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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Oct 18. 2020

은행앱만 열면 화가 난다.

언번들링, 만들어지는 실적 그리고 외주화

 얼마 전 동아닷컴에서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냈다. 모두들 알고는 있었지만, 다들 귀찮으니까 딱히 문제삼지도 않는 바로 은행앱문제였다. 



 오래전부터 어플많기로 유명한 KB국민은행의 어플 출시 전략에 대해 많이들 궁금했을 터, 이와 관련해서 국민은행 고위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모바일 앱 기반에서 인터넷은행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지만 다음 세대에서의 경쟁을 위해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더 많은 앱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앞으로도 이런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심산이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KB만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 어플좀 써본사람이라면 모두 느꼈듯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등 주요 은행들의 모바일 어플 출시전략이 비슷하다. 그중에서 국민과 농협이 좀 더 많다 뿐이지 별반다를 게 없다. 




1. 은행 디지탈 전략의 어려움, 실패의 그늘


 먼저, 위 인터뷰에 따른 명목적 전략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 금융앱은 언번들링(Unbundling)과 번들링(Bundling) 전략 두가지를 취하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 국가별 금융인프라와 상황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지만, 전통적인 금융업을 영위하는 경우 언번들링에 초점을 두고 서비스를 쪼개고 있는 반면,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회사들은 언번들링으로 고객을 모으고 리번들링으로 고도화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에서는 전통 은행앱들이 언번들링에 초점을 두고 지속하고 있으며, 신생 금융업의 대표회사인 카카오뱅크, 토스, 뱅크샐러드 등은 언번들링 이후 리번들링으로 전략을 고도화한다


 일반적으로 언번들링하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 전통은행앱의 경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은행 업무라는것이 보통 조회, 송금 업무외에 크게 나아간것이 없다. 다양한 주택대출, 자동차대출, 생활대출, 펀드가입, 보험가입 등 고도화된 금융상품을 모바일을 통해서 가입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비대면으로 고객을 커버하기에는 전통은행앱의 영업 대상 연령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모바일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는 결국 그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대전제 2개 중 하나를 깨뜨리게 된다. 서비스 공급자 관점에서의 편의성 증대와 서비스 이용자 관점에서의 편의성 증대 중 후자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언번들링하는 것은 이러한 앱쪼개기를 통해 실제 현장에서는 민원처리 속도가 매우 빠르게 개선되기 때문이다


 은행원이 직접 조회하고, 심사내용을 알려주고, 대출을 실행해주는 과정들을 링크 하나 문자로 공유하는것으로 대체하고, 인장날인 하는 것까지 고객의 공인인증서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 금융상품 가입, 이용을 위해 은행을 3~4번 오가야 했던 업무들이 1~2번으로 줄어든게 사실이다. 그만큼 은행원들은 더 많은 고객들을 커버할 수 있었다.(그많은 은행원이 희망퇴직을 하고 지점을 폐점했는데도 돌아가는게 바로 이런 효과덕분이다) 


 반면, 고객들은 이런 프로세스 중간중간에서 직접 기능별 어플을 따로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분명 프로세스가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도 모르는 채 여러개의 어플을 깔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받게 되면서 편의성이 증대되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토스나 뱅크샐러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보닥, 렌딧, 어니스트펀드 등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불리우는 회사들의 특징은 그 시작을 언번들링에서 가져왔다는것이 크게 다르다. 이들의 경우 기존 전통 금융산업이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조회, 송금, 상품가입, 투자 등을 하나씩 떼와서 그 기능만큼은 전통산업을 넘어서 버리면서 시작했다.


해외기업들이 은행을 어떻게 쪼개고 서비스했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HSBC 언번들링


 토스는 은행의 송금기능들을 해체하여 가져와 히트를 쳤고, 뱅크샐러드는 다수의 은행 가입자들이 겪는 전체 계좌조회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카카오뱅크는 계좌 개설, 금융상품 가입등을 비대면으로 논스탑 제공하였고, 렌딧은 P2P 투자와 대출이라는 금융권내 높은 허들을 쉽게 무너뜨리고 간편하게 만들었다.


 다 잘할 수는 없으나, 딱 한기능만 각각의 은행에서 해체하고 가져와 키울 수 있었던데에는 기존산업이 고민했던 영업대상 연령범위를 좁히고 시작했다는데에 있다. 전국민이 모든 은행업무를 한곳에서 볼 수 없다면, 송금/조회/투자/대출 만큼은 우리회사 서비스를 통해 할 수 있게끔 만들자는 목표로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에 걸쳐 집중해서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토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20대 대학생등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시작해 그 연령대가 1040까지 확장되었다. 만약 처음부터 토스가 1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쉽게 쓸 수 있는 송금앱을 만들고자 했다면 지금의 토스는 없었을 것이다. 언번들링이 효과적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비즈니스였다.


 분명 이런 언번들링으로 성공한 회사들이 점차 다른 금융상품 리번들링까지 하게 되면서 기존 전통금융회사들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고, 위에서 밝힌 것과 같이 뒤늦게 언번들링에 뛰어들며 이도저도 아닌 앱을 만드는 기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 만들고자하면 만들어지는 바로 그이름, 다운로드 숫자


 처음에는 은행어플도 이런식으로 굳이 여럿 만들 필요도 없었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은행어플 하나면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술한 핀테크 서비스들의 등장은 은행을 위기의식으로 몰아넣었고, 공인인증서 없이도 송금을하고 아이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금융앱들이 나오면서 은행 내부에서는 대안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행장이 취임하거나, 디지털/신사업/핀테크 사업부 수장들이 교체될 때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면서 신규앱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편한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구00은행 앱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앱으로의 이사를 가기시작했다


 그리고 신규 모바일 서비스들의 성패는 편의성이 아니라 다운로드 횟수로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은행앱이라는 것이 데일리로 매일 들어올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니 MAU를 측정할것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내부보고용 달성 KPI 지표로는 다운로드만한게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은행들은 앞다투어 행원들에게 할당 다운로드 수치를 내려보내기 급급했다. 전국 지점 실적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은행 특성상 매일, 매주, 매달 지점 내 달성수치를 순위로 나래비세우고 실적압박을 미친듯이 가했다. 그리고 이전 어플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반강제로 신규 어플로 옮길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어플 하나만 깔아주세요" 멤버스 大戰에 끙끙 앓는 은행원들

어느 은행이랄것없이 권유직원 코드 넣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는 곧, 00은행 500만 돌파! ㅁㅁ은행 800만 돌파!를 외치며 서로가 각자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했다며 자축하고 프로모션에 이벤트 팡파레를 틀어대기 바빴다. 이와같은 일들이 2010년대 중반부터 5년 가까이 벌어진 참사들의 반복 결과가 지금의 어플 지옥에 떨어진 대한민국 금융의 민낯이다.


3. 홍철없는 홍철팀, 전속 개발자 없는 디지털 회사


 각 은행들은 디지털 트랜스포에이션을 주창하면서 현재의 내부 전산시스템을 갈아엎는데 수천억원을 붓는 과정을 거쳤으며, 이런 대형 프로젝트 외에도 수십억원대의 작은 프로젝트를 매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대형, 중소형 프로젝트를 위해 대형 SI 회사들과 계약을 맺어 디지털 개발인력자원을 충원한다.


 각 은행들에 소속된 전속 개발자는 거의 전무하다싶을만큼 턱없이 부족하고 '갑'인 은행이 '을'인 SI업체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하면 을은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각각 1,2,3,4,5,6,7,8차 구차 십차 하청업체를 통해 개발자들을 소싱한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서비스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간의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
2. 회사에서 각 부서별로 만들고 있는 데이터간 간섭이 발생해도 서로 공유가 되지 않고 밀어부치고 이후 제품불량이 난다
3. 단기 파견, 계약직들과 단기계약을 맺고 진행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개발자가 철수하면, 히스토리 관리가 거의 되지 않는다.
4.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마감일정이 있고, 마감일정에 맞춰 가장 합리적인(싼) 비용을 제시한 업체에게 주로 사업이 맡겨지기 때문에 개발환경이 열악하여 품질저하까지 만들어낸다.
5. 비용과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모바일 서비스에 대한 정체성, 전략, 페르소나, 시장대응이 거의 전무한채로 런칭이 진행된다.
6. 사업팀/기획팀/IT개발관리부서/SI업체/하청업체순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업데이트, 문제 발견시 대응 리드타임이 길어진다.


 사실 위의 이야기를 하나씩 떼어보면 하나씩만 다뤄도 글 하나를 팔 수 있을 만큼 사례와 문제점들이 많겠지만 각설하고, 이는 결국 은행들이 비용문제로 인해 전속개발자를 고용하지 않고, 프로젝트단위로 유연하게 고용하는 배경에 기인한다.


 이로인해 A어플 만들고 나서 A어플을 모르는 개발자들이 새로 프로젝트로 들어와서 더 개선된 B어플을 만드는데 알고보면 A어플에서 사용가능했던 데이터, API 호출 등 단순한 인수인계사항도 넘어오지 못해 B어플을 다시 개선하고자 C어플 개발을 위한 신규 개발 프로젝트가 띄워진다. 


 이런 반복이 마치 최종, 최종최종, 최종최종최종, 진짜최종, 진짜최종최종 같이 조모임 과제하듯 수십개의 금융어플을 찍어낸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신한은행에서 만든 쏠만큼은 은행 모바일서비스중에서도 당연 발군의 실력인지 하나의 앱에서 모든것을 이용가능하게끔 다시 구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이 쏠로 꽤 호평을 받기 시작하자 다른 은행들도 이제 조금 각성했는지 점차 다시 통합앱으로 만들어가겠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은행앱뿐만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정부 모바일 서비스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이렇게 중복된 앱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 안타깝다. 토스, 뱅크샐러드, 카카오뱅크가 기존 금융업계를 삼켜가고 있는 것이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잘된것일지도 모른다. 정부에 맡기느니 유능한 스타트업들이 나와서 정부의 못난 서비스들도 개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은행하고 큰 상관은 없는데 그냥 다들 밝으셔서 화이팅하자는 의미로 가져왔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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