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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Aug 06. 2021

소리의 기억력

[미출간본]웃기고 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때만 해도 유학이 지금만큼 포화 상태는 아닌 까닭에 경험하는 대다수의 것들이 특권처럼 다가와 젊은 나를 한껏 들뜨게 했고 스치는 사건, 사람 하나마다 전부 의미를 새기게 했었지요.   

   

나쯔꼬! 

우리들 사이에서 나짱으로 불리던 그녀는 피아노 전공자였는데 인연이 되려던 모양인지 한국 가요를 좋아하는 드문 일본인이기도 했어요. 노래는 또 얼마나 잘하던지 대화할 땐 개선이 될까 싶던 그녀의 엉성한 영어 발음이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부를 땐 모두가 속아 넘어갈 원어민으로 개과천선되기도 했지요. 


그녀의 차를 타면 흘러나오는 곡은 딱 세 종류였는데 대부분은 한국 여가수의 노래였고, 또 하나는 머라이어 캐리의 음반, 나머지는 제목도 이름도 모르던 일본 가수의 곡이었어요. 그 일본곡은 특히나 전주 부분이 훌륭했는데 친숙한 멜로디에 미간마저 몰입하며 빠져들던 그때 갑자기 노래 가사가 한국말로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순대찌까, 도끼도 나까데, 아나타도 메구리 아에따, 무식이네, 내가 아따 그 새끼가~.” 순대가 나올 때부터 웃겼는데 무식하다 그래서 숨이 넘어가다가 그 새끼라는 욕설에 주저앉았죠. 영문 모르는 나짱은 의아하게 절 바라봤고 설명은 해줘야겠는데 순대부터 설명이 막혀 포기하고 한참을 웃었던 사건이었어요.     


계산도 희미한 얼마간의 시간에 묻힌 채 기억에서 흐릿해진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일본 가수의 콘서트 장면 때문이었죠. 처음 보는 일본 여가수의 노래를 저도 모르게 주술 터지듯 따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일본어가 과하게 능숙하여 부르면서 죄책감까지 차올랐죠. 


주섬주섬 수년 전 순대 찌개 노래라는 사실이 떠올랐고 노랫가락에 붙어 불어나는 나짱과의 옛 기억에 그날 하루는 풍요롭기만 했습니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도 어느 날 소리 하나에 나를 떠올릴 수도 있겠구나, 이미지 관리는 끝이 없겠구나, 창창한 날씨다운 생각에 빠져봅니다. 


(문제의 일본 명곡 Everything by Misia) 


https://youtu.be/_9evy1sHB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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