로 빠르게 보려 할 때다. 이 경우엔 일정 기간을 정해 양을 지켜 완독할 필요가 있다. 경험으로 보통 50권에서 70권 사이인데, 이왕이면 책 종류를 다양하게 섞어 읽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의 목적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이나 독자를 설득하는 기법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눈에 익고, 나아가 생각에 익으면 다음부터는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궤변일지 모르지만 책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다. 생각과 마음으로 읽는다. 눈이 아닌 생각과 마음으로 읽을 때 읽는 속도는 비로소 고정된 한계를 벗어난다. 소목차 제목에서 이어지는 첫 줄을 읽고, 저자가 책에서 하려는 주장이 훤히 보인 적도 있다. 순식간에 단원 하나가 그대로 읽혀 넘어갈 때의 그 기분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외에도 완독여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이를 테면 얼마 전 읽은 ‘욕망의 진화’라는 책이 있다. 어느 유튜버가 극찬을 하기에 두껍지만 사서 읽었는데 반쯤 넘기다가 읽기를 그만뒀다. 온라인 마케팅에 도움되는 진화적 관점의 인간 심리가 담겼다 했는데, 회의적이다. 누군가에겐 필요한 내용이겠지만 내 입장에선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싶은 내용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경우 과감히 완독을 포기한다.


세상에 읽을 책은 많다. 뭐를 꼭 읽어야 한다고 정해진 바도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을 꾸준히 읽어가면 된다. 또 다른 이가 칭찬했던 ‘클루지’라는 책은 완독을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을 읽었는데, 결국 얻은 것이 없었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게 지론이지만 분명히 아닌 것도 있다. 아무리 읽어도 뭔 얘기인지 모르겠거든 과감히 읽기를 멈춰라. 모든 책을 꼭 완독할 필요는 없다.


2. 깊이의 독서, 넓이의 독서


책은 깊게 읽어야 할까, 넓게 읽어야 할까? 한 분야를 깊게 읽건 다양한 분야를 넓게 읽건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일정한 독서 기간과 양이 쌓이면 한결같이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망설임으로 괜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깊이는 전문성으로, 넓이는 다양성으로 해석하고, 마음 가는 대로 골라 읽으면 된다.


2021년 발표된 국민 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로 연간 종합 독서량은 평균 4.5권이다. 지난 2019년에 비해 무려 3권이나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 증가했으리란 예상과는 달랐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깊이의 독서와 넓이의 독서를 하기 위해 3권은 너무 적다. 물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어떻게 고르느냐, 어떤 마음 가짐으로 읽느냐 지만 효과를 보기 위해선 어느 정도 독서량은 반드시 채워줘야 한다.


책을 좋아한다며 유독 소설만 즐겨 읽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소설 같은 것은 시간 낭비라며, 경제 경영 서적과 인문 철학 같은 책만 읽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읽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한쪽으로 치우친 독서가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건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중세 철학자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막스 밀러 역시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 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깊이와 넓이 고민에 빠져 망설이고 허송 세월을 보내라는 말은 아니다. 망설일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책을 읽어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하게 우리 삶 가장 가까이에 책을 두고 있는 것이다.


3. 책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소중한 책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좋지만 이런 마음이 지나쳐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과거엔 책이 참 귀했다. 그나마 활자가 발명되어 책을 찍어 낼 수 있게 되기까지 책은 우리에게 아주 귀한 자산이었다. 이런 사회적 경험이 세습 됐고, 어른들은 책에 낙서를 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것을 아주 버릇없게 생각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것저것 제한이 많으면 아무래도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법이다. 독서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주변에서 안된다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우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읽다가 책 귀퉁이에 떠오른 생각도 메모하고, 중요한 부분은 필요하면 접는다. 중요한 것은 책 안에 담긴 저자의 소중한 생각이지 책의 물리적 외형이 아니니까.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다.


지금은 에버노트 같은 디지털 도구에 더 익숙해져서 직접 책에 메모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과거엔 책을 읽다가 서슴없이 낙서를 했다. 그간 공부해 만든 내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다르면 가위표를 긋기도 하고, 마침 딱 떠오른 좋은 깨달음이 있다면 지체없이 줄을 치고 메모를 달았다. 이 메모 독서법의 장점은 메모된 곳을 펼치면 적힌 메모와 함께 당시 얻었던 깨달음이 되살아 난다는거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우면 키워드 몇 개를 적어 놓기도 하는데, 신기하게 그 단어만 봐도 당시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언뜻 겉으로 보면 지저분하게 변한 책이 그 순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해지는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와 비슷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필사“다. 글쓰기와 독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조건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과대포장이다. 일반인이 필사로 독서 습관과 글쓰기 스킬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학장 시절 흔히 내줬던 ‘빡빡이 숙제’를 떠올려보자. 그게 어디 공부가 되었던가. 처음엔 눈으로 생각을 쫓고, 손을 계속 움직이니 뭔가 도움이 된다는 착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곧 다양한 변수들이 생기며, 조급한 마음에 ‘필사’가 아닌 ‘빡빡이 숙제‘가 되기 일쑤다. 문제는 ‘필사’가 아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과 정성이 있으면 그 노력을 몰입에 더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굳이 ‘필사‘를 하지 않아도 저자의 생각이 함께 읽히는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형태나 형식에 얽매이지 마라. 무엇때문에 그 같은 일을 하는지 그 본연의 취지와 본질에 집중하라. 본질은 독서고, 글쓰기다. ‘필사’와 같은 허례허식이 아니다. 정말 아끼고 귀히 여겨야 할 것은 책 종이가 아닌 텍스트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이다. 그걸 느끼려 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란 말이다. 그게 ‘필사‘보다 백배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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