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로 말도 못 하게 힘드셨죠? 저도요, 코로나 직전에 주식 물 탔고요(내 손을 매우 쳐라~), 남편 회사에서 큰 기회 하나도 날아갔고(회사도 매우 쳐라~). 다행히 저는 돈이나 출세 관련한 손해에는 극복이 아주 빠른 편이에요. ‘내가 뭐 언젠 재벌이었냐?’ 쾌속으로 이겨냈지요.
안타깝게도 극복이 쉽지 않았던 시련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희귀 병명을 진단받으신 것이지요. 도파민이 더는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운동 장애나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면서 예후가 예측도 안 되고 치료약도 없다는 겁니다. 결론은 의사도 모른다는 거죠. 야속했던 게 그냥 ‘노환입니다.’라고 할 것이지 이름도 이상한 병명은 말해줘서 우리 부모님 저토록 무너지게 만드나 싶었지요. 제가 아는 한 대한민국 어르신 남자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유머 넘치고 긍정적이시던 분이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다. 사는 의미를 모르겠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건데 왜 아프면 면목 없는 모습이 되어야 하나 속상한 마음, 한편으론 우린 모두 죽는데 지금까지 내 곁에 계셔주시는 아빠가 있다는 감사함이 뒤엉켜 내재된 정신력이 튀어나왔던 거 같아요. 이것 또한 극복해야겠다. 저는 힘든 일이 있거나 분노할 때 글을 써서 풀어내길 즐겨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화났던 일을 단순화시키고 유쾌하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별일 아닌 일이 되어 있거든요. 본능적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되었고 그게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죠. 출판계 동향을 잘 알아서 원고 투고 성공은 희박한 일임을 알았지만, 우리 아빠가 웃을 수도 있는 일인데 포기할 순 없잖아요.
온 우주가 저를 돕던 날 드디어 계약서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흥분에 가깝게 울먹이시던 벅찬 목소리가 아직도 울려요. 도파민 없이도 아빠가 웃으셨죠.
천성이 신세를 못 지고 사는 성격이에요. 앗싸 계약! 목표 달성! 이러면서 계약이 곧 출간이라 믿었는데 부대표님이 신입이라 리스키 하다는 편집장들의 우려를 무릅쓰고 제 원고를 선택했단 사실을 알게 되었죠. 힘들어 죽겠구먼 또 은혜를 갚아야 할 시간. 암요~ 우리 아빠가 덕분에 웃었는데 은혜 갚고 말고요. 췌장에서부터 초능력을 끌어올려 원고를 수정해 나갔어요. 첫 독자이신 부대표님부터 만족시키겠다는 각오로요. 원고가 책답게 변신하는 순간이었죠.
한 달 전에야 부대표님께 프롤로그를 바꾸고 싶다면서 이실직고를 했어요. 부모님께 보여드릴 계약서가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내겐 성공이 중요하지 않지만, 출판사에 도움은 되고 싶어 최선이란 걸 했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출간 직전인 지금 미리 감사 인사를 올린다고요.
타이밍을 놓칠까 봐 전한 것뿐인데 대답이 없던 긴 시간 동안 감동하셨나 봐요. 예정에 없던 본문 일러스트를 일곱 개나 추가해 주셨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저에게 선택권을 주셨고 제가 뭔 말을 지껄여도 다 들어주셨어요. 혹시 전생에 저한테 나라를 팔아먹은 그분이세요? 헐값에 넘기더라니….
덕분에 일정은 늦어졌고, 칼라 잉크 소모량이 몇 배는 늘었지만,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간만이었다며 나라 팔아먹으신 분은 끝까지 애정을 전하시더라고요. 어찌 내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아무리 뒤져봐도 기적 말고는 다른 설명 방식이 없어요. 이 감사함의 원동력으로 사는 내내 용감할 것 같은 기분이요.
제가 계약한 출판사는 과거 퇴마록으로 천만 부 판매 신화를 일궈 낸 ‘들녘 출판사’입니다. 상당히 남성적인 출판사로 출판계의 불황에도 꼼수를 부리지 않고 정도를 걷는 곳이지요. 작년 말 소프트한 감성에도 영역을 넓히고자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참새책방’이라는 귀여운 이름도 런칭했습니다. 그 스타트를 한 중견 배우가 끊으셨는데, 원래 기자였던 분으로 책을 60권인가 냈다시고, 현재는 연세대에서 글쓰기 강의 중이시라고.
이런 신나는 일이! 뭐랄까. 졌.잘.싸. 느낌! 나 서울대 원서 넣는데 떨어졌잖아~ 요런 느낌! 음~ 내 전에 어떤 배우가 책을 냈어! 뭔가 홀가분하면서 명예가 지켜지는 넉낌! 부담감 제로였거든요.
예상치 못한 습격이 있었습니다. 제 책이 참새책방 두 번째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4월에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전국을 횡단하고 책을 썼다지 뭐예요. 아 놔~~~ 개가! 개님이! 개나 소나 책 낸다더니 진짜 개가!!! 그럼 내가 소인가?!?!
여러분은 지금 개랑 경쟁하는 소를 보고 계십니다. 하하하~
웃자고 하는 얘기고(근데 왜 눈물이 나지?) 저는 한없이 행복해요. 들뜬 목소리로 ‘대단하다~’를 외쳐주던 내 가족, 친구, 친척, 그리고 심지어 일면식 없던 카페의 맘들까지. 살면서 내가 사랑을 이렇게 몰아 받아도 되나 싶은 경험을 했어요. 욕심이 안 생겨요. 욕심 안 내려고요. (개만 이기자!)
제 개인의 경사를 자랑질하는 동안 사실 속으로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도 컸습니다만 받아주시는 것도 모자라, 넘치게 축하해 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테라바이트급 사랑을 전합니다. 감동이 잦아 몇 번 울컥했더랍니다. 저는 우직한 소답게 지금까지 감사함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저의 경험이 희망으로 전해지길 간곡히 바라봅니다.
박윤미 드림
웃기고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이 책은 효심이 그득한 웃기는 소 한 마리가 인생을 되새김질하며 사는 노하우를 갈아 넣은 마음의 여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