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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Jul 06. 2021

세입자 vs 세입자 결투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中

이 글은 개인 실화를 바탕으로 부동산 거래 시 도움이 될까 하여 씁니다.     


저의 첫 신혼집은 남편 회사 근처 신도시의 대단지 ‘새’ 아파트였습니다. 대단지 새 아파트는 통상 입주 전에 전세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변 시세보다 낮은 전세가를 잡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대신 다음 갱신 때 전세가를 대폭 올려 받는 단점도 있고요.     


저의 첫 주인님은 해외 거주자로 잠시 한국에 들어와 계약서를 쓰시면서 덕담도 해주시고, 자기들 들어올 일 없으니 살고 싶은 만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라며, happily ever after 막 그런 거 하라 하셨습니다. 그짓부렁~


1년 반 지나니 주인님이 월세로 전환하신다며 월세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셔서 이사를 결심했죠. 아이가 어려 같은 단지 내에서 전세를 구하는데 어찌나 까다로운 주인들이 많던지, 애가 어려 안 된다, 남자아이라 안 된다, 그냥 느낌상 안 된다, 정말 주인님 나빠요~. 결국, 남은 선택지 하나가 바로 옆집이었습니다. 현재 집 701호, 이사 갈 집 702호.     


이사 견적 내러 오신 실장님이 제 손을 잡고 어찌 이런 일을 겪냐는 눈빛으로 알아서 이사비를 마구 깎아주셨답니다. 무릇 이사를 가면 좀 들뜨고 긴장되는 그런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도 아니고, 좌우만 다른 집에 이사를 하려니까 스포일러 당한 기분.    

  

이삿날 3일 전, 옆집이 시끄럽길래 내다보니 사정상 3일 먼저 이사를 간다는 거예요. 냅다 달려가 제가 이 집에 이사를 올 예정인데, 미리 청소라도 하게 비밀번호 좀 알려달라 하니 흔쾌히 메모지에 적어주시더라고요. 이런 게 장점이구나 싶어 집에 돌아와 신나고 있는데 3분 뒤 초인종이 울립니다. 혹시 문제 될 수도 있으니 메모지 돌려달라고요. 영화에서 범인의 차가 도주를 할 때 차 넘버 막 외우고 그러잖아요. 그짓부렁~ 제가 아이큐가 151인데 (극적 긴장감을 위해 대충 넘어가요) 숫자 6개가 안 외워져요. 순순히 메모지를 돌려드렸죠. 뭐 양심상 외웠어도 몰래 가서 청소할 범법 정신도 없어요.     


이사 1일 전, 부동산에 연락했습니다. 하루 전이니 청소 좀 하게 전 세입자에게 비밀번호 설득 좀 부탁드린다고요. 부동산도 인정에 이끌렸는지 지금은 못 알려주고 대신 이사 당일 아침 7시에 알려주신다 했습니다. 덕분에 아침 7시부터 이사 청소와 동시에 이사 업체의 진귀한 이사 광경을 보게 되었죠. 책장에 책이 꽂힌 상태로 이동하데요? 위치 안 알려줘도 알아서 수납장, 싱크대, 옷장 등에 정말 좌우만 바꿔서 착착 정리를 해주시는데 10시 넘으니 대강 정리될 정도로 아주 수월하게 이사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두둥!!    

 

갑자기 전 세입자가 집에 들어오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 라며 화를 내더라고요. 당시 남편은 베란다에 고일 벽돌 같은 걸 찾으러 나가서 저 혼자 집에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이사 2일 전 반영구 화장 리터치를 한 상태였거든요. 반영구+반영구 두 번 하니까 완전 영구가 되어 있었죠. 거기다 시선을 분산시키겠다며 하체 비만에 딱인 얼룩말 무늬 배기바지를 입고 있었으니 심형래와 강유미도 울고 갈 분장 상태!


전 세입자는 자기 동생을 데리고 와서는 누구 맘대로 자기 집에 들어와서 청소냐며 노발대발하는 상황이었고, 저는 오해라며, 부동산에서 알려주신 거고, 당연히 알고 계시는 줄 알았다며 정말 상냥하게 해명을 하는데도, 와~ 초식동물이라고 만만해 보이는 건지, 끝까지 믿지 않으며 화만 더 커지더라고요.   

  

엄밀히 11시가 계약서 작성 시간이라 먼저 이사를 한 제 잘못이 맞기에, 정말 오해다, 진정하셔라, 상황은 이렇게 된 건데, 왜 화나신 줄 알겠지만, 전혀 문제 될 일도 없고 이제 곧 계약 시간이니 좋게 넘어가 달라 부탁을 하는데도, 마치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오늘 너에게 다 풀겠단 심정인지, 혹은 영구 여자 혼자 있다고 만만하게 보는 건지 이삿짐을 다시 빼래요. 아직 자기 집이라고. 솔직히 니 집은 아니지~ 라는 말이 마구 튀어나갈 거 같았으나, 화를 키워봐야 좋을 건 없다 싶어, 계속 리슨 앤 뤼핏을 하며 양해를 구했죠. 띠리리디리디~  

    

정말 남자 둘에게 탈탈 털리고 있는 바로 그때 잠시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잠시 소개를 하자면, 남편은 키도 덩치도 커요. 유순한 성격을 가졌으나 외모가 받쳐주질 못해서 그냥 서 있으면 이겨요. 그런 남편이 양손에 벽돌을 들고 나타나서는 “무슨 일이시죠? 밖에서 들으니 시끄럽던데~” 라고 정말 버터구이 오징어처럼 젠틀하게 질문을 하자마자 그 두 남자가, 아니 이 키만 주고 가면 된다고 하면서 몇 개의 키를 주고 내빼는 거예요. 와 써글~ 그니까 내가 지금 영구라서 당한 게 맞는 거잖아요? 지금 생각하니까 또 분하네요.     


마무리는 잘 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전 세입자에게 그 정도는 양해해주셔야지, 라면서 자기가 비밀번호 알려준 거라 우리 잘못은 아니었다며 이해시키고 서로 필요한 계약 끝나고 화해하고 헤어졌어요. 당시는 화가 났지만 전세금처럼 큰돈이 오가는 일인데 당연히 깐깐하고 까다롭게 구는 게 맞지요. 자기 집이라 주장하고 싶었다면 그때 짐 하나 정도는 두고 나가야 더 안전합니다. 다만 얼룩말한텐 화내고 수사자한텐 꼬리 내린 그 모습이 좀 못나 보였던 거죠.      


정말 집 관련하면 별별 속상한 일들이 많아요. 집주인이라서, 세입자라서, 각자의 상황도 다르고 불특정 다수가 큰돈을 두고 엮이는 일이니 항상 긴장되고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배려가 필요한 일이죠. 속상한 점 있더라도 법적으로 꼼꼼하게 따지는 거 잊지 마시고요.


행운을 빌며 마지막으로 교훈: 이사 갈 땐 얼룩말 바지 입는 거 아니다!


#웃기고진지한자존갑입니다만 #박윤미작가 #인스타그램jazone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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