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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Sep 01. 2020

기획은 엎어지고, 시뮬레이션은 반복된다.

행사기획을 경험하며 얻은 교훈

 다양하게 행사기획에 참여 해봤다. 총리실 주관 VIP 행사, 차관 참석 행사, 전당대회, 국경절 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자리에서 작게나마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래서 행사 기획에 대한 경험을 단편적으로는 나열할 수는 있으나, 제대로 행사기획을 해봤는가를 물으면 그리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최근 우연히 좋은 기회에 행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전 프로세스를 가까이서 참여해볼 수 있어 행사기획이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정의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해당 행사를 리드하는 리더들이 국내 대형 행사들은 십수년 해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대비하고, 대응하는 과정들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를 기록해보고자한다.


1. 기획은 밑빠진독에 물을 붓는 반복이다.(D-30)


- 행사라는 건 어떤 트리거가 있어야 발생한다. 대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결심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최근 참여한 행사의 형태가 특정될 수 있어 회사의 워크숍을 갖고 사례를 들어보겠다.) 워크숍을 한다쳐도 조직장의 승인, 결심이 있어야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최고의사결정권자(이하 대장)의 마음에 드는 행사기획이 물흘러가듯이 구성되어야한다. 대장이 이 행사를 왜 개최하게 되었는지, 이 행사를 통해 대장이 궁극적으로 얻고자함은 무엇인지가 정리되어야한다. 


 워크숍만 해도 그렇다. 워크샵을 왜 개최할까? 조직내 성과를 함께 분석하고, 상호간 소통이 부재한 부분을 워크숍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면이 크다. 이를 통해 조직의 단합을 달성하고, 나아가 올해 조직의 목표 달성을 하는데 도움이 되게끔 만드는것이 워크숍의 결과가 되어야한다.


 워크숍을 기획한다치면, 1박 2일 워크숍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초안을 만들 것이다. 여기서 중점에 둬야할 것은 너무 힘을 줘선 안된다는 것이다. 아직 대장이 준 실마리 자체가 적기 때문에 정말 프레임만 짜서 1차 보고에 올라가야한다. 분명 대장도 보고안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명확화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완벽한 보고안을 처음부터 만들어가면 안된다.


어차피 밑빠진독에 물은 가득 못채운다. 더 빠지기 전에 더 채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자


 또한, 처음부터 예산 캡을 타이트하게 잡고 가야한다. 예산이 500만원인데, 500만원에 맞춰 준비하게 되면, 이후 대장의 취향이나 기분에 따라 쉽게 변경될 아이템들이 필히 생겨날 것이므로 결코 500만원안에서 채울 수 없게 된다. 예산은 15%정도 버퍼를 두고 기획해야한다.


 대장이 내게 준 시간은 1개월이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마지막 1~2주에 집중될 것이다. 대장도 행사 기획을 시켜놓고 해당 행사를 후순위로 미루다 D-14부터는 본격적으로 행사를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로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주간 내가 준비한 것이 본격적으로 엎어지는 반복이다. 


 2주전부터 내가 준비한 것 중 워크숍 장소, 저녁 메뉴 식당등 메인 요소들은 픽스된채로, 세부적인 행사 기획들이 엎어지기 시작한다. 대장은 소주를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맥주를 마시면 놀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왔는데, 대장의 의견은 '다수가 선호하는 음식을 구성해야지, 왜 나를 의식하면서 프로그램을 짜는것이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곧장 바꿔야한다. 


 기획과정에서의 어려움은 기껏 대장을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짜놨더니, 자기의 기호, 기분이 바뀌었다며 쉽게 바꾸자는것이다. 워크숍에서 사용할 공은 회사 로고가 박혀 있어야하거나, 워크숍 기념사진에 쓰일 현수막의 디자인을 지적하거나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쓰일 오락프로그램의 진부함을 타박하면서 당장 다음보고까지 수정해와야한다.


 앞에서 말했던 예산의 15% 버퍼가 여기에 쓰인다. 기존에 사 둔 축구공외에 회사 로고가 박힌 축구공을 새로 주문해야하며, 새로주문해서 워크숍전날까지 배송받을 수 있도록 배송비를 추가 지불해야한다. 마찬가지로 현수막 디자인은 언제든 또다시 수정될 수 있으므로, 현수막 시안을 A, B, C안으로 구성함은 물론이고 인쇄업체와 이야기하여 라스트오더 가능시간을 받아와야한다. 또, 오락프로그램의 진부함을 지적받은 이상,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와 기존 준비한 프로그램안, 그리고 전통적으로 워크숍에서 사용되는 안을 준비한다. 이에 따른 준비물들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최종적으로 D-3 즈음에는 행사의 95%가 나온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는 시뮬레이션에 들어가야한다.


2. 대비는 시뮬레이션이다.(D-3)


- 행사기획을 잘 해놨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예상치 못한곳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그게 바로 나머지 5%다. 40명이 가기로 한 워크숍인데, 갑자기 누군가 더 온다고 하지 않을까? 다같이 감바스에 와인 한잔하려고 했는데, 새우 알러지 있는 사람은 없을까? 체육활동을 하다 누군가 다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걸 미리 막는게 이머전시 플랜이고, 이머전시 플랜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생한다.


특히 이번행사를 준비하면서 행사리드가 끊임없이 물었다. 

"시뮬레이션 해봤어? 갑자기 얘네들이 마이크가 3개중에 2개 고장났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갑자기 이날 날이 너무 더워졌는데 우리가 준비한 아이스팩이 동나면 어떻게 할거야?"

"이날 교통 체증 때문에 사람들이 행사에 늦게 오면 우리는 프로그램 어떻게 미룰거야?"

"사람들이 밥먹으러 돌아와야하는데 갑자기 집에 가버리면 어떻게 할거야?"

"동선에서 행사 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지 확인해봤어?"


사실 행사 리드가 묻는 부분들은 외부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챙겼어야할 것들인데, 행사 기획에 몰입하다보면 자꾸 놓치게 된다. 그래서 D-3부터는 팀에서도 꾸준히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서 위험요소, 이머전시상황을 계속 떠올려봤다. 


시뮬레이션을 할수록 리스크가 발견되고, 실제 리스크는 줄어든다


 워크숍 기획에 적용해봐도 같은 방식이다. 분명 임원이 참석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오겠다고 할 경우를 생각해야한다. 40명이 모두 한차에 타지 않고, 5명정도는 선발대를 꾸려 별도 차량으로 이동하여 전세버스의 버퍼를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시뮬레이션을 반복하여 최대 누구까지 올 수 있는지 최대치를 뽑은 가정을 해봐도 전세버스의 버퍼안에 들어오면 성공이다.


 또, 감바스에 와인 한잔해야하는데 새우 알러지 있는 사람을 대비하자고 미리 알러지 설문조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메인디쉬가 있다면, 같은 급의 메인디쉬를 반반씩 섞어 충분히 알러지 대비를 할 수 있다. 복숭아, 새우 등 알러지 음식들은 다양하게 대비가 가능하다. 특히 이런 부분을 대응하기 위해 기획단은 50명 워크숍 기준으로 5명정도 꾸려놓고 그안에도 성비, 연령대, 직군별로 구성을 다양하게 해놓으면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준비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사고상황에 대비도 해야한다. 차사고가 날수도 있고, 워크숍 체육행사중 부상당할수 있으며, 요리중에 화재가 날 수 있고, 음주를 하며 싸움이 날 수도 있다. 인사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곳곳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한다. 여행자보험을 들어야함은 물론이며, 체육행사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보상품이나 워크숍 진행 총점 가중치를 축소할 수 있다. 또한 요리중 화재를 대비해 요리 담당과 공간을 철저하게 본대로부터 분리하고, 음주시에는 정해놓은 주량 초과시 그만둘 수 있도록 기본 룰세팅을 해야한다. 


3. 대응은 컨트롤센터의 커뮤니케이션 일원화다.(D-day)


- 실제 행사 당일에는 기본을 지켜야한다. 현장에 나가 있는 행사요원들은 기획안에 대한 숙지가 되어 있어야하며, 모든 상황에 대한 컨트롤센터가 중앙에 있어야한다. 그러나 당일이 되면 모두들 당황해서 세팅해놓은 그라운드룰을 깨기마련이다.


 갑자기 VIP가 찾아서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기도 하고, 행사 당일 협조된 업체의 특이사항 발생으로 여분으로 준비된 행사 연예인 굿즈가 부족해질 수 있다. 또, 행사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펜스가 밀려나고 대열이 흩어질 수 있다. 


 당일 행사에도 인력, 기획단 배치는 여유분을 갖고 움직여야한다. 50명의 행사인력을 준비하고 있다면 1명의 컨트롤타워, 1명의 상황 기록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력중 10%를 다시 유휴인력으로 구성해야한다. 각 영역마다 지원인력의 버퍼를 만들어두어 유사시 해당 영역을 바로 대체해줄 수 있어야한다.


 그래서 컨트롤타워는 전체 기획단의 단장이 맡아야하며, 상황기록자는 기획을 처음부터 총괄 기획한 담당자가 맡아야한다. 그래야만 상황기록을 하며 전체 틀에서 어느 부분이 어긋났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영역 담당자들은 실무자들로 배치하며, 버퍼를 중간관리자로 두어야한다. 중간관리자는 보다 포괄적으로 영역을 관리할 수 있기때문이고, 실무자들은 해당영역에 전문성을 갖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보다 적절하게 대응이 가능하다


컨트롤센터는 움직이지말고 통일된 커뮤니케이션을 주면 된다


 자, 워크숍사례로 돌아와보자. 워크숍 준비단은 5명이다. 준비단에서 2명이 행사 진행을 맡고 있으며, 준비단장은 컨트롤센터가 된다. 그리고 남은 2명이 버퍼를 맡아 돌아가며 일손을 돕는다.


 갑자기 워크숍에 사장님이 오셨다. 누군가는 나가야하는 상황이지만 워크숍 참여 전직원이 우르르 나갈 것이 아니라, 컨트롤센터가 버퍼로 준비된 유휴인력 한명에게 지시하여 뛰어나가 주차 안내 및 행사장까지 의전을 맡도록 할 수 있다. 사장이 오는 것으로인해 행사의 흥이 깨지지 않으면서도 의전에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체육 행사중에 한명이 갑자기 부상 당했다. 모두가 진행자의 입만 바라볼 때 진행자는 컨트롤센터의 입만 바라보면된다. 컨트롤센터는 이송병원에 바로 전화하고, 부상자를 격리시킬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다시 컨트롤센터에서는 유사시에 준비된 다음 플랜을 지시하면 된다. 부상자 발생시, 흥이 깨졌으므로 바로 저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인근 펜션에서 워크숍행사 소음으로 인해 항의를 해왔다. 컨트롤센터인 준비단장이 먼저 가서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해야하며, 오랜시간 워크숍을 컨트롤센터가 부재하여 텐션이 떨어지지 않도록 사후처리에 대해서는 준비된 유휴인력이 대처한다.


 철저하게 준비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D-3까지 엎어지고 뒤집어졌으며, 행사당일에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행사는 매끄럽게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엎어짐을 대비하여 대안을 마련했기 때문이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더 큰 사고를 막았으며, 일원화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현장에서의 혼선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행사가 진행되길 원했던 대장이 원하던 그림이다.


 자 이제 끝일까? 아니다. 복귀해서는 행사 D-30부터 준비를 전담해온 리드와 같이 매뉴얼을 만들고, 행사 종료 직후부터는 현장 상황을 복기해야한다. 복기를 통해 어느부분을 놓쳤는지 기록하고, 향후 매뉴얼에 어떤 시뮬레이션을 놓쳤는지, 언제 챙겨야하는지 기록해야한다.


 복기를 통해 준비된 매뉴얼은 다시 다같이 보면서 팩트체크를 거치며 최종 매뉴얼로 비로소 완성된다. 하나의 행사가 비로소 끝나려면 기획부터 매뉴얼 작업까지 완료되어야한다. 아주 작은 워크숍부터 대형 법인고객 행사, 그룹사 실적 발표대회까지 이르는 모든 행사의 기본은 '기획은 엎어질 수 있고, 시뮬레이션은 반복되어야하며, 대응은 일원화되어야한다'로 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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