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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Sep 09. 2021

나는 연입니다

연을 날리고 관계를 말하다


어릴 적 연날리기는 대나무 살에 한지 같은 종이를 붙여 직접 번거롭게 연을 만들어야 했기에 질색인 놀이 중 하나였어요. 최근 고급스러운 연을 아이의 생일 선물로 받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연을 날리러 공터로 향했죠. 


찢어질 것 같지 않은 재질에 디자인마저 화려한 연이라 내 손을 떠나기만 하면 부웅~ 날아갈 것 같던 연이 좀처럼 날지를 않는 거예요. 나쁜 연.


원인을 분석해보니 키 높이에선 바람이 불지 않고 느낌상 성층권쯤에서만 바람이 불고 있어 일단 연을 하늘에 정도껏 높이 띄워야 바람을 타고 날게 되는 거더군요. 바람이 부는 높이까지 연을 띄우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바람의 효과를 주기 위해 연줄을 잡고 달리면 됩니다. 어느 정도 안정권에 올라간 연은 바람을 타기 시작하며 날게 되는데 그때 밀당하듯 줄을 튕겨줘야 오래 떠 있을 수 있지요. 


좀처럼 연줄을 조절하며 달리고 밀당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 아이들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실망은 이르죠. 바람이 부는 날 나가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연을 놓치기만 하면 알아서 연패의 실이 풀려나가며 저절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거든요. 만 3세도 난 연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연을 날리다가 문득 인간관계를 봤습니다. 별 걸 다 보죠? 사람은 정말 혼자서는 살 수가 없구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 혼자 죽자고 달리는 방법밖엔 없는데 에너지 소모도 만만치 않지만, 혹여 성공해도 그걸 유지하기가 더 버거운 일이 되니까요. 단지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급기야 초능력을 쓴 것처럼 연이 알아서 나는 걸 보니까 난 연은 저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남들 덕에 날게 되는 거구나를 깨닫게 되었어요. 또한, 욕심이 과해 세차게 날기를 원하다간 강력한 바람에 그 유명한 끈 떨어진 연을 맛보리란 것도 알게 되었죠. 이런 걸 깨닫는 걸 보니 역시 나는 난 연!


부록으로 연패에 줄을 감을 땐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아야 하는데 자칫 느슨하게 감다간 한순간에 줄이 꼬이는 걸 경험하게 될 거예요. 연패를 버리고 싶을 만큼 꼬여있는 줄을 보고 풀고 싶은 승부욕이 솟아났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렸든 풀려고 마음먹으니까 풀리긴 하더라고요. 꼬인 건 풀면 된다는 걸 체득한 순간이었죠. 암만 생각해도 나는 난 연!





이런 심오한 철학을 되새기며 여러분의 자녀와 함께 가을바람에 능히 난 연이 되어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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