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랜드
[미출간본] L.A. L.A. Land
가끔 모두가 인생 영화라고 극찬을 하는데 유독 나만이 이해력 딸리고 심지어 중간에 졸기까지 해 당황했던 적 한 번쯤은 있을 거예요. 솔직한 감상평을 말해보려 해도 대세의 흐름 속에 나만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자 같으니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란 생각만 드는데 저의 경우 라라 랜드가 그랬어요.
두 아들을 키우며 프로 레슬러로 살아갈 때라 그랬을 겁니다. 밥 챙겨 먹을 시간도 없는데 꼭 봐야 하는 영화라며 강요들을 하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두고 보자며 본 영화는 한 어메리칸 여성이 한 어메리칸 남성 뒤통수를 아주 빡세게 쳐버리는 위험천만한 내용이었던 것이죠. 사람 볼 줄 모르는 사자 오빠는 돌멩이 언니가 등골 빼먹는 줄도 모르고 춤이나 쳐대고 노래나 부르니 참으로 기괴하기만 했어요. 그래, 공감 능력이고 뭐고 없는 내가 이 구역 소시오패스입니다만.
사실 랄라 땅은 저와도 관련이 깊은 장소입니다. LA에 처음 갔을 때 여러 친척 분들이 계셨는데 이모를 제외하곤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어요. 순진한 모습을 하고 미국 땅을 밟은 제가 적당히 안쓰러웠는지 많이들 챙겨주셨는데 그중 한 친척 언니는 다시는 해보지 못할 부유한 경험을 시켜주기까지 했죠. 그 이름도 휘황찬란한 비버리 힐즈에 날 초대해 준 겁니다.
제약 회사에 다녔던 언니는 신약을 설명하는 자신에게 반한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남자는 미국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수와 의사를 겸직으로 하는 능력자였던 거예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대만계 교포였던 그의 부모님은 유수의 기업가로 세계 재계 순위가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을 제치는 수준이었다 하니 하여간 무진장 겁나 굉장하게 부잣집 아들이었던 것이죠. 형부라고 부를 넉살이 없었던 게 첫 번째 한이요, 기브 미 만 달러~ 라고 농담을 못 해본 게 두 번째 한이에요.
기웃 만 거려도 좋다는 비버리 힐즈를 초대까지 받아 집 구경까지 할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았어요. 언니네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언덕배기를 오르며 교포 친구의 설명을 듣는데 여기는 누구네 집, 저기는 누구네 집, 대번에 알 수 있는 유명인들 이름이 마구 튀어나오니까 별나라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어떤 저택 앞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경호원들이 서 있기도 했고 하늘에선 쉴 새 없이 헬기가 날며 수상한 나 같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진정 돈의 위력이 느껴지더군요.
도착해 집 구경을 하는데 일단 강아지 방이 제 방보다 좋았고 욕실은 대중탕 같았으며, 재벌의 남다른 취향인 건지 화장실엔 두 개의 변기가 나란히 붙어 있었어요. 언니 남편은 사교적이기까지 해 앞마당에 있는 미니어처 골프장에서 함께 내기 골프를 치자고 제안해 왔는데 재벌과의 내기라니 기필코 이겨서 만 달러를 따내리라 마음먹었으나 홈 어드벤티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깝지도 않게 져 재벌한테 코 묻은 돈 200달러를 뜯기며 있는 놈이 제일 무섭다는 풍문을 완성시켰죠. 하나부터 열까지 상상 속에 없던 일들이라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감흥이 가시질 않았어요.
그렇게 알게 되었죠. 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겠다는 선량한 목표를 등에 업고 랄라 땅에 모여드는지 말이에요. 그들은 개인주의를 외치는 동시에 오직 자신만 알아봐 주길 원하는 이중성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구걸해 만족과 행복을 외치려 듭니다. 라라 랜드 안에서도 할리우드는 한 방에 부와 명성을 주는 상징적 장소로 통하는데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곳이 더욱 반짝이는 비버리힐즈였으니 허영이 그득한 젊은이들은 그럴수록 애가 타들어간 것입니다. 직업으로 연기자의 적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 역전 내지 신분 상승의 도구로 연기자를 꿈꾼다 말하니 무언가 씁쓸해졌어요.
자연스러운 사랑의 귀결이라면 다행이지만 헐리웃은 꿈이라는 타이틀로 불쾌한 허영이 합법적으로 허락되는 곳이기도 해서 재력가를 배우자로 꾀어내려 별짓 다하는 사람, 영혼이라도 팔아서 쟁취하면 그게 성공이라 말하는 사람, 상스럽게 돈 냄새를 풍기고 또 거기에 빌붙는 사람들까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돈에만 매달리는 모습들을 보니 비천하고 후진 냄새가 나 불편해졌던 것이지요.
그거였어요. 배경 음악도 완벽하고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가 테마로 나오는데도 라라 랜드가 계속 얄밉기만 했던 이유가 꿈이라고 말하는 거짓말, 성공이라 말하는 허전함도 모자라 아련해 보이는 장치로 남녀 주인공을 엇갈리게까지 만들었으니 애 키우다 지친 아줌마는 전혀 동의할 곳이 없었던 겁니다.
모두가 감동한 포인트에 초를 치고 있는 이 상황이 유쾌하진 않지만 진심으로 꿈꾸고 그 꿈을 이뤄야 그곳이 진정한 랄라 땅인 거라고 끝까지 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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