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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06. 2021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출간 일기 7편 최종회]

<출간 임박>


❖ 최종회


대망의 마지막 회입니다. 막장이라고도 하죠. 계약일 기준으로 6개월 내 출간이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입장에선 미루지 말고 원고를 제출할 의무가 있고, 출판사의 입장에선 원고를 최적화하여 출판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출간이 출산과 비슷한 고통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애 안 낳아봤구나? 출산이 오천 칠백 배 힘들어.) 아무리 힘들어도 출산에 비할 바는 아니니 출간을 꿈꾸시는 분들께 거대한 용기를 전달합니다. 왜 자꾸 돈을 떠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돈을 떠나서 엄청난 성취감은 보장 드릴 수 있습니다.


❖ 편집


갑자기 문체가 바뀐 걸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까요? 개고의 시작입니다. 글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 위해서는 리터치 과정이 필수입니다. 교정, 교열, 윤문, 필요에 따라 리라이팅이 요구된답니다.

교정 : 맞춤법, 띄어쓰기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예) 산에 가서 갑자기 똥매려워 바지에 똥을 쌋다.

⇰ 산에 가서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바지에 똥을 쌌다.

교열 :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 내용 등을 손보는 과정입니다.

예) 산에 가서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바지에 똥을 쌌다.

산에서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바지에 실수를 했다.

윤문 : 가독성을 위해 글을 윤기 나게 다듬는 과정입니다.

예) 산에서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바지에 실수를 했다.

울창한 숲에서 갑자기 신호가 느껴져 그만 바지에 실수를 했다.

리라이팅 : Writing이 작곡이라면 Rewriting은 편곡입니다. 기본 틀을 바탕으로 다른 문체로 재창조하는 과정입니다.

예) 울창한 숲에서 갑자기 신호가 느껴져 그만 바지에 실수를 했다.

아마존에 온 것 같은 긴장감 탓일까? 바지에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아나콘다가 따로 없었다. 


교정, 교열은 기본 필수 과정으로 자비 출판의 경우 작가가, 기획 출판의 경우 출판사가 맡게 됩니다. 윤문의 경우 글에 대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편집장들이 쉽게 작가에게 요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최근 출판 트렌드는 좋은 글을 쓰는 신입 작가보다는 구독층이 확보된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선호되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윤문, 리라이팅, 심지어 대필까지 가감 없이 편집장들이 나서서 해주는 추세인데 소재만 제공한다면 글을 못 써도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다는 씁쓸한 현실이 난무하고 있지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출판의 목표가 견고한 출판사들도 곳곳에 존재합니다. 출판사별 도서 목록과 저자들만 살펴봐도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성이 보이니 참고하여 선택하는 것이 나름의 전략일 것입니다.



❖ 개고生


부대표님은 처음부터 아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나의 글에 빨간 줄을 좍좍 그어버릴 테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놓고 그어 댈 줄은…) 원고는 재미있지만 개고가 필요하다며 부대표님 포함 편집장들의 총평이 담긴 개요 문서를 보내왔습니다.



100개의 글 중 분량 조절 및 주제 통일을 위해 성격에 맞지 않는 글들은 대폭 삭제, 문체 통일 및 표현 절제를 요구해 오셨어요. 어려운 주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멘탈 털리고 오십견에 잠 못 들고 세 손가락에 지문 없어지니까 간단히 해결되더라고요.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젊은 편집장들 일부가 제 원고를 반대했다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손 많이 가는 신입 작가 받아봐야 일만 늘고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하니까요. 당연히 이해하고 모두 값진 조언으로 듣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신상 공개만 부탁한다며…)


사람은 언제나 사태 파악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분석해 보니 지금 제가 부대표님 동아줄을 잡고 있는 거 같은데, 난생처음 라인을 타보는 거라 이것이 썩은 동아줄인지, 탱탱한 동아줄인지 알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방법은 하나!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4일 밤낮으로 여섯 개의 글을 더 써냈고, 다섯 개의 글을 수정했습니다. 최소한 날 선택한 부대표님을 젊은 편집장들 앞에 면목 없는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 필시 이 출판사에 수익을 내주겠다는 각오로 등이 뒤틀릴 때까지 개고생을 했더니 만족할 만한 변화가 오더라고요.


여기서 끝? 아니죠. 제목은 책의 90%라고 할 만큼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창고에 묵혀 있던 ‘칭찬의 힘’이라는 책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제목 변경을 하면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지요. 그만큼 제목이 중요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숨 쉴 때마다 제목을 지었습니다. 나중엔 정신 분열이 오더군요. 게다가 아직까지 제목은 미정입니다. (이름이 박미정이면 얼마나 좋아. 제목은 미정입니다.)


여기서 끝? 아니죠. 책 표지는 누가 만들어 줄까요? 출판사가 만들어주는 건데 일부 반대했다는 젊은이들 중 하필 디자인 담당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요? 피카소 영혼을 느끼며 직접 그렸습니다. 보냈더니 부대표님이 많이 놀라셨다고. (괜찮아요? 많이 놀라쬬오?)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시며 일러스트를 구하고 계시다고. (두 시간 동안 그렸다요. ㅜㅜ)


❖ 출간


편집과 디자인 작업 기간을 대략 한 달로 잡습니다. 출판사가 밥 먹고 하는 일이 책 만드는 일이니까 뚝딱 하고 만들 것 같겠지만 섬세하게 교차 체크도 해야 하고 책에 따라 섭외가 들어가는 부분 역시 달라지기 때문에 한 달도 빠듯한 시간이지요. 지류 선택, 표지, 간지 디자인, 폰트 및 문단 디자인 등이 끝나면 드디어 출간의 날이 오는 겁니다. 제 책은 5월 중 출간 예정이며, 대성 여부,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많은 걸 누리고 얻었기 때문에 내공 있는 아줌마의 자태로 덤덤하게 첫 책을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축하와 기대를 나눠 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 숙여 다시 한번 큰 인사를 올립니다. (큰 절 받으시옵소서~)

!! Happy in the End !!


#웃기고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박윤미작가 #인스타그램jazonegap #출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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