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 가기로 한 후 풍경만큼이나 먹거리들을 기대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식빵 전문 베이커리 자회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대표를 맡고 계신 셰프님이 말씀하시길 일본의 식재료(밀가루, 우유, 계란 등)의 퀄리티가 워낙 높다고 한다. 퀄리티가 높다는 건 단순히 품질이 높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1년 365일 그 품질이 유지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단다. 그래서 한창 일본산 먹거리에 대한 염려가 높아질 때도 홋카이도산 밀가루의 대체품을 찾지 못했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원래도 많이 가공된 음식보다는 원물을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품질이 좋다는 홋카이도 식재료에 관심이 갔다.
실제로 마트, 음식점 혹은 호텔 조식을 먹을 때에 보니 '북해도산'이라고 적혀있는 상품들이 많았다. '북해도산' 단어가 주는 품질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먹어보니 그럴만했다.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에어비앤비에서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하며 꽤 다양한 홋카이도산 재료들을 맛보았고 만족스러웠다.
우선 계란. 첫날 도착하자마자 간 마트에서 가장 싼 10구짜리 계란을 샀다. 10구가 250엔(한화 2,5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4알은 계란프라이, 6알은 삶은 계란으로 먹었는데 신선함이 정말 끝내줬다. 계란은 노른자가 색이 진하고 봉긋할수록, 흰자도 깼을 때 풀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젤리처럼 형태가 잡혀있는 게 좋다 했는데 홋카이도의 계란이 딱 그랬다.
우유와 치즈는 최고. 홋카이도 산 일반우유에서 한국 유기농 우유의 맛을 느꼈다. 치즈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래서인지 유제품 계열인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요거트 등은 다 맛있다. 일본에 가면 편의점에서 푸딩 등을 많이들 사 먹지만 그보다도 기본 우유나 요거트, 요구르트 등을 먹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웨딩촬영에 과일샷을 찍을 만큼 과일을 좋아하는 나와 우리 가족. 홋카이도는 과일 중에서도 멜론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마다 한 조각에 450엔에서 500엔 정도에 조각멜론을 팔고 있었다. 우리도 도미타 팜에서 900엔을 주고 두 조각을 사 먹었는데 과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아쉬운 양이었다. 그런데 마트에 가서 보니 한통에 1,200엔 정도면 홋카이도산 멜론을 살 수 있었다. 조각 멜론이 8분의 1 정도 하는 양이었으니 마트에서 사 먹는 건 그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다! 과일을 좋아한다면, 혹은 숙소에 두고 며칠간 먹을 시간이 된다면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일본 과일값이 비싸게 느껴졌는데 멜론은 그중에 저렴한 편이었다.
관광지에선 비싸게 팔리지만 마트가면 만원정도면 메론 한통을 먹을 수 있다!
그 외의 추천은 초당 옥수수와 마트에서 사 먹은 이 팥떡이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야채코너의 1번 자리의 주인공은 옥수수였다. 개당 100엔 정도였는데 작년 뉴질랜드 여행 때의 끝내줬던 옥수수가 기억나 한 개만 사서 전자레인지에 5분을 돌려서 먹었다. 깜짝 놀랐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그 어떤 과일보다도 높은 당도를 자랑했다. 돌아오는 날에는 전자레인지 사용이 번거로워 생옥수수 말고 그 옆에 포장된 익힌 옥수수를 사 먹었는데 바로 찐 생옥수수를 따라가진 못했다. 그리고 마트를 둘러보던 중 발견한 이 팥 더미의 떡을 호기심에 사 먹어보았는데 이것도 적당한 단맛과 찹쌀 밥알이 살아있어 좋은 간식이었다. 홋카이도 산 팥으로 만들었다는 설명 아래 여러 마트에서 발견된 걸 보니 꽤 유명한 향토 음식인 것 같았다. 보통의 찹쌀떡이 흰 찹쌀 안에 팥소가 들어있다면 이 떡은 그게 뒤집어진 모양이다. 겉이 팥소이고 그 안에 쫀득한 밥알찹쌀이 들어있는데 참 맛있어서 두 번이나 사 먹었다.
여행중 보신다면 한번 도전해보시길!
해산물은 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저 마트 회와 할인하는 해산물 몇 종을 숙소에서 구워 먹었을 뿐인데 멋진 해산물 플래터 파티가 됐다. 할인하는 가리비, 새우, 오징어가 참 달았다. 마지막날 숙소였던 호텔은 조식으로 홋카이도산 재료들로 셀프 카이센동(회덮밥)을 만들어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따로 카이센동 식당을 가지 않았던 우리에게 좋은 대안이 됐다. 조식 사진이 호텔 정보 사진의 1번을 장식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일본 전국 호텔 중에 조식 분야에서 4위를 한 곳이라고 한다.
꾸밈은 없지만 맛좋았던 해산물 파티
내가 만든 조식 카이센동
이렇게 마트에서 욕심나는 재료 혹은 음식들을 사다 보니 3박 4일 여행 중 식당에서 식사는 3번밖에 하지 못했다. 홋카이도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칭기즈칸 양갈비 구이나 스아게 수프카레, 유명한 라멘집은 근처에도 못 갔다. 유명한 카페라도 가볼라 했더니 대기가 50팀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위에 말한 것들을 먹느라 배가 차있었고 여행 후 몸무게를 재보니 2kg가 쪘다. 좀 덜 먹어야지 했는지 38.5도까지 열감기가 끓은 덕에 자동으로 하루동안 절식을 했다. 아침에 다시 재보니 원상태다. 글을 쓰며 3박 4일의 여행 중 먹은 음식을 돌아보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맛있는 도시다. 결국 음식이 맛있으려면 식재료가 좋아야 한다는데 그런 관점에서 홋카이도는 분명 좋은 식도락 여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