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우린 단 한 번도 같은 일상을 산 적이 없다. 생(生)은 내가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그 소중함을 몰랐던 치기어린 젊음을 뒤로 하고, 어느 새 중년이 된 나는 아직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다. 살다가 실수를 했다고 같은 삶을 두 번 살 순 없는 법, 지나고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사는 세상쯤 훤히 다 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 못내 부끄러워 자꾸 고개가 숙여진다.
새벽 운동을 나가 음악 대신 듣는 오디오 북에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서아프리카 에볼라 위기 현장에 나가 구호활동을 하는 최초의 한국인 의사 정상훈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처음엔 그냥 서울대까지 나온 의사가 참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산다 싶었다. 그런데 곧 이어 그가 두고 온 자신의 큰 아들에게 쓴 편지 서문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 한없이 어린 큰 아들을 뒤로 하고, 머나먼 타국 서아프리카 에볼라 생사의 현장으로 떠난 의사, 그리고 아빠인 정상훈의 고해성사가 음악처럼 흐른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한다는 아들을 뿌리치고,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타국으로 떠나는 소회 장면에선 저절로 이가 앙다물어졌다.
처음엔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서울대 나온 의사가 우울증이라니?” 심지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단 이야기를 듣고, 반쯤 지어낸 얘기로만 여겼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고백하는 부분에선 그냥 숨이 턱 막히고 정신마저 아늑해졌다. 한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나 달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숙인 내 눈에선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살면서 겪게 되는 상처는 흉터라는 것을 남긴다. 완전히 지우려 애쓴다고 절대 지워지는 법도 없다. 상처를 이기는 내성이 한 뼘 더 자라 예전보다 견디기 쉬워졌을 뿐 아픔의 강도는 똑같다. 잊히고 지워졌을거라 믿고 싶었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그날의 아픈 기억을 머금은 흉터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어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상처와 아픔을 뒤섞어 막대로 휘휘 저어 소용돌이를 만들어 놓으면, 심지 굳지 못한 자아는 흔들린다. 이렇게 되면 소용돌이를 벗어나야 하는데 출구 방향이 도통 감이 잡히질 않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를 조금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배양액이 바로 책이다.
처음엔 자아를 느껴 보는 수밖에 없다. 멋 모를 땐 그걸 보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 안에 있는 사람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느낄 순 있어도 볼 순 없다. 지구가 둥긂을 보려면 지구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멀찌감치 떨어져 봐야 한다. 그러니까 방법은 두 가지, 지구 안에서 바깥을 다양하게 관찰해 그로 말미암아 내가 발붙인 지구를 상상으로 느껴보는 방법과 직접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 전체 모습을 관망하는 방법이다.
솔직히 첫 번째 방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출나야 한다. 희대의 과학자나 철학자 정도 되는 상상력과 관찰력이 있어야 도전 해 볼만 한 일이다. 두 번째 방법 역시 쉽진 않지만 첫 번째 방법처럼 불가능 하진 않다. 상상해보자. 우주인이 되어 지구를 바라보기 위해 우리 모두가 꼭 스페이스 셔틀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셔틀 탑승권을 사고, 우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기본 훈련을 마치면, 직접 우주로 나가 둥근 지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스페이스 셔틀은 ‘책’이고, 만드는 건 책을 쓰는 것, 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건 독서에 견줄 수 있다.
책을 읽어 좋아지는 점은 또 있다. 책을 읽으면 있어 보인다. 많이 알게 되어 똑똑해 보인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 깨닫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없던 것들이’ 비로소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에겐 다 있는데 나만 없던 것일수도 있고, 이미 가지고 있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애초에 없던 비어 있던 것, 가려져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내가 3년간 1천권의 책을 읽어내고 그랬다. 하지만 이후 정성이 미천하여 제대로 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속된 말로 우린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아름드리 나무 밑둥이라 우기며 산다. 그렇게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전체라 믿으며 산다. 전체를 보지 못하니 뭣이 중하고, 뭣이 경한지도 모르고, 그저 어쭙잖은 기준으로 당장 눈 앞의 이익 만을 쫓아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다. 매번 너 때문에, 그리고 운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다 남탓 하기 일쑤다. 반성해야 한다. 힘들지만 애써서, 없는 시간도 쪼개고, 정성을 다 들여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본다는 것은 신의 커다란 축복이다. 그런 축복 가득한 신의 선물을 받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삶을 어영부영 산다는 건 일말의 여지없이 모두 당신 탓이다.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고? 열린 도서관을 가라. 모든 책이 공짜다. 이번엔 읽을 시간이 없다고?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라. 새벽을 활용하면 낮보다 세 배는 더 많이 읽을 수 있다.
의지박약에 게을러 터진 나도, 3년간 1천권 독서 프로젝트를 달성했다. 미라클 모닝은 1042일차, 매일 아침 글쓰기는 2,000일이 넘었다. 그러니 핑계는 금물이다. 언제까지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만 할 것인가.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어떻게 밥은 먹고, 씻고, 잠 자고, 숨은 쉬는가 말이다. 언제까지 시간이 당신을 기다려 주고, 상황이 당신을 봐줄 거라 착각하면 안 된다. 늘 하는 얘기지만 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우리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우린 주어진 지금이란 삶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