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독서 연말정산
작년 연말, 새해에는 J와 양서를 정해 한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그 소감을 나누기로 했다. 여러가지 일이 겹쳐 넘어간 달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좋은 책을 골랐고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도움과 개인적인 호기심, 그리고 왕복 2시간의 전철 출퇴근이 내 앞에 차려진 덕에 올해 총 12권의 책을 읽었고 추가로 한권의 책을 또 읽는 중이다.
1. 군주론
아주 유명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에피소드를 말한다면, 십여년전 서울대 수시 모집 전형에 인상깊게 읽은 책 3권을 써내라길래 '군주론'을 써낸적이 있다. 구술면접에서 몇개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기억나는 것이 '군주론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란 교수님의 질문이었다. 실은 읽긴 읽었으나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던 책이었고 당시 대학 입시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로 준비가 부족했기에 제대로 답을 못했던 것 같다. 그 느낌점을 잘 말했더라면 아마도 서울대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인걸까라는 마음과 이탈리아의 역사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마키아벨리 이름를 보며 2025년의 첫 책으로 추천했더랬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지식과 경험이 는 상태에서 본 군주론은 여전히 어려운 책이었는데, 그래도 로마사를 알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다시 보니 마키아벨리가 끊임없이 예시로 드는 나라들과 군주들의 스토리를 알아야지만 이해가 가능한 책이었다. 그가 말한 군주의 조건, 리더의 조건이 매우 훌륭해서 라기 보단, 그 누구도 정리해내지 않았던 현실적인 리더의 조건이 불편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구된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리더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정답을 말해준다기 보단 질문을 던지는 책이고, 그 질문이 아직까지 유효하기에 거의 400년 전 쓰여진 이 책이 사랑받나 보다.
2. 데미안
이 책 또한 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청소년 시기 필독서라 하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어려운 책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메세지가 청소년기에 알아야 하는 매우 핵심적인 메세지임은 틀림없다.
3.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J의 추천. 평소에 잘 안 읽는 주제인 정치철학에 대한 책이었는데, 진보와 보수가 각자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지를 아버지 모형으로 보여주고 프레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결국 같은 것을 어떤 관점, 어떤 프레임으로 보여주는가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후 어떤 상황을 마주할 때 아버지 모형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4.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5. 일의 감각
시험과 취업적응을 이유로 함께 읽던 독서를 잠시 멈추고 가볍게 읽던 책을 찾아 읽었다. 앞의 세권을 모두 꾸역꾸역 읽어냈기에 이렇게 책읽기가 쉬울수가! 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조언도 있는 책이었다. 내게 10억이 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것인가란 질문이 세속적인 질문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그려볼수 있는 질문이라는 걸 알게됐고 그 답을 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 하며 사는 삶에 대한 존경을 느끼게 한 책이기도 하다.
6. 이기적 유전자
다시 나의 추천. 최재천 박사님의 유튜브를 보며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고전은 명불허전. 어려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 세울수 있는 책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불명확했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다. 누군가는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지만, 난 그보다도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 책 내용으로 설명될 수 있음에 놀라며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실제로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많은 경우에 저 이기적 유전자의 렌즈를 끼면 설명이 명쾌해지는 것이 많다. 요즘 또래의 최대의 화두라 할수 있는 짝을 찾는 일에 당연 저 주제를 생각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생명체는 결국 생존기계이며, 좋은 짝을 찾기 위해서는 성적 매력 어필이 필수적이라는 분명했지만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졌던 생각이 사실은 과학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7.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8.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좋아하는 작가를 고르라면, 당연 박완서 작가님을 꼽고 싶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기에 어릴적부터 작가님의 글을 읽을 기회가 종종 있어왔다. 언제나 그 솔직하면서도 따듯한, 그러면서도 신랄한 그 문체를 사랑해왔다. 대학시절에는 휴학을 내고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내내 읽고 싶단 생각을 진지하게 할만큼 그녀의 글을 좋아했다. 참 맛깔나는 문장, 그 안에 담긴 따듯한 시선, 그런 문장으로 기록된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일제 말기부터 6.25 전쟁의 그 시기를 보며 마음이 서럽기도, 슬프기도, 따듯하기도 했다. 이번엔 특히 고향을 잃은 마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더이상 장미꽃농원에 갈 수 없다면, 가족들을 만날 수 없다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재밌게 본 드라마 '졸업'에서는 "왜 어른들이 너희들에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꼭 읽히게 하고 싶어하는지를 생각해봐"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우리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는데 정말 좋은 책이 분명하다.
9. 행복의 기원
행복 심리학자인 서은국 교수님의 책이다. 유퀴즈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에 회사 교육 사이트에서 이분의 강의를 한번더 보게되었다. 올해 유독 많은 부고를 접하며 죽음과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행복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가 인상적이었고, 책에서 말하는 행복의 압정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투자를 하게 됐다. 작고, 잦은 행복을 즐길줄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 작은 배려로 다른이들의 행복을 챙기는 것. 등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조언들이 많았고, 실제로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그 방향에 맞닿아 있어 나의 가치관이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약간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강의와 책을 꽤 많은 이들에게 추천했는데 그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10. 혼모노
밀리의 서재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본 오디오북이다.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책이라고 언급하며 유명해진 책인데 오디오북으로만 서비스가 되었다. 전문 성우들이 감정을 담아 연기하듯 읽어주기에 출퇴근길 전철에서 오히려 더 좋기도 했다. 단편소설집이었는데 최근 화두가 되거나 혹은 주변에서 한번쯤은 들었거나 보았을만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 한편의 소설이 끝나면 그 인물들의 상황이나 선택, 그 감정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들은 소설이었는데 리뷰를 보니 취향에 맞지 않았다는 후기도 많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소설에서 말하는 주제들이 내가 한번쯤 생각해본 주제들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11.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어느 주말 아침, 눈이 일찍 떠져 혼자 거실에 나와 밀리의 서재를 켰다가 추천도서로 읽은 단편소설집이다. 아침 일곱시 첫번째 단편인 성인식을 읽고 혼자 눈물을 훔쳤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만날 때,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꺼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모두에겐 각자의 사정이란게 있으니까. 더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글이었다.
12.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저속노화의 선봉자, 정희원 교수가 쓴 책. 유튜브나 방송에서 강의 등은 많이 접했지만 책은 처음 읽었다. 강의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글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요즘 시끄러운 뉴스들과는 별개로 나는 그의 전문성과 저속노화 등의 개념과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에 공감한다. 힘들겠지만, 그가 마음챙김을 잘하고 그의 전문성으로 좋은 영향력을 계속 펼쳤으면 좋겠다.
13. 아비투스
누구의 추천이었는지 기억은 안나나, 꽤 예전부터 한번쯤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책이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라는 뜻의 '아비투스'. 철자를 보니 Habitus, 습관을 뜻하는 Habit과 비슷한 결이 있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지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처럼 보여지길 노력하면 실제로 그렇게 살아진다는 내 나름의 신념이 실제로 전문적으로 정리된 책이라 신기하게 읽고 있다.
얼마 전 본 강의에서 송길영 작가는 AI 시대에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냐는 질문에, 양서를 읽는 사람과 만나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실제로 양서를 통해 누군가가 평생을 받쳐 연구하고 정리한 지식들을 얻게 되고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올 한해 13권의 책을 읽었었는데 다행히도 이 책들이 말하는 좋은 삶의 방식이 나의 가치관과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좋은 책을 읽으니 어딜 가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는 장점이자 단점도 생기는데, 적절히 입을 닫을줄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어 입을 닫는 노력도 하는 중이다. (쉽지 않지만!)
좋은 책을 같이 읽어보잔 J의 제안 덕에 올해의 독서 수확이 꽤 쏠쏠하다. 그 덕에 마음 한켠이 든든하기도 하다. 저 13권의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를테니, 그만큼 성장하고 많은 연결이 내 안에 생겼으리라 믿는다. 26년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몇권 있다. 엄두를 못냈던 총균쇠나 코스모스 중 한권을 읽어보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2026 이맘쯤의 나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