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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Mar 17. 2020

우유 하나 더 마시면 안 되나요?

슬기로운 군대생활 첫 번째 이야기

"엎드려! 엎드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우유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날 줄은. 우유가 뭐길래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데...?

.

 초등학교 다닐 때 우유는 지독한 존재였다. 2교시 마치고 당번이 가지고 올라온 우유를 쉬는 시간 동안 다 마셔야 3교시가 시작될 수 있었다. 친구 중 누가 네스퀵이라도 가져오면 조금이라도 얻어 우유에 타 희미하게 들어간 초코 가루에 위안 삼으며 마시곤 했다. 또, 억지로 마시겠다고 친구들과 빨리 먹기 대결을 펼치기도 했었다. 그런 존재였다. 우유의 고소한 맛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2교시만 되면 우유 당번들이 저 초록 박스를 이고 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우유의 참맛은 군대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아침식사 때마다 우유를 보급해준다. 아침 6시 30분에 연병장(운동장)을 몇 바퀴 뛰고 살짝 땀이 올라올 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식당으로 향하면 사회에서는 구경해본 적 없는 농협 우유를 마신다. 우유는 서울우유가 최고라고 하지만, 당장 추운 겨울 소고기 뭇국에 밥 말아먹고 마지막에 차가운 우유를 목 넘기면 고소하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일품이다.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싶다.

 방송에서도 많이 알려진 군대리아(군대+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을 때는 우유의 소중함이 배가 되었다. 보급 나온 빵에 적당히 잼 바르고 샐러드를 발라먹다 보면 햄버거 2개를 먹는데 우유 200ml는 턱 없이도 부족했다. 마침 지나가던 조교(그래 봐야 나보다 군대 5개월 먼저 들어온 사람일 뿐이지만 훈련소에서 조교는 매우 강한 존재이다)가 맛있냐며 친근하게 물어봤다. 평소 훈련할 때는 혹독한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밥 먹을 때만큼은 인간적인가 싶어 웃으며 맛있게 잘 먹겠다고 대답했다. 조교도 씩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고 다시 우유 배식대로 갔다. 


 어린 마음이었는지는 몰라도 조교와 친해졌다는 마음에 문득 엉뚱한 발상이 생겨났다. 이렇게 대화를 텄으니 좀 더 가까워졌고 우유 배식이 끝나가는 조교에게 나도 한번 말이나 걸어볼까 싶어 찾아갔다. 


 "000 조교님, 우유 하나 더 받을 수 있겠습니까?"

 "뭐?" <-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햄버거를 먹으니 든든하기도 한데, 우유가 좀 남으면 하나 더 받아 마시고 싶습니다"

 "엎드려"

 "네?"

 "뭐? 네?? 엎드리라고!"


 분명 방금 전까지 햄버거 먹는 나와 친근하게 말을 건네던 조교가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당장 '엎드려뻗쳐'를 하지 않으면 사단이 날 것 같았다. 소화가 다 되지도 않아 배가 더부룩한 채로 식당 바닥에 엎드렸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

 "모... 모릅니다. 잘못했습니다!"

 "너는 지금 정량 배식, 정해진 인원한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군 보급품을 니 욕심으로 더 가지려고 했다는 거야"

 ".... 죄송합니다!"

 "네가 우유 하나를 더 받으면, 다른 동기가 우유를 못 먹는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 우리 전력이 약해지고! 전투력이 떨어지는 사태를 초래한다 이 말이다!"

 "죄송합니다!"

 "하나에 전우를, 둘에 생각하자 실시!"


 팔 굽혀 펴기 자세에서 내려갈 때 '전우를' 외치고, 올라오며 '생각하자'를 외쳤다.

 

 "하나!"

 "전우를!"

 "둘!"

 "생각하자!"

 

내려갈 때나 올라갈 때나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렇게 약 5분여간 팔을 덜덜 떨면서 기합을 받아야 했다. 친근해졌다는 오해로, 가볍게 건넨 말로, 250명이 다 같이 식사하는 식당에서 홀로 기합을 받고 있었다. 애당초 당시에 배식시간이 끝나가고 있었고, 기합을 마치고 일어나니 식당이 한산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배식대에 올려진 우유 배식 박스에는 족히 40팩이 넘어 보이는 우유가 남아있었다. 나는 어차피 버려질 저 우유를 하나 달라고 했다가 아침부터 소화도 못한 채로 기합을 받았다. 


 당시 너무 억울해서 싸이월드에 따로 기록까지 해놓았지만, 싸이월드가 막히면서 그 조교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없다. 브런치를 쓰면서 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꺼내곤 하는데, 정말 밉고 원망했던, 잊을 수 없었던 그 조교의 이름은 10년이 지난 지금 단 한. 글. 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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