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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ja Mar 12. 2017

평생 친구, 부부 손권찬&김영숙

결혼은 종합 선물세트, 열기 전까진 뭐가 들었는지 아무도 몰라.

최근 나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결혼'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싸우는 부부들이 부지기수에, 현실에서도 헤어지는 부부 수가 적지 않다.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나? 나이가 30대 초반이라는 이유로 "너 결혼은 언제 하니?"라는 질문을 인사처럼 듣곤 한다. 당연히, 무릇 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안하는 너는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느냐! 라는 듯한 눈빛이 부담스럽다.그래서 나는 적어도 몇 십 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한 부부에게 묻고 싶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30년 넘게 부부생활을 해온 부모님에게 결혼생활이란 과연 무엇인지 물어보려 한다. 
32년 차 부부, 손권찬(좌), 김영숙(우) 두 분을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딸내미가 하는 사소한 인터뷰 많이 보셨을 텐데, 각자 소개 한마디씩 부탁합니다. 
손권찬(이하 손))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61살, 취미로 전통 각자를 하고 있고 또 이 취미 생활을 가지고 안산시 평생학습관에 전통 각자 (나무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는 전통 공예) 강사로 재능기부하고 있습니다. 

김영숙(이하 김)) 안녕하세요. 최근에 아들을 장가보낸 예비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한 가정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Q. 사소한 인터뷰 공식 질문이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인데요. 부부 특집인 만큼, 서로를 한마디로 표현해주세요. 

손) 착한 아내. 30년 넘게 함께 살아보니 착한 사람인 걸 더 잘 알게 됐죠. 

김)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는 나무. 내가 바깥 일 안 하고 살림할 수 있게 노력해줬어요. 나를 고생 많이 안 시키려고 애쓰면서 나의 버팀목이자 울타리가 돼 준 사람이에요.


1985년 3월 신혼여행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 3월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처음 그리고 느낌


Q. 방송에서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서 후광이 보인다! 서로의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정말 내 배우자가 될 거란 직감이 왔나요? 

김) 우리는 솔직히 중매 결혼을 했거든요. 요즘 말로 소개팅이죠. 그때 당시에 제가 먼저 가서 기다렸고, 나중에 남편이 그 장소에 도착했는데, 베토벤이 생각났어요. 그 당시 장발이 유행이었거든요. (웃음) 첫인상은 나쁘진 않았고요. 후광까지는 아니고, 인상이 그런대로 참 괜찮다고 생각했죠.  

손) 참한 아가씨다. 사실은 소개를 받을 때부터 결혼 상대자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나간 거지만, 가서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고 예쁜 아가씨였어요.

Q. 부산, 서울 롱디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데이트를 하셨어요? 

손) 뭐 데이트가 다 비슷하죠.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서로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거죠. 성격부터 시작해서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나 미래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서울에서 부산으로 매주 가는 게 쉽지 않은데 사실. 어떤 부분에 가장 끌렸나요? 

김) 무엇보다 믿음이 많이 갔어요. 보통 다 큰 남녀가 같은 장소에 있으면 하트 뿅뿅 뭐 그런 순간이 오잖아요.(웃음) 일례로 남편이 늑대로 변할 수 있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때 나를 지켜주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서 믿음이 정말 많이 갔어요. 그리고 그 당시엔 결혼해서 부모님 유산 없이 남편이랑만 열심히 모아서 잘 살고 싶었는데, 성실한 모습이 좋았죠.

손) 나는 장남이었으니까 고부 갈등, 형제 우애와 같은 가족 안에서의 모습을 생각해서 성격이 순한 사람을 선호했는데 딱 그런 사람 같았어요. 또 살아보니까 사실이었고요.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참 예뻤지.(웃음) 만약 이 사람이랑 같이 살게 되면, 나는 돈만 열심히 벌면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왔죠. 연애할 때 허영심 부리는 것도 전혀 없었어요. 

결혼 생활은 롱런이다. 신혼은 몇 년 안간다.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이 변한다. 주옥같은 명언들. 1988년의 사진이다.


 Q. 처음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서로 기대했던 혹은 그럴 줄 알았던 모습들과 실제로는 달랐던 점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 느꼈던 서로 간의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이 궁금해요. 

손) 그때 당시 직장문화는 동료들끼리 저녁식사를 꼭 함께하는 문화였어요. 작은 회사였지만 일이 많아서 무진장 바쁘기도 했고. 그랬기 때문에 와이프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고생했죠. 그때는 열심히 하면 미래가 보장된다 생각했던 시기라, 내가 일한 만큼 허튼데 돈 안 쓰고 월급 다 갖다 줬으니 내 할 걸 다했다고 생각했죠. 서로 간의 그런 믿음도 있었고. 

김) 결혼하고 거의 바로 아기가 생기면서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원래 내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신혼 때 힘들었던 건, 신혼 생활을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서 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웠어요. 남편만 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너무 늦게 들어오고 그러니 저는 외로웠죠. 

- 그래도 지금은 두 분이 대화가 참 많으시잖아요. 

손)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이 많아지니까 대화도 많아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회사에 있다가 집에 잠시 와서 애 목욕시키고 회사 들어가고 그랬어요. 그리고 집안일 많이 알면 골치 아파요. 아내를 믿고 맡기는 게 좋죠. 시키는 대로 하고. 

김) 비겁한 변명인데 그건! (웃음)


주말에 우리집 식당에서 진행된 사소한 인터뷰. 어쩜 이리 사소할 수가.




부부로 산다는 건


Q. 사실 요즘 각자 사정에 의해 헤어지는 분들도 많으시고 한데, 서른 해 넘도록 부부생활을 해오고 계시잖아요. 제게는 어찌 보면 축복이죠. 부부로 산다는 건 뭘까요? 

손) 나무의 작은 싹이 터서 자연스럽게 큰 나무로 커가는 과정이랑 비슷하죠. 인생을 너무 따지면 답이 없어요. 구름 흘러가듯이, 저녁이면 해지고 아침이면 해 뜨는 그런 순리인 거죠. 거기서 더 큰 의미를 바라는 것은 종교를 통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부부로 살면서 인생의 시너지가 생겨요. 인간뿐 아니라 식물도 동물도 다 무리를 짓고 살거든요. 무리라는 건 자기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울타리기도 해요.

김) 결혼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서로가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면 아무래도 마찰이 많으니까요. 솔직히 아들, 딸이 있으니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기쁨이나 아이들에 대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옆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어요. 앞만 보며 살아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고, 그 자체가 또 감사해요. (웃음) 

아이가 생기면 부부는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한다.


Q. 살면서 가장 남편에게, 아내에게 감동했던 순간은 언제에요? 
손) 첫 아이 낳았을 때. 아들도 산모도 건강해서 정말 좋았죠. 그때 제일 좋았지. 

- 아들을 봤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손) 좋았죠. 너무 잘생겼었지. 금방 태어났는데도 눈이 또렷하고 너무 잘생겼었거든요. 잘생겨서 신기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내 돌 사진하고 비교해보니 또 정말 닮았더라고. 

김) 나는 내가 많이 아팠을 때.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원에 받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어요. 그때가 첫아이 여섯 살 즈음이었죠. 남편은 일을 해야 하니 혼자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의사가 너무 무섭게 이야기를 해서 정말 무서웠어요. 남편이 그날 일찍 퇴근하고 국화꽃 화분을 사 왔어요. 나중에 오랫동안 꽃을 보게 하려고 화분을 사 왔다고 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안아줬었어요. 그때 엄청 감동을 받았죠. 그때가 결혼하고 가장 맘껏 푹 안기지 않았나 싶어요.


Q. 살면서 가장 서로에게 미안했던 점. 혹은 과거로 돌아가서 나의 선택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손) 나는 개인 사업을 시작 안 했었으면 싶죠. 중간에 힘든 적도 있었고. 직장생활을 했었으면 지금보다 더 여유로웠을 것 같기도 하고. 가족한테도 아내에게도 미안한 부분이 있죠. 


김) 글쎄. 특별히 돌아가서 그때였다고 하면. 글쎄 첫아이가 어렸을 때 완벽하게 키우고 싶었던 마음에 아이를 힘들게 했는데… 돌아가면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첫 애가 7살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좀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 당시 내가 아프기도 했었고.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했던 게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죠.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부분을 지워버리고 싶어요. 


Q. 사실 살다 보면 서로에게 서운하고 화나는 감정들이 생길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래 보이고요.. 참 쉽지 않잖아요. 누군가와 평생 산다는 것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한테 결혼하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김) 결혼하든 안 하든 사실 상관없는데 내가 남편이랑 이렇게 살아보니까 같이 살아도 외로움을 느껴요. 혼자 살면 이보다 더 외롭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멘탈이 강한 사람이면 그런 걸 극복 잘할 텐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과정 힘들어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럴 때 가족이 옆에 있으면 굉장한 위안이 되죠. 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혼자서 외로움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손) 그야 결혼 적령기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가질 수 있듯이 본인이 결혼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백마 탄 왕자가 와도 못 알아볼 수 있어요. 결혼하라는 이야기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거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 옆에서 환기를 시켜주는 거죠. 

또 한 가지. 때가 있어요, 때가. 그때는 지금일 수도 5년 후일 수도 있어요. 가장 아름다울 때. 예쁠 때 하는 게 좋죠. 외모적인 게 아니라 마음, 건강 모든 것이 좋을 때 하는 게 좋죠. 출산을 생각하면 또 너무 늦지 않는 게 좋고. 다 때가 있는 거예요. 살아온 경험이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 


Q. 결혼 생활에는 부부 생활도 있지만 자녀와의 관계도 중요하잖아요. 아들, 딸에 대해 말해주세요. 

김) 우선 다들 건강하니까 감사하죠. 아들딸 모두 특별하게 내가 신경 쓰게 한 적이 없었던 것도 감사하고요. 가장 감사한 거는 우리 아들이 결혼했다는 게 참 감사해요. 그리고 새 생명, 우리 씩씩이(손주 태명)를 새 아가가 가져서 더 행복하고요. 평범한 일들을 하는 게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는데 우리 아들 우리 며느리는 잘해주니까 감사하죠. 아들은 평범하고 평탄한 삶을 살고, 또 딸은 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내가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으니 감사하죠. 자녀들은 내가 아닌 독립된 개체니까 애들이 자기 인생 사는 걸 존중해요. 


2015년 아들 결혼식의 모습




생각하는 노년 부부의 삶


Q. 삼십 년이면 참 오래 산 것 같지만, 백세시대라고들 해요. 아직도 삼십 년은 남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삼십 년은 서로에게 어떤 남편, 아내가 되고 싶으신가요? 
손)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죠. 서로 위해주는 친구로 지내야죠. 또 착한 남편이 되어야죠. 말 잘 듣는 남편. 장 보라고 하면 장 잘 보고, 쓰레기도 잘 버리는. 하하. 

김) 남편이 많이 변했어요. (웃음) 음 저는 글쎄요. 남편한테 좀 맞춰주고 살려고요. 우리 남편이 진짜 정리정돈에 약해요. 그런 부분이 못마땅해서 잔소리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걸 내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 각자 잘하는 부분이 다 다른데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다 정리해주는 건 아니니까 있는 대로 막 늘어놓고 그러지 마시고!! 

손) 네~~ 알겠습니다~~ 
김) 생각을 많이 바꾸고 있어요 그렇게. 

Q. 50대 후반, 60대 초반은 사회적으로 은퇴할 나이이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이 또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떤 노년의 삶을 꿈꾸세요? 

손) 나는 노후 생활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해요. 지금 취미인 각자도, 소목, 옻칠, 서예를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이런 배운 것들을 여러 곳에 재능 기부해가며 살아 가야죠. 환갑에 새 직업을 얻은 걸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 해요. 지금까지 남들 놀 때 주말마다 연마해 온 게 컸어요. 국선 작가도 되어 봤고, 무형 문화재 각자장 이수자도 되었으니 감사하고 또 앞으로도 잘 해나가야죠. 그리고 전원주택 지어서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어요. 


김) 사실 여자들이 나이 들어서 전원주택가 가고파 하지 않거든요. 우리끼리(어머님들끼리)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여자들은 나이 들수록 아파트형 삶을 원한다는 거예요. 편하고 깨끗하잖아요. 전원주택에 살면 발에 흙도 묻혀야 하고 일이 많아요. 남편이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긴 하지만요... 작은 소망이 있다면 주방에는 작은 오븐을 놓고 싶어요. 베이커리를 해서 이웃들과 나눠먹고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이제 곧 손주 보실 나이잖아요.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손) 기회 되면 언제든지 손주들이랑 놀러 가고 싶게 차를 봉고로 바꿀까요? (웃음) 나는 손주 손녀 생기면 목공은 아니더라도 서예는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 미래에는 동양철학적 세계관이 삶에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릴 때 고전이랑 연결도 되고, 손으로 직접 하는 서예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김) 남편 공방 한켠에 물레를 놓고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요. 내가 손 떨림이 적을 때. (웃음) 그때 우리 손주들이 태어나면 아이들에게 흙놀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도자기 만드는 할머니 멋지지 않을까? 손주들에게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Q. 32년간 부부생활을 해오셨잖아요. 부부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 일까요?

손) 상대방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상대방을 밑으로 보면 안 돼요. 동등 이상으로 생각해야 해요. 상대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니까 야, 소리 나오는 거거든요. 순간 ‘니가 뭔데!’ 이러면 끝나는 거죠. 서로 존중해야 해요. 

김) 평등. 부부는 평등해야 해요.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야 하고. 속에 있는 말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 편하게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사이가 돼야 해요. 

손) 결혼이라는 건 좋다, 나쁘다의 흑백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좋다, 나쁘다고 나누지 않잖아요. 결혼은 이 우주의 어떤 집합체, 종합 선물세트 같은 거죠. 열어보면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처럼. 다만 부부로 살다 보면 성격이 안 맞아서 불협화음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좋은 순간들이 훨씬 많아요. 안 좋았던 시간을 전부인 양 생각하면 안 돼요. 좋았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살아야지, 부딪혔던 부분들을 자꾸 이야기하면서 살면 삶이 빈약해져요.

Q. 딸내미에게 시집 좀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하시는데 처음에 어떤 느낌이 오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람과 만나라!라는 조언 좀. 

손) 일단 딸 마음에 들어야겠지. 건강하고. 사고 똑바르고. 그게 다예요.  
김) 살면서 친구 같은 남자 만나서 살았으면 좋겠어. 
손) 살면 친구돼. ㅋㅋㅋㅋ 
김) 아니야. 
손) 가까울 친 오래될 구! 가까이 오래된 사람이 친구야. 
김) 아니 대화 잘되고 차를 한잔 마셔도 즐겁고 서로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결혼 생활은 롱런이거든요. 

Q. 그럼 두 분께 사랑이란? 

손) 눈먼 거지. 제 눈에 콩깍지에요 사랑은. 

김) 보고 싶은 것. 계속 보고 싶은 것. 

-지금도 눈이 멀었어요? 계속 계속 보고 싶으세요? 

손) 네 많이 침침하죠. 컴컴합니다. 

김) 아니… 계속 보고 싶진 않아요. 
(일동 웃음) 
손) 가족은 가족이죠. 사람이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는 것처럼, 그런 거죠. 돌아갈 곳. 

김) 정이라고 봐야지. 정. 

Q. 후에 세상을 떠나고 나서 묘비명에 뭐라고 쓰고 싶으세요?

손) 묘비 안 쓰고 화장하고 싶어요. 산을 좋아하니까 산에 뿌려졌으면 좋겠어요. 바다는 계절이 없는데 산은 사계절이 있잖아요. 아, 설경까지 오계절. 

김) 나도 화장인데 나는 바다에 뿌려지고 싶어. 물을 무서워하는데 바다에 뿌려지면 걸림 없이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나는 한 곳에 있길 좋아하기도 하니 아들딸들이 날 볼 수 있으면 좋죠. 사실 죽고 난 뒤의 이야기는 중요치 않아요. 내가 어떤 엄마로 기억되느냐가 더 중요하지. 


첫 손주의 태명인 씩씩이 (하트) 를 해초로 남기고 행복한 예비 할아버지, 할머니

Q.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손) 감사합니다. 살아줘서 고맙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갑시다. 노력할게요. 

김) 앞으로 남은 인생 좀 재밌게 삽시다. 

손) 재밌게? 개그맨처럼~?? (익살스러운 표정) 

김) 아 코미디언처럼 말고!!


아직 나는 인생을 잘 모른다.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 살 날들도 모르겠고. 그래도 행복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행복은 언제든 만들어 질 수도 있고,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이 가장 많이 샘솟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라는 것.
부모님을 인터뷰하며 느낀 것은,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에 자녀가 관여한다는 거다. 우리네 삶이니 한발짝 물러나라고 하기엔 부모님들의 삶 속엔 늘 우리가 있다는 것을 한번 더 느낀다.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걷는 길, 그리고 새로이 만나는 자녀들과 함께 걷는 길은 이 세상을 보는 눈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아무래도 더욱 궁금해 졌다. 나도 이번 인터뷰이들처럼 순간이 소중하고 기쁜, 그런 낙(樂)을 맞이해보고 싶다.  



장마를 앞 둔 여름 날

Boyoung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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