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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Dec 15. 2020

신부님이 내무반에 들어왔다

슬기로운 군대생활 다섯 번째 이야기

선택적 질서 순응


 이등병 막내로 들어온지 한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한달 전 나의 모습처럼 어수룩한 전투모를 쓴 작대기 하나를 달고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이등병들을 발견했습니다. 곧 우리 대대에서도 자대 배치 받는다고 하니 저 무리 중 누군가가 내 후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마침 새로 본부중대로 넘어와서 보호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허드렛일을 시작해야하는 때에 막내 후임이 이렇게 빨리 들어왔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막내만이 해야할 일을 넘길수 있는 천혜의 기회였기 때문이죠. 


 다들 군생활 풀렸다면서 제게 부럽다고 한마디씩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후임들이 들어오는 날, 정말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때 그친구를 만나니 약간은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랄까, 보통 기가 아니다? 싶었죠. 


 새로운 막내가 들어오면 으레 하는 질문처럼 밖에서 뭐하다 왔냐, 여자친구는 있냐 등등의 질문세례가 시작될때였습니다. 


 "밖에서 뭐하다 왔냐?"

 "학교 다니다 왔습니다"

 "대학생?"

 "네"

 

 생각보다 얼어있지도 않고 대답도 시원치않게 하는게 마음에 안들었지만, 아직 서툴어서 그런가 싶어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여자친구는 있고?"

 "없습니다"

 "어어 그래;;"


 생각보다 짧은 대답에 시무룩해져 다시 일하러 돌아간뒤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에 들어와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임들이 와서 그간 신입 이등병에 대해서 파악한 정보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밖에서 가톨릭대에서 사제공부를 하다가 군입대한 케이스라서 우리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아무리 그래봐야 군생활은 다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저녁에는 군부대 생활중 꼭 지켜야할 것들을 정리하여 말해주었습니다. 바지에 손을 넣어선 안된다거나, 담배를 필 때는 짝다리를 짚어서도 안되고, 담배를 피고 싶을 때는 혼자 가는게 아니라 데리고 가줄 사람을 찾아야한다거나 등등 사회에서는 불필요하다 싶은 예의범절에 대한 흔히말하는 인습에 가까운 룰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또,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을 때는 꼭 양말을 서서 신어야한다거나, 아침에 세수를 거르거나, 기상할때 밍기적거려서는 안된다는 등 군대라는 사회안에서 지켜야한 질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한 2주일 지나고(보호기간) 선임들에게 불려갔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모든것을 새로 들어온 맞후임이 지키지 않으니 관리 똑바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맞후임을 불러 다시 주지시켜주었습니다. 


 "내가 몇번 말했지만, 좀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냥 이 좁은 사회에서의 룰이야. 지키는 게 서로 좋아"

 "네네 ㅎㅎ"


 듣는 둥 마는 둥 건성건성 대답했지만, 또 이런 이등병을 갈구는것도 선임들에게 걸리는 것조차 불순한 것이라고 배워 좋게좋게 이야기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부터 매일 매일 선임에게 불려갔죠. 후임 관리 똑바로 해라. 해야할 청소도 안하고,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서 엠넷도 안키니까 괘씸하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잘못을 한 후임보다 제가 더 많이 혼난듯하네요.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슬슬 화가나서 물었습니다. 


 "왜... 내가 말한 걸 안지켜? 그게 어렵나? 좀만 빠릿하게 움직이면 되잖아?"

 "후....네 알겠습니다...."

 "아니, 좀 선임들 눈치도 보고 해야하는데 넌 그러질 않아;;"

 "아유~ 선임들 무섭습니다~"


 몇번을 애기해도 안들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제가 관리 못한다 싶으면 선임들이 갈굴차례기 때문에 굳이 챙겨줘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사무실에서는 사무실대로 제가 정당한 룰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군부대에서 흡연은 꽤나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흡연하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워집니다. 다만, 행정병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흡연시간으로 인해 같이 근무하는 근무자의 업무과중을 초래할 수 있어 사무실마다 왕고, 선임들이 흡연을 제한할 수 있죠. 


 특히 고강도 전시 훈련이 진행될 때는 더 강한 흡연통제가 진행됩니다. 오히려 전투병들은 흡연이 자유로운 반면에, 상항을 유지 전파하는 행정병들은 흡연이 오랜기간 통제되기도 합니다. 


 신부님들이 술, 담배 자유롭게 하신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어차피 군대에서는 술은 구할 수 없으니 담배로 스트레스들을 많이 푸는 데 흡연이 통제된다면 꽤나 불편하시겠죠.


훈련 중 흡연을 보장받지 못할 때의 고통은 상상초월입니다

 하루는 화스트 페이스(First Pace) 상황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전장병이 훈련에 임하느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맞후임에 제게와서 그제서야 처음으로 아쉬운 표정으로 흡연을 해도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사실 그 동안에도 별 명분이 없어서 뭐라 하지도 못했는데, 마침 잘되었다 싶어 훈련 기간 흡연에 대한 통제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불편해 보였지만, 골초들 사이에서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흡연을 통제당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당한 훈련으로 인한 행동통제였고, 이런 훈련, 작전상황으로 인해 흡연통제 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못참았는지 몰래 몰래 담배를 피고도 오기도 했지만요.


솔선수범


 누군가를 통제하려면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더 본인이 가혹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혹 아침이 너무 맛없으면 다같이 안먹으러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이것 역시 최선임이 먹기 싫다하면 차례로 아래 후임들이 따라서 안가는 형태라서 중간에 혹여 누군가 먹겠다고 하면, 그 아래는 다같이 가야하는 형태입니다. 


 제 위로 선임들은 모두 안먹겠다고 하여 먹으러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럴 때 마다 저도 역시 먹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로지 후임을 밥먹게 하기 위해서였죠. 누군가를 통제하고 싶을때는 저부터 안하면 됩니다.


 이 후임을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밥을 챙겨먹고, 점심 근무시간에도 졸지않고, 훈련상황에서도 한눈팔지않고, 청소시간도 허투루 보낸적이 없었습니다. 뭐 좀 과장을 보태자면 FM같이 빡세게 보냈던 나날들이었죠.


 오로지 후임이 편해지는 꼴을 보기 싫었습니다. 특히나 그런 혜택은 질서 안에서 서로간의 협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유독 그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특혜를 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임이 저만 보면 표정이 안좋아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선임들도 그냥 포기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맞선임 맞후임은 오래간다고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것 같습니다. 본인도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그렇지 못하고 갔었죠.


 나중에 맞후임이 일병이 되고 까마득한 후임들이 많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소, 빨래 등 허드렛일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끝까지 허드렛일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후임이 제게  언젠가 그런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빡세게 사십니까? 좀 쉽게 쉽게 가면 안됩니까?" 


그때 이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쉽게 쉽게 간다는게 합의를 통해서 가능한거잖아. 그런데 너는 후임으로 해야할 질서는 안따르고 선임으로 누리고 싶은것만 하려고 했어. 너가 만약 처음부터 질서를 따랐다면, 지금쯤 청소시간마다 이렇게 힘들어할일도 없었지. 나도 그렇고"


 결국 이 후임은 1년 가까이 허드렛일을 놓지도 못하고, 잦은 흡연통제속에서 다른 후임들을 부려보지도 못했습니다. 졸지에 선진병영이 되긴 했지요.


 그리고 1년을 가득채운 어느날 사단으로 군종병지원하여 간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떠난다고 하면 아쉬울법했지만, 저를 포함한 같이 생활하는 부대원들이 마중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후임일때부터 선임이 나가는 것을 챙기지도 않은 탓이겠죠.


 이렇게 제 맞후임이 떠나고 모든 통제를 풀었습니다. 대신 그동안 허드렛일의 비중을 원초적인 상태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등병의 일을 일병과 상병이 나눠가지면서 서로의 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갔죠.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많은 것을 느낍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대접받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꼭 그 질서를 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서를 깨고 혁신하는것은 언제나 환영받을 일이죠. 하지만, 내로남불처럼 내가 지켜야할 질서는 다 깨트리고, 언젠가 내가 갑, 권위를 가졌을때 그 질서를 다시 부활하여 악폐습을 이어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를 보며 처음엔 따끔하게 혼내주겠다고 많이들 도전하지만, 스스로의 통제도 결국 같이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힘들기 때문이죠. 어쩌면 맞후임덕분에 허드렛일을 비롯한 응당지켜야할 일을 오래하면서 더 바른 군생활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후임에 대해 따끔한 통제도 같이 할 수 있었고요. 

 

 어쩌면 이런 솔선수범이라는 것, 누군가를 계도하기 위해 나를 통제하는 것도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군대였다는 생각에 또 과거를 미화해보며 성숙해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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