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차 사건
[미출간본]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중학생 시절부터 흡사 중 2병을 선포라도 하듯 역사와 문학에 지긋한 반항을 했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며 그 기록이 과연 객관적이고 정확한 게 확실해요? 따지기 시작했다.
문학 시간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배우던 날도, 님을 꼭 잃어버린 조국이라고 가르쳐야 속이 후련하십니까? 천부당만부당 한 말인 줄은 아오나 진짜 여자한테 차이고 쓴 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속마음이 기어이 우겨댔다. 사춘기 못할 반항이 어디 있었겠나.
문학과 역사에 친분을 쌓지 않던 어느 날, 세계사 시간 오래간만에 블럭버스터급 사건 하나가 날 집중시켰는데, 동인도 회사가 어쩌고 영국이 저쩌고 하여, 화가 난 미국 사람들이 배 위에서 차를 던져 미국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보스턴 차 사건'이 그것이었다. 육감적 서사에 연신 지저스~을 외치며, 역시 백인들은 힘이 세구나, 차를 들어서 배 밖으로 던지다니 그들의 근육에 예찬을 보냈었다. 미국 역사에 흥미가 생길 지경이었다.
몇 년 후 대학에서 나는 미국사 교양 수업을 수강했고 자그마치 원서로 미국사를 배워나가던 그때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내 눈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Boston Tea Party라고 쓰여있는 게 아닌가?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Tea Party를 열었다고? 이것이 미국의 한계구나 싶어 혀를 내두르다가 그 차가 자동차가 아니고 마시는 차라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속을 들키지 않아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성당 다니는 친구를 만나, 나는 그 차가 그 차인 줄 알았지 뭐니 고해성사를 했더니 친구는 짤 없이 비웃었다. 미안했는지 본인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며 말하길 예전에 토지주택공사에 다니는 언니를 만났을 때 화성 쪽에 토지 매입 절차를 밟고 있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국가는 벌써부터 미래를 준비하며 다른 행성에도 땅을 사두는구나 감탄했었단다. 내 얼굴이 화성 빛깔로 화끈거렸다.
누구나 모를 수 있다. 비웃을 땐 훗날 수습이 가능할지 가늠 좀 해보고 작게 비웃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