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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in love, Bali

2025 8월의 발리여행

by heeso

여러 이유로 고민했지만, 다시 오지 않을 32살 여름을 붙잡기 위해 발리표 비행기표를 끊었다. 머무는 휴양보단 돌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했던지라 나의 목적지에는 휴양지가 드물었다. 여행계획을 다 J가 짜기도 했고, 원래 여행 가기 전 크게 설레지 않는 편이라 (휴가 3일 전부턴 일이 손에 안 잡혔지만) 큰 기대나 지식이 없었는데, 이번 일주일간 내가 만난 발리는 실로 아름답고, 친절하며, 심지어 맛있는 삼박자가 딱 맞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었다.

지난 5달간 차곡차곡 모아 온 나의 월차를 붙여 7박 9일의 일정을 만들어 우붓, 짱구, 짐바란을 방문했다. 첫날밤 도착 후 우붓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낯설고도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보며 특별해 보이지 않는 발리가 왜 이렇게 유명해진 거지란 의문을 가졌었다. 바다가 파란 것도 아니고, 열대우림과 계단식 논이 그렇게 특별한가?

하지만, 바로 그다음 날 밤부터 나는 발리와 사랑에 빠졌다. 서양사람들이 왜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지, 왜 이곳이 디지털노마드들의 성지가 되었는지 점점 더 이해하게 됐다. 각 지역이 가진 그 고유의 매력과 그걸 잘 가꾸고 여행객들에게 잘 전달되게 하는 발리사람들의 탁월함이 어우러진 곳이 발리였다. 내가 만난 발리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소통이 잘되며, 응대와 응접에 탁월했다. 또 한 가지 발리 음식이 토종 한국인 입맛인 내 입맛에 딱 맞는다는 점과 어딜 가도 뜨거운 이 8월에 발리는 정말 쾌적하고 시원했다는 점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였다. J는 친절이 과도하다며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그들의 미소와 반가운 인사와 안부가 고마웠고 친절이 담긴 호의에 마음이 보들 해졌다. 휴양을 누려보자며 예약한 5성급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각종 투어들의 값이 만든 친절이었다라도 나는 그 서비스 정신이 감동스러웠다. 덕분에 나의 7박의 여행은 마치 2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풍부하고 풍성했다.

호텔, 에어비앤비, 리조트에 3박, 2박, 2박을 머물렀는데 모든 숙소마다 수영장과 테라스가 있어 마음껏 수영을 했다. 얼마 전 처음 배운 다이빙 연습도 실컷 했다. 난생처음 2m 풀도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수영했다. 깊은 물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장소라는 점도 발리를 떠올리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다.

래프팅을 함께하게 된 중년부부는 저 나잇대 부부가 단둘이 자유여행을 한다는 점에서부터 특별해 보였지만, 4명의 자녀가 있고 그들이 데리고 인도, 중국, 캄보디아 등을 한 달씩 여행한 놀라운 이력이 있어 그 이야기를 듣느라 왕복 3시간이 넘는 래프팅 장소 이동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택시투어 한국어 가이드로 만난 발리인 우피는 4개월 차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의 언어실력과 나의 온갖 호기심을 최선을 다해 채워주려는 노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 역시 새로운 한국 문화와 단어를 배워갔다. 그 외에도 숙소, 식당, 상점 등에서 만난 (길가에서 만난 두리안 아줌마조차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거의 모든 발리사람들과 심지어 다른 여행객들도 언제나 미소를 띠고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땡큐에는 언제나 마이 플레저라는 답이 따라왔다.

인도네시아와 발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지식을 알게 됐다. 네덜런드령으로 약 300년을 보냈고 그 이후 한동안은 일본령이었다는 점. (그래서 발리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7억 명이며 (세계 4위) 대다수 이슬람을 믿지만 발리는 힌두교를 믿어 돼지고기요리가 발달했다는 점. 발리의 하우스키핑은 주로 남성이 담당한다는 점. 그리고 발리만의 특별한 문화인 네피나 수박 등등. 또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발달이 안되어 있어 사람들이 잘 걷지를 않으며 설탕을 좋아한다고 한다. 당뇨병의 영어단어인 diabetes이란 말도 인도네시아어에서 찾은 단어라 한다. 또, 인도네시아 어가 세계에서 배우기 가장 쉬운 언어라는 것도.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 풍경들, 새로운 문화, 언어들이 흥미롭고도 따사로웠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사진을 다시 보는데 마치 한참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분명 내가 보낸 시간은 일주일인데 첫 여행지였던 우붓 사진을 보니 한 달도 더 된, 아주 먼 옛날을 보는 것만 같다. 아무래도 발리 곳곳에서 만난 손이 많은 힌두교의 여신이 그 길고 긴 손가락으로 내 시간을 엿가락처럼 쭈욱 늘려놓았나 보다.

모든 여행지의 매력을 찾아내는 게 나의 장점이지만, 진심으로 발리는 다시 오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긴 여행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일주일의 여행이었다. 여유가 될 때 꼭 그 기억들을 정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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