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축을 늘리지 못하는가?

Save More Tomorrow™(SMarT) 프로그램

by 엄윤성

저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소비해야 할 곳이 너무 많기 때문에 크게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돈이 생기면 저축하기로 미루기 십상이다. 사실 그다음은 잘 오지 않는다. 우리는 저축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를 의지부족에서 찾는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결정을 둘러싼 심리적 비용이다.


<넛지>로 잘 알려진 세일러(Thaler)와 베나치(Benartzi)는 200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또한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전제로 Save More Tomorrow™(SMarT)라는 프로그램으로 저축을 재설계한다. 이 성과는 세일러가 202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의 퇴직연금 제도 설계에 반영되었다.


첫째, 현재 편향(Present Bias)이다. 사람들은 장기적으로는 저축을 하고 싶어 하지만, 단기적 유혹을 이기지 못해 저축을 못한다. 현재의 소비의 만족이 미래의 저축 혜택보다도 과도하게 높게 평가된다. 여윳돈이 생기거나 급여가 인상되면 바로 소비로 이어진다. SMarT는 단순한 저축 교육이나 의지 강조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저축의 결정 시점을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시키지 않으면 행동 변화가 없다고 강조한다.


둘째, 손실 회피(Loss Aversion)이다.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현재 급여가 기준점이 되고, 저축 증가는 기준점 하락을 의미한다. 저축을 늘리는 것이 마치 손실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저축은 현재 소비를 위한 소득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손실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저축을 늘리기 어렵다. SMarT는 저축을 기존 급여에서 떼는 방식이 아니라, 급여가 인상될 때 자동적으로 떼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인상된 급여에서 저축을 하기 때문에 손실에 대한 인식이 제거될 수 있다.


셋째, 비활동(Inertia)과 미루기(Procrastination)이다. 오늘 말고 나중에 저축을 늘려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결정 귀찮고, 미루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미루기가 곧 현상 유지(Status Quo)가 된다. SMarT는 저축 자동 증가를 디폴트로 설정해 비활동이 오히려 저축 증가로 연결되도록 설계한다. 즉, 인간의 비활동을 역으로 이용한다.


넷째, 인지적 한계(Cognitive Limitation)와 복잡성(Complexity)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결정을 체계적으로 회피한다. 저축은 장기 수익률, 세금 효과, 은퇴 소득 등을 추정해야 하기에 인지 부담이 큰 의사결정이다. 그 과정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계산하기도 싫다.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 존재가 아닌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존재이다. SMarT는 개인에게 얼마를 저축해야 하는가를 계산시키지 않는다. 급여가 오르면 저축도 따라 오른다는 단순 규칙만을 제시한다.


다섯째, 금융 문해력(Financial Literacy) 부족이다. 일반인들은 금융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축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지 않는다. 많은 근로자들이 적정 저축률, 장기 복리 효과, 은퇴 자금 등을 잘 모른다. 무지 상태에서의 선택은 행동 회피로 귀결되기 쉽다. 금융 교육은 의식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SMarT는 금융 지식을 몰라도 괜찮은 구조를 만든다. 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후회 회피(Regret Aversion)이다. 저축률을 늘리는 것은 능동적 선택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쁘면 자기 비난과 후회가 발생한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빠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행동해서 틀리는 후회(Commission Regret)는 아무것도 안 해서 놓치는 후회(Omission Regret)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선택으로 인한 결과 책임은 행동 위축으로 귀결되어 저축을 하지 않게 된다. SMarT는 저축 증가를 개별 시점의 결단이 아니라 과거에 동의한 제도의 결과로 설계한다. 이럴 경우 후회가 약화된다.


SMarT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설계된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저축을 늘린다. 급여 인상분에서 저축을 늘린다. 저축률은 자동으로 올라간다. 언제든 탈퇴 가능(opt-out)하다. 즉, 사람들이 싫어하는 결정을 ‘현재’에서 ‘미래’로 옮겨놓게 설계된다. 분석 결과 SMarT 참여자의 평균 저축률이 3.5%에서 13.6%로 증가하였다. 저축률 증가가 근로자의 자발적 행동 변화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일러와 베나치는 저축 부족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알려진 행동편향들이 동시에 작동한 '구조적 실패' 혹은 '선택 설계의 실패'로 재정의했다. 이들은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선택 환경을 바꾸면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였다. 이 논문은 이후 넛지(Nudge), 자동가입, 디폴트옵션, 행동 기반 정책설계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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