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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Jul 01. 2020

세로영상이 익숙해진다.

우리가 가로영상만 봤던 이유

 지난해 5월, 재미있는 전자제품이 출시된 적이 있다. '더 세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세로 TV인데, 디스플레이를 가로 또는 세로로 회전하여 볼 수 있는 TV였다. 항상 선구자는 언제나 그렇듯 손가락질을 받고 주변으로부터 외면 받기 마련이다. 시장반응은 재밌어 했으나,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까지는 힘들었다. 주로 매장 POP대체용으로 본 것을 제외하고는 SNS, 블로그, 유튜브에서 개인이 구매한 경험을 찾기가 어려웠다.


삼성 '더세로' TV


 세로로 사물을 바라본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두 눈이 가로 정렬 되어있기 때문에 가로로 긴 디스플레이를 통해 관찰하는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옆으로 긴 TV를 보고 자랐고, 옆으로 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스포츠 중계도 가로로 긴 것들을 보며 자라왔으니 우리가 가로로 보는 것은 태생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당연한 일들이다. 



 선후관계를 따져보자. 눈이 양옆에 달려있으니 가로로 긴것을 보는것이 익숙한것 바꿀 수 없는 자연적인 결과있다. 그런데, TV, 영화관 등 다양한 컨텐츠를 소비하는것이 왜 굳이 가로로 길어야할까? 그저 TV가 가로로 길게 만들어졌으니까 가로로 긴 영상들을 만들어야할까.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세로로 긴데 왜 여전히 가로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사실, 가로 영상만 만들어지는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세로 영상은 시도되고 있었다. 세로로 영화를 만든다던가, 세로로 노래를 부르는 딩고의 세로라이브등이 실험적으로 시도되긴 했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세로 디스플레이로의 영상 트렌드가 넘어갈 것 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측했으나, 정작 재미가 없어서, 화제를 끌지 못해서 실패해버렸다.


 선후관계만을 따져본다면, 가로로 만든 영상들은 세로로 만든 영상보다 재밌을 수 밖에 없다. 달리기를 하는 육상선수들을 비교해서 보여주려면 전 레인이 보이는 가로 촬영을 해야한다. 또, 게임전투나 드라마에서의 갈등 액션씬을 보여주려면 대비되는 양측을 양옆으로 배치해야한다. 우리가 '좋아하는'컨텐츠는 태생적으로 가로로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LG의 세로 시네마 역시 극에서 한 개인밖에 담지 못하는 한계를 깨지 못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못했다. 가로 영상에 익숙한 감독들이 인물을 배치하는데에 익숙하지 못했고 실패했다. 딩고의 세로라이브 역시 유튜브내에서 음악컨텐츠가 살아남는 이유와 정반대로 배치되는 구현으로 실패했다. 

 


우리는 보통 영상이 꽉차면 즐거울 수 있다고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음악은 듣는것이 중심되는 컨텐츠다. 댄스가 수반하지않은다면 더더욱 듣는데에 치우치게 되어있고, 오랜시간 꽉찬 화면을 시청자들이 감당하기엔 3분도 대단한 피로감을 준다.


 반면, 깡이나 후유증같이 역주행하는 유튜브 음악 컨텐츠를 보면 '가로로 보면 비극, 세로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귀로 듣고 댓글을 읽는 것이 유튜브 음악 컨텐츠 소비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꽉찬화면에서 갈곳없는 엄지손가락을 묶어버린 세로라이브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컨텐츠였다. 


 이처럼, 세로 컨텐츠는 좀처럼 흥하기 어려운 소재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상 편집툴이 16:9 비율의 가로 영상으로 만들게 되었고 모바일 영상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세로 영상에 좌절하고 가로로 돌아온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틱톡이 등장했다. 사실 틱톡이전에 세로 영상을 히트시킨 사례가 있긴 했다. 그건 바로 아이돌 직캠, 댄스팀 직캠영상들이 었는데, 이 영상의 전설이자 레전드 시초가 된건 직캠 촬영자 Pharkil의 EXID 하니 직캠이 초대박을 쳤다. 수많은 세로영상이 실패했지만 아이돌 직캠, 특히 EXID의 직캠이 성공한것은 노골적인 노출 의상과 섹스어필 안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 직캠 전설을 만들어낸 Pharkil의 EXID 하니 단독 직캠


 세로 화면이 꽉찬 영상을 오랜시간 지속시키려면 몰입감있어야하는데 세로영상만이 찍을 수 있는 1인 전신샷, 그리고 섹스어필하는 안무를 하는 아이돌의 직캠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룹전체가 아니라 걸그룹내 내 최애 아이돌만 보고 싶은, 최애 아이돌이 전체 안무에서 빠진 상태에서의 표정, 감정, 몸짓까지 관찰하고 싶은 팬들, 일반 시청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세로영상의 성공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16:9 가로 영상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벗어나, 1인 단독샷으로 영상을 채우고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점, 배경이 아닌 인물 대상 주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세로 영상의 성공 포인트라는 것이다.


 이후 아이돌 직캠은 전성기를 만들어냈고, 아이돌이 아니어도 일반 댄스팀 직캠영상까지 직캠 촬영자들의 영상 범위는 넓어져갔고, 이를 통해 스타들이 탄생했으니 EXID하니 직캠은 세로영상 역사에나 아이돌 역사에나 길이 남을 영상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세로영상 성공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영상플랫폼이 바로 틱톡이다. 주로 틱톡영상은 1인 개인이 나와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축구공을 떨어트리지 않고 묘기를 선보이거나, 아이돌의 영상을 커버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입고나와 재미있는 개그를 펼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당초 틱톡이 15초 룰을 만들어 15초 이내에 모든 영상을 끝낼수 있게 만든것이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스마트폰을 꽉채우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유저들의 엄지손을 묶어놓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탈위험이 발생한다. 그래서 틱톡은 15초 안에 영상을 보고 바로 다음 영상으로 넘길수 있도록 만들어 초기 아마추어 크리에이터들이 정착하는데 도움을 줬다.


 틱톡이 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를 친 사례는 바로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인데, 틱톡의 문화 중 해시태그를 걸고 음원을 풀면 그 음원에 맞춰 다같이 같은 동작을 따라한다. 지코는 아무노래의 후렴구를 음원으로 풀면서 자신의 아무노래 안무를 올렸는데, 직접 아무노래챌린지라는 해시태그을 유행시키기 위해 화사, 청하, 장성규 등 2020년 1월 젊은 층에게 어필되는 셀럼들과 함께 듀엣춤을 추고 확산시켰다.


 이에 더불어 일반인이 아무노래 챌린지영상을 올리면 그걸 또 본인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면서 양방향성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확산시키는 영리한 기획까지 해냈다. 오늘 방영한 지코와 기상캐스터의 써머헤이트 챌린지 역시 지난 1월 성공한 아무노래 챌린지의 연속이며 시작 3일만에 2백만 건 넘는 챌린지 영상이 틱톡에 올라왔다.


 

 유튜브, 틱톡 모두 영상 플랫폼으로 크리에이터 영역에 제한되었으나 아이돌 직캠 - 일반인 참여형으로 조금씩 세로 영상 제작영역이 일반 대중에게 오픈되다가 가장 익숙해진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은 출시 초기부터 사진만 올리고, 영상도 가로영상만 올라왔지만, 점차 16:9 -> 4:3 -> 1:1 사진으로 오다가 최근에는 피드에서 세로로 더 긴 비율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 영상만 올리고 감상하는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이 유일하다. 사진, 영상 보고 좋아요 누르고 댓글달고, 어느것하나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 이 컨텐츠의 분절성으로 인해 오히려 화면을 가득채우는 세로 영상이 정착하기 쉬워졌다. 특히 아이폰 8부터 인물사진모드가 도입되며 인물, 사물에 대한 접사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서 세로영상이 많아졌다. 이에 더불어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는 사람이 늘면서 이제는 세로 영상으로 일상의 자신 주변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남기는데에 주저함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 이제 가로영상은 저물고, 세로영상만 남을까? 오히려 가로영상과 세로영상이 공존하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나, 개인에 집중하는 MZ세대가 늘어났고, 이들이 주도하는 영상 플랫폼에서 세로영상이 늘어나겠지만, 역시나 전문 기획자와 촬영자들이 만드는 웰메이드 영화, 드라마는 지금도 가로 영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독을 지향하나, 동시에 연대를 갈구한다. 가장 최근까지 열풍이었던 마블의 어벤져스 영화가 인기 있었던것은 연대하는 영웅 개개인들의 서사를 동시에 담았기 때문이다. 


 혼밥, 혼영, 나홀로 틱톡댄스를 추는 MZ세대에게도 함께할, 연대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이를 대변한 가로 영상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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