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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Apr 05. 2020

군대에서 스카웃제의를 받았다

슬기로운 군대생활 두번째 이야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


 샤워를 마치고 생활관(군대 내무반, 여러명이 같이 잠자고 TV보고 생활하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이등병이라서 선임들이 목욕물품도 사주고, 바구니도 챙겨준다. 내가 오게된 곳은박격포 중대다. 무거운 대포를 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다른 곳은 소총을 들고 뛰어다닐때 우리는 땅을 파고 대포를 땅에 박고, 옆에서 쏴야할 위치를 계산하여 알려주면 조준하고 쏘는 곳이다. 박격포 중대의 특성상 협력이 필수기에 더더욱 서로를 챙겨주고 팀워크가 참 좋았다. 온지 한달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구경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게 군대에서 막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왔냐고. 보통 연대급에서 필터링 되었을텐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고. 군대는 모든게 제로 베이스라고 한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했든, 누구의 아들이든 상관없이 첫발자국은 똑같이 뗀다고 한다. 하지만, 아니었다. 친척중 지역 공무원이 있던 동기는 사단(회사로 치면 본사)에 교육병으로 남았고, 한양대를 나오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동기는 사단 훈련소의 조교로 남았다. 그렇게 훈련소, 사단, 연대, 대대, 중대로 내려오면서 좋은(?) 자원들은 상위 부대에 남는다. 사회의 스펙이 여전히 군대에서는 통했던 모양이다.


 동기들은 필터링을 거칠수록 불안해했다. 상위부대에 남아야 그나마 군생활이 편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니, 하위부대로 갈수록 힘들고 지저분한 일들만 남을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단에서 필터링이 끝나고 연대(회사로 치면 지역본부)로 동기 3명이 왔다. 이중 1명은 연대에 남고, 2명은 다시 대대로 내려갈 것이다. 마침 연대의 인사과에 신병 TO가 있어 3명중 2명이 면접을 보게되었다. 나와 P이병이었는데, P이병은 고려대 공대를 다니다 왔고, 나는 서강대를 다니다 왔다. 


 짧은 신상을 밝히는 면접과정에서 서로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확인 가능했고, 누가 더 연대 인사과 행정병으로 남는데 적합한지 판단하는데에는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대로 내려왔고, 대대의 행정병 TO가 없게되면서 중대로 오게 된 것이다. 


 겨울 입대 신병이 적어 내가 갔을때는 짬을 많이 먹은 선임들이 나를 아기새 돌보듯 돌봐주었다. 덕분에 한달내내 막내의 호사란 호사는 다 누리면서 이게 내가 미디어를 통해 들어본 군대가 맞나 싶을만큼 호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들어온 어느날 나의 관물대(사물함)에 고이 놓여있는 모자 안에 작은 쪽지가 있었다.


"작전왕의 편지다 받아라"  
-꼭 혼자 볼 것-

 

 당장 누가 볼까 무서워 황급히 모자를 감추고 취침하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이 쪽지를 발견한 이후로 선임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연애편지도 아닌 것이 나를 이토록 설레게 하는걸까. 분명 만족스러운 군생활을 시작하고 있었음에도 가슴 한 켠에는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나의 부족한 체력이, 나의 부족함이 부대원들을 고생시키지 않을까.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군생활 20개월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왜 난 행정병이 될 수 없었나. 


 이윽고 밤이 찾아오고 바로 쪽지를 펼쳐볼 수 없었다. 10시에 불이 꺼지고, 선임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다 30분에 잠들었다. 그리고 새벽 언제인지 모를만큼 아득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어떤 내용들이 써있는 것일까. 쪽지내용이 너무 궁금해 이불을 걷고 쪽지를 손에 쥔 채 화장실로 갔다. 가는내내 불침번을 서고 있는 선임들이 장난치며 말을 걸었지만, 괜찮았다.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여전히 2월이었고, 화장실은 추웠다. 추운 화장실 변기에 앉아 2장을 겹쳐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펼쳤다.


 내용이 너무 길어 간단히 요약하자면, 대대 지휘통제실(회사로 치면 경영전략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중대에 있지만, 대대 지휘통제실 인력이 한 명 추가 충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대대 내에 학벌이 좋은 병사로 충원하고자 함이었다. 문제는 이미 중대로 내려가버렸기 때문에 당장 나를 데려갈 수 없고, 내 의사를 철저하게 표현해야한다는 것이다.


 입대이래 첫 도전이 찾아왔다. 대대 본부중대, 그러니까 옆 중대로 내가 자의적인 의지를 보이며 이동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휘통제실에서는 사전에 이야기는 다했으니, 내가 끄덕이고 가고싶다는 의사만 보이면, 빠른시간안에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고민할 시간을 그리 오래 주지는 않았다. 그곳에서는 하루빨리 인원을 충원하고 싶고, 밍기적거려봐야 좋을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신병주제에 내가 내 소속을 바꾸겠다 말겠다를 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한달내내 내게 무한히 잘해준 선임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다음날 저녁 샤워를 마치고 왔을 때 또 다시 모자안에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작전왕의 두번째 편지"
-꼭 혼자 볼 것-



 전날의 내용에 나아가 내가 소속을 옮기게 되면 얻게될 이점들을 설명해주었다. 행정병으로 일하면서 얻게된 오피스프로그램 숙련스킬, 행정업무 경험, 의전을 습관화하면 미리 경험하는 사회화 등 매우 날 것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쓰며 내게 권유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뜀걸음(조깅)을 하는 데, 바로 그 작전왕(작전과 행정병 왕고참)이 내옆으로 와서 뛰며 말했다. 


 "아직도 고민중이니? 형이 곧 전역이라서, 내 스킬을 모두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 행정병 해보고 싶었잖아? 누군가 너를 필요로 한다는 것, 병장이 세번씩 찾아와서, 또 다른 간부들이 너를 원하고 있다는 것. 60만 장병중 몇이나 이런 기회를 손에 쥐어보겠어?"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세번째 권유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다른 것보다, 나를 먼저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움직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매점에서 만난 작전왕과 네번째 조우를 했다


 "생각 마친거 같은데 이제 준비되었니?"

 "네. 갈래요."

 "여기 너 먹고 싶은거 다골라"


 재밌는 사람이었다. 딱히 고른건 없었지만,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우리 중대 멘토선임이 내게 물었다. 혹시 본부중대에서 너를 데려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냐고.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결정을 할 때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렇다고 했다. 그날 저녁 중대는 뒤집어졌고, 중대장님은 다음날 나를 불렀다


 "중대장이 볼 때 너한테 맞는 자리는 거기가 맞는 것같다 (중대장님은 실망을 하지 않으셨다)"

 "네.. 죄송합니다."

 "아냐, 맞는 자리에 가서 자기 일을 하는게 좋지. 그런생각하지마"


 걱정했던 만큼, 불안했던 것보다 중대원들은 아쉽지만, 반겨줬고 중대장님도 가서 어떤것을 조심해야하는지 알려줬다. 또 가서 적응잘하라고 소속변경이 되기 전까지 해당 중대선임과 만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주었다. 그렇게 군대에서 스카웃제의를 받고 새롭게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렇게 대대 본부행정병으로 군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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