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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Jan 12. 2021

군대에 경제 논리가 필요한 이유

슬기로운 군대생활 여섯 번째 이야기


 군대에서 가장 기다려지는게 주말이고, 가장 힘든게 주말이다. 주5일제의 감사함도 잠시, 국방의 의무에 주5일제란 없기 때문에 근무와 작업은 주말 주요 관심사다. 그래서 매번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누가 주말에 청소를 할 것인가, 누가 근무를 더 많이 설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싸웠다. 


 간단하게 본부중대, 1중대, 2중대, 3중대, 4중대가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고 있다. 본부중대가 26명으로 1~4중대가 13명인것과 다르게 2배나 되는 인원이 있어서 본부중대는 A/B로 나누어 청소를 나눠 했다. 문제는 한 대대안에서 각 중대 선임간 위아래가 있어서 각 중대 왕고끼리 붙으면 짬순으로 순서가 바뀐다는 것이다. 


 다른 중대는 최선임들이 분대장을 달고 있어서 중대간 작업, 청소, 근무에 대한 의사결정관련하여 그들의 의견에 무게가 실어진다. 암만 내가 본부중대를 대표해서 자리에 나가도 선임들이 짬(연차)으로 밀어붙이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문제는 항상 발생했다. 서로가 각자의 핑계를 대며 순서를 바꿔가기 일쑤였다. 1-2-3-4-본부A-본부B 순서대로 했는데, 중간에 2중대가 단체로 외부 행사에 차출된다거나 4중대가 한번에 단체 외출을 하는 등 막상 청소를 시켜야할 때 자리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럴때마다 다음 순서인 중대가 당겨서 청소를 하곤 했는데, 이게 자리를 비운 입장에서는 공무로 어쩔수없이 나간 상황이 억울해서 다음에 자신들이 2번하기 싫어한다거나 기억이 안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였다. 


 이런 문제때문에 별것도 아닌 청소로 서로 갈등이 자주 났었고, 매번 그사이에서 죽어나는것은 후임들이었다. 


 똑같은 일은 근무에서도 발생했다. 군대에서 가장 큰 일은 근무인데, 밤에 풀타임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중간에 2시간씩 일어나서 탄약고, 무기고, 위병소, 상황병 등 맡은 바 업무를 해야했는데, 이것도 상술한 각자의 사정때문에 서로 누가 대신서주고, 기억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최선임이 되고서부터는 점수할당제를 도입했다. 각 중대마다 한달에 달성해야할 점수를 5점으로 계산했다. 청소는 해당일 운에따라 재수없으면 2,3번씩 시키는 장교들이 있었는데, 이를 협의해서 무조건 1번 청소시키면 다음 청소는 다음 중대가 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번 청소를 할 때마다 점수를 1점씩 쌓을 수 있도록했다.


 앞에서 문제되었던 부득이한 사정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었다. 공무때문에 자리를 비워 청소를 못하느라 순서를 바꾸는것은 서로 근무순서만 교환하는 식이었고, 자신들의 외출이나 외박같은 자의적인 이벤트로 청소 순서를 못지키게 되면, 대신 청소해준 중대가 1점을 쌓고 자리를 비운 중대로부터 0.5점을 받아오는 식이었다.


 작은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매월 점수가 바로 드러나서 부족한 점수를 채우기위해 서로 나서서 청소를 도와주고, 순서를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중대전체가 무책임하게 부대를 비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근무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주말근무를 하기 싫어했다. 특히 24시간해야하는 당직근무는 하루밤새고 다음날 낮에 잠을 잘 수 있었기때문에 누구나 토>금>일 순서로 기피했다. 다음날이 휴일이거나 당일이 휴일이어서 쉴수있는 시간을 놓치는게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일요일은 2점, 금요일은 1.5점, 나머지 평일은 1점을 부여하는 식으로 근무표를 작성했다. 그전에는 억울하게 순서때문에 토요일근무만 몇번씩하는 짬이 낮은 분대장들이 고생했는데, 모두 각자 크레딧을 갖고, 점수를 채우다보니 공평해졌다. 


 문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 나와 같은 선임급 분대장들의 반발이 꽤나 있었지만 결국 본인들도 억울한 상황이 한번쯤은 오기때문에 곧 순응했다. 재밌는 것은 말년 병장급에서 휴가를 길게가기위해 아예 해당월 근무점수를 빨리 채우고자 기피근무일 토일요일 근무를 연속으로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역을 하고서부터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군대에서 가장 잘했다고 드는 일 중 하나였다. 혹자들은 자신이 군대에서 악폐습을 없앴다느니, 자기대에서 끊었다느니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일회성 이벤트로 끊어내는것은 결코 속성을 바꿀 수 없다. 


 짬이 낮은시절 자신이 겪은 고통을 선임이 되어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악폐습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도적 보완이라는 것이 필요했고, 이 중에서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경제 원리를 담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게끔 만드는 것이 매우 주효했다. 


 한 때 내게 야근을 시키던 옆 중대장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후 있다. 군인이 괴로운것은 억울하고 분통터져서라고. 훈련 더 열심히하고 전투에서 전공을 쌓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쟁이 60년간 일어나지 않는 국가에서 군인으로 하는 일이 약탈날 일 없는 무기고와 탄약고를 지키고, 하루종일 눈을 치우고, 배수로의 낙엽을 치우고 야근하느라 청춘을 다보내니 억울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정해진 훈련일과만 마치면 모든 자유를 부여하고, 어쩔수없는 부대 내 노가다는 외부 건설업체에 요역을 주고 해결하면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고, 누군가에게 야근이나 추가 작업을 요구할때는 그에 상응하는 휴가나 보상금액을 지불하면 군대라는 곳도 억울하지 않게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때는 11년전이었는데 월급이 8~9만원 시급 4~500원의 노동을 제공하는 군대에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병장월급이 60만을 넘긴 이시점에서 외부작업도 이제는 외부 용역업체에 맡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오로지 애국심과 부대내 서열, 의무만으로 점철된 군생활 속에 돌아가는 부당한 일들도 경제논리가 더 깊숙이 개입되어 현명하게 해결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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