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책을 대하는 내 감정은 남다르다. 슬픔도 견디면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책에서 배웠다. 그래서일까 난 지금도 눈물 나게 슬픈 날이면 책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마치 알라딘의 램프처럼 천천히 문질러 슬픔에 대항할 지원군을 불러낸다. 내가 어딜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이유일 게다. 약속이 있는 장소는 기본이고, 이동중이거나 잠시 주어진 휴식 시간 등 난 예상 가능한 모든 상황에 맞춰 읽을 책을 준비한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놀라며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바로 차 조수석에 실린 책 가득한 리빙박스의 존재다. 나는 혹시 읽고 싶게 될지 모를 책을 서재의 책장에서 꺼내 리빙박스에 넣은 다음 조수석에 싣고 다닌다. 그런데 동행하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옆 좌석에 타려고 문을 열었다가 놀라는 것이다. 나름 관리하는 규칙도 있다. 나는 주로 몰입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장소에선 가벼운 에세이나 실용서 같은 것을 즐겨 읽고, 약속의 공백 시간이 길며 뭘 하기에도 애매한 경우엔 경영철학서나 마케팅 서적을 읽는다. 이런 스타일을 감안해 에세이, 실용서, 경영철학과 마케팅에 관한 책을 약 2:2:3:3 비율로 챙겨 갖고 다닌다.
꼭 나를 따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생활화 해보고 싶다면, 무조건 손 닿는 가까운 곳에 책을 둬라. 짬 나면 아무 생각없이 스마트 폰을 들고 유튜브 같은 소일거리를 찾는 습관부터 버려라. “마침 책을 안 들고 왔네!” 라는 핑계 대지 못하도록 사전에 스마트 폰에 밀리의 서재나 온라인에서 구입한 e북을 다운로드 해 둬라. 차 안에서 누굴 기다려야 하는 짬 나는 시간엔 오디오 북을 듣고, 만남을 기다리는 커피숍에선 무조건 들고 간 책을 펴 읽어야 한다. 몸에서 한시도 책을 떼어 놓지 마라.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린 책 한권이 어색하지 않도록 만들어라. 내 몸과 마음이 그걸 어색하게 느끼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럼 책은 조용히 빗장 열어 당신에게 ‘가능성’이란 문을 열어 줄 것이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분명히. 나는 책을 통해 슬픔을 견뎠다. 그리고 책을 통해 그 슬픔을 이겨냈다. 우리가 모르는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는 수천수만 가지의 방법이 모두 책 안에 있다. 심지어 다양한 경험자의 언어로 친절하게 적혀 있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서 이득을 얻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슬픔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우린 커다란 위로를 받게 된다. 마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오랜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교과서나 참고서, 졸업하는데 필요한 전공서적도 책이라면 읽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책’이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면 내가 책과 거리가 멀었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당시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살아가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던 것만큼 책과의 인연은 까마득하게 멀었다.
그러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실 평수 300평 대의 패밀리 레스토랑, 500평 대의 해산물 뷔페를 하게 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엔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 그것도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그렇게 큰 규모의 레스토랑을 한다는 것이 흔치 않던 터라 해결할 문제가 생기면 어디 하소연하거나 물어볼 곳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는 그 고용 비용이 상상을 초월했다. 더군다나 그런 사람들은 도통 지역 촌구석으로 내려와 일하려는 생각을 안 했다. 방법은 결국 하나! 내가 모든 걸 배우고 이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큰 규모의 사업일수록 CEO나 핵심 참모진의 역량이 곧 그 회사의 경쟁력이 된다. 그들의 판단 하나에 몇 억원을 손해 볼 수도, 몇 억원을 단숨에 벌 수도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차츰 그런 것들을 깨닫기 시작하자 난 운동선수들처럼 평소에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나가던 시절에 만나 본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책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난 즉시 그들에게 매료됐다. 멘토 삼아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했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책에서 얻기 시작했다. 닥쳤던 위기도 책을 믿고 따라했더니 금세 벗어났다. 한 마디로 책은 내게 보물 창고였다. 원하는 것을 찾는 데는 조금 품이 들었지만 당시 내가 원하는 것은 책에 다 있었다.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당장 재무제표를 봐야 했고, 인사 관리 기준을 정해야 했으며, 팔기 위한 마케팅 지식도 필요했다.
그때 알았다. 덩치 큰 조직이 재빠르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면 모든 구성원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 CEO 한 사람이 전권을 쥐고 움직이는 덴 한계가 있고, 아메바처럼 일반적인 사안 정도는 일사불란하게 독립적으로 판단,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움직이는 조직이 진짜 강한 조직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책에는 한 세대를 풍미한 걸출한 CEO와 경영 철학가들이 산다. 그런 엄청난 사람들을 자리 잡고 앉아 책만 펼치면 만날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러다가 난 뼈아픈 실수를 한다. 사업을 좀 키워보려는 욕심에 동업자를 끌어 들였고, 돈을 투자 받았던 것이 탈이 났다.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형 동생으로 지내는데 설마?’라고 생각하며 도장 몇 번 잘못 찍은 결과는 실로 참담하다 못해 비참할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단 몇 개월만에 남의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내 모든 지분을 내놓고 내가 만들고, 성장시킨 사업체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심각한 경제적 고통은 물론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내 삶은 진흙탕이 됐고, 궤멸됐으며, 아주 칠흑같이 깜깜했다.
당시 내 상태도 꽤나 심각했다.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고, 늘 불안했으며, 특정한 대상과 이유 없는 분노가 불쑥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매사 비판적이고, 염세적이었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증오했다. 폐쇄된 공간에선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었고, 몹시 두려웠으며, 죽음이 곧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나마 쉴 새 없이 채권자가 찾아오는 게 다행이었다. 채권자, 동생이란 가면을 쓴 배신자들의 행패에 난 악이 받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잠시 제정신이 돌아왔다. 상황은 비참했지만.
멀쩡한 집을 채권자에게 내어 줬으면서도 차용금 대신 집으로 변제한다는 서류 한 장을 받아 두지 않아 헛일이 됐다. 여유도 주지 않고, 쫓아내다시피 해 네 명의 가족은 서둘러 방 한 칸의 원룸을 구해 급히 이사해야 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지만 아내의 충격은 상당했으리라. 찾아오는 채권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면서도 다른 곳으로 도망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경제적 인 여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마치 공중에 붕 뜬 기분으로 현실을 살고 있어서 뭐가 뭔지 올바른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그렇게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채권자에게 어린 아이들과 아내가 봉변당하는 꼴을 지켜볼 수 없었다. 넋을 잃고 당하기만 하던 내가 순간 채권자들에게 아주 강한 살의를 느끼게 된 뒤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부모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을 다른 집으로 이사시킨 뒤 난 서둘러 가족 곁을 떠났다.
채권자들은 끈질겼다.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내가 겁을 먹고 아이들을 보러 갈 엄두를 못낼 만큼 끈질겼다. 가진 돈도 없었고, 언제라는 기약도 없으니 어디 몸을 의탁하고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PC방을 드나들 돈도 없었다. 그나마 날씨 좋은 날엔 반 노숙, 가끔 부모님이 보내오는 돈을 아꼈다가 춥거나 비가 와 어쩔 수 없을 때 난 24시 만화방 같은 곳을 찾아 들었다. 그때 알았다.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그나마 정신이 말짱해진다는 걸.
그날도 난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새벽까지 이리저리 쏘다녔다. 더 이상 걷지 못할 만큼 다리가 아파 벤치에서 잠시 쉰다는 것이 그만 또 노숙을 하고 말았다. 일어나니 마침 화장실이 급했고, 좀 씻기도 해야겠기에 난 서둘러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갈 땐 급했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오면서 천천히 둘러보니 내가 들어 갔던 곳은 열린 도서관이었다. “가만? 여긴 이용하는데 공짜 아닌가? 더우면 에어컨, 추우면 히터를 틀어 줄 테고, 시간 때울 수 있는 볼 거리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난 그날부터 터를 잡고, 거기 눌러 앉았다. 무엇보다 딸린 구내식당 밥이 양 많고 기겁할 만큼 가격이 쌌다.
그렇게 열린 도서관을 피신처 삼은 나는 처음부터 무슨 목적이 있어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소일거리로 이것저것 읽다가 어느 독서가의 호언장담이 눈에 들어왔다. “3년 1천권 책 읽기”면 구질구질한 삶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건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마침 지금 터 잡은 곳이 도서관이었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책을 300권 정도 읽었을쯤이다. 책으로 상처 난 마음을 추슬렀고, 아픔을 객관적으로 덤덤히 바라볼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난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목놓아 펑펑 울었다. 그때 알았다. 신도 내가 가여워 이 같은 ‘배려’란 것을 했구나. 더 이상은 지켜만 볼 수 없었구나. 이걸 깨우치라고 나를 넌지시 여기로 몰았구나. 우리들의 삶에 크게 관여치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은 언제나 우릴 가엾게 여긴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 고대 테베 도서관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그대의 영혼을 치유하는 곳" Medicine for the soul, 공감한다. 책들이 있는 곳이 바로 고통 때문에 흩어졌던 영혼이 스스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아픔이란 거름 위에 용기와 희망의 씨앗을 심는 곳이다. 맞다.
변화는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것이 아니다. 행운이나 기회도 원론적으로 따지면 가만히 있는 사람에겐 찾아 들지 않는 법,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강한 실행력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여기저기 난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니 조금 살만 했다. 상처가 다 아물진 않았지만 뭔가 닿을 때마다 흠칫 놀라던 따가움이나 쓰라림은 없어졌다. 당시 3년 1천권의 독서 프로그램을 막 끝내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팠고, 주어진 이번 기회가 혹시 내 인생의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급 해졌다.
변화가 가장 시급한 것은 어수선한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그나마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절제하고 있었지만 틈만 나면 흐트러지기 일쑤여서 골칫거리였다. 얼마 후 안 사실이지만 문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체질이었다. 몸은 엉망인데 옷만 잘 입는다고 스타일이 제대로 살아나겠는가. 근본적인 문제부터 바꿔야 했다.
나는 시간에 주목했다. 부끄럽지만 나이 50이 돼서야 비로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짧았고, 이뤄야 할 것은 많은데, 허락된 여유가 적었다. 가족을 위해 필요한 생활비를 책임지고 나면, 좀체 자신의 미래에 투자할 시간이 나질 않았다. 땜질이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하면 그냥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의문은 자꾸 커져만 갔다. '아니 왜~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인데, 나만 시간에 허덕이는 것 같지?' 의외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나는 인문학과 철학 책 몇 권을 샀었다. 삶의 이정표를 찾는 독서는 이후에도 몇 번 더 시도했었는데, 모두 두루뭉술했고, 문제를 찾는 개념 이해에만 그쳤다. 뭔지 알 것 같은데, 설명하려고 하면 입 안에서만 맴도는 느낌?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삶의 체질’이란 화두에 몰두해 있던 어느 날, 엉뚱하게도 문제의 해답은 ‘마케팅 이론’을 공부하다가 찾았다.
내가 찾던 해답은 ‘시간’이었다. 마케팅 분야 베스트셀러 ‘파이프라인 우화’를 공부하며, 왜 우리가 ‘시간의 한계성’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물통 나르기와 파이프라인 비교 설명을 듣다가 내가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 24시간을 36시간, 48시간으로 늘려 쓰는 방법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했다. 그때부터 나는 체질 바꾸기를 시작했고,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었다.
나는 이제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한다. “넌 어떤 인간형이니? 니 라이프 스타일은 뭐야?”, “나? 아침형 인간! 미라클 모닝러!” 대답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매일 새벽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잠이 들던, 그래서 일어날 땐 출근 시간이 임박해 헐레벌떡 이던 내가 이제 새벽 3시 반만 되면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 맞춰 새벽 길을 달리고, 준비한 잎 차를 마시며 아침을 기록한다. 참으로 신기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리고 아주 공평하게 주어졌다. 잘난 사람이라고 누가 덤으로 하루를 28시간, 30시간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한다. 반대로 못났으니 하루 19시간, 15시간만 주고, 나머지는 뺏자고 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다 똑같다. 대통령이나 일반 시민이나 하루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4시간이다. 하지만 난 이런 24시간을 하루 27시간으로 30시간으로 늘려 쓰는 방법을 찾았고,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게 존재했다.
첫 번째, 없는 시간과 숨겨진 시간, 버려진 시간을 찾아 주워 쓰면 된다. 만들면 더 좋다. 당초 난 밤 12시경 잠들었다가 출근하기 직전인 7시 반에 깨어 허둥댔다. 8시엔 회사로 출발해야 빠듯하게 지각을 면했으니 제대로 출근 준비가 될 리 없었다. 나름 깨닫고 난 후 차츰 기상 시간을 앞당겨 새벽 3시 반에 맞췄고, 그렇게 없던 아침 시간 3시간에서 3시간 반가량이 생겼다. 해보자는 욕심이 생기니 효과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 차에서 버려지는 시간, 점심 시간의 일부, 퇴근 시간, 약속 전후 기다리는 시간 등등 의외로 우리 일상엔 숨겨지고 버려지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걸 찾은 것이다. 남은 건 이제 찾아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다.
나는 찾아낸 시간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미래를 위해 공부한다. 그래도 남으면 이런저런 도움되는 공상의 세계에 빠진다. 늘어난 시간에 맞춰 라이프 스타일과 습관을 점검했다. 어디를 가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반드시 휴대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휴대폰을 놓고 다니진 않을 테니 구색 맞춰 스마트 폰에 전자책도 몇 권 담아 둔다. 눈으로 읽지 못하는 경우까지 대비해 오디오 북까지 챙겨 두면 끝이다.
책 읽기가 무료해지면 이번엔 글을 쓴다. 담아 둔 글감 가득한 에버노트란 메모 동기화 앱을 열고, 자료가 더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검색 후 추가로 웹 클리퍼를 이용해 담는다. 폰으로 쓰는 글은 깔린 블로그 앱이나 에버노트, 구글 문서 등으로 작성하며, 이를 실시간으로 동기화 해 뒀다가 언제든지 짬 날 때 태블릿, 노트북, PC 등으로 여건에 맞춰 마무리할 태세를 갖춰 둔다. 나는 집, 사무실, 기타 이동 장소에서 언제든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뒀다. 화장실도 빈 손으로는 안 간다.
두 번째, 압축해서 쓴다. 그러니까 효율성과 가성비를 따져 쓴다는 말이다. 찾거나 주운 혹은 만든 시간을 이번에는 압축해서 효율적으로 써보자. 일명 ‘가성비’. 쉬운 예로 요즘 필자가 푹 빠져 있는 잠 그러니까 수면법이 있다. 나는 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술까지 끊었다. 물론 담배도 안 피운다. 이유는 짧게 자더라도 양질 그러니까 좋은 잠을 자고 싶어 서다.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잠의 양을 충분히 채워 줄 수 있다면 난 숨겨진 시간 또 하나를 찾아내는 셈이 된다. 그런 노력으로 최적화된 나의 수면 시간은 4시간 반이다.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 반을 기준으로 깬다. 이외에 좋은 수면 상태로 빨리 빠져드는 수면 음악을 듣고, 빛을 차단하는 안대를 쓰고, 수면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합쳐지면 적은 시간을 자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잠의 양을 채운다.
다음은 시간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시간 관리의 개념을 일과에 도입하는 것인데, 나는 ‘뽀모도로 타이머’라는 것을 쓴다. 깨어 있는 시간을 1시간 단위로 모조리 쪼개 쓰는 방법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행하는 모든 업무와 약속 시간 등 주어진 모든 일과에 타이머를 사용한다. 스케줄 관리용 구글 캘린더와 조합해 써도 좋다. 그런데 뭐가 좋으냐고? 한 마디로 집중이 잘 된다.
대뇌 생리학자들의 연구 논문에 의하면 인간이 연속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60분에서 90분이다. 이것도 사실 충분한 연습과 노력을 해서 어떤 경지에 올라선 사람들의 이야기고, 학생이나 일반인은 20분에서 30분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전부다. 이 점에 착안해 나는 집중력이 제대로 유지되는 ‘평균 집중 유지 시간’만큼 일을 잘게 쪼개서 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지루할 만하면 뽀모도로 타이머가 울리고, 바로 이어서 다른 일로 옮겨 가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 방법으로 전자책을 5권 썼고, 170페이지 분량으로 2권을 더 쓰고 있으며, 지금 이렇게 POD 종이책까지 쓰는 중이다.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글 쓰고,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누구에게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할 만큼 많이 읽어대고, 써 댄다. 그렇게 많은 독서량과 콘텐츠 발행양이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낮엔 강의와 컨설팅을 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일이 다 되느냐고 묻는다. 자꾸 묻지 마라. 된다. 집중하면 된다. 제대로 집중하는 요령을 알면 된다.
내 글을 꾸준히 읽어 온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과거 내 별명은 의지박약이었다. 그런 나도 됐다. 나이 쉰 둘을 먹고, 의지가 약했던 중년의 사내가 했다면 여러분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려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지 하려고 하는데도 안 되는 일이란 없다. 마음 가짐을 바꿔라. 나는 당신이 꼭 용기내서 다시 한번 도전하길 권하고 싶다. 서둘러라! 당신의 미래가 당신을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