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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Apr 22. 2020

군대 선임의 뒷담화를 걸렸다

슬기로운 군대생활 세 번째 이야기

 군입대를 한지 어느덧 9개월이 되어 일병이 되고 3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군대는 짬에서 시작해서 짬에서 끝난다. 짬이란 군대에서 밥 먹는 것을 가리키는데, 잔반을 담아놓는 통을 짬통이라고 하고, 잔반통을 몰래 훔쳐먹는 고양이를 짬 고양이, 혹은 높여서 짬타이거라고 불러주기도 한다.

  

잔반을 버리는 짬통과, 짬통을 뒤지는 짬타이거


 짬이 차면서 못하던 일들도 단순 반복되다 보면 슬슬 루틴이 보이기 시작한다. 군 시절 초반,  이등병 때에는 내가 내 한 명의 몫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일병을 달면서 비로소 한 명의 몫을 다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등병은 한 명 몫도 못하고, 일병은 한 명을 몫을 하고, 상병이 세명의 몫을 하고 병장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짬이 차면서 루틴이 생기고, 이제 슬슬 여유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들만 하다가 슬슬 주차, 월간, 분기, 연간 계획에 대한 고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대 훈련 교육 계획을 짜는 교육병이기 때문에(작전과 행정병이지만, 교육업무를 병행한다) 더 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보통 전투병들은 1년이 지나서야 루틴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몸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짬이 차면서 여유가 보이자 이제는 책임이 분산되고 책임을 나누며 갈등이 시작됐다. 나는 작전과 행정병으로 우리 소속과의 업무에 집중을 하고자 했는데, 정보과와 작전과가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 발생했다. 일례로, 점심 당번을 정하는 일이 그랬다. 


선임을 잘 만나야 고생 안 한다


24시간 연락망이 살아있어야 하는 지휘통제실에 모두 점심을 먹으러가 버리면 상급부대에서 연락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보과 2명, 작전과 2명 중 1명이 사무실에 남아 전화 대기를 하고, 근무자 교대를 하고, 부대 일지를 작성해야 했다. 문제는 당시 정보과 선임이 최고선임이 되면서 이런 당번에서 빠져버렸다. 4명이서 돌아가며 근무를 하던 주기가 3명으로 줄으니 내 차례가 빨리 찾아오게 된다


 아무리 같은 사무실을 쓰는 과라고 하지만, 우리 과에서 점심 당번도 자주 하고 같이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최고선임이 부재해서 허드렛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니 과끼리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작전과 장교와 정보과 장교가 동기 기수인데 둘 사이가 좋지 않아 덩달아 그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대에서 워게임 참가자를 뽑는다는 것이다. 워게임은 가상 전투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장교와 병사가 팀을 이루고 부대별로 참가하여 부대 전술을 겨루는 것이다. 물론 텍스트 상으로 전술이다. 가상 시뮬레이션이고, 실제 컴퓨터로 이뤄지기 때문에 경쟁자와 만날 일도 없다.


워게임을 하고 있는 장교.


 문제는 워게임 참가자들에게 여러 혜택이 주어졌는데, 상급부대로 가서 참가하는 것이므로 그동안 근무를 남은 병사들끼리 해야 했고, 이들은 그곳에 가서 근무 압박이나(당번, 근무 이야기가 많은데, 군부대 모든 갈등은 근무에서 시작된다) 청소, 설거지, 체력단련 등 모든 불편하고 귀찮은 것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 9시까지 게임장에만 도착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 병사가 기상하는 6시 기상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거기에 훈련 카운트까지 되어서 복귀 후 포상휴가도 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꿀 빠는 시기가 온 것이다. 누가 워게임에 갈지 한참을 논의 중인데 정상병(정보작전과 최선임) 이 손을 들고 가겠다고 했다. 정상병은 최고 선임이기도 하고, 분대장까지 겸하고 있어서 부대를 비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일이었다. 


 과에서 병사는 1명만 뽑히기 때문에 나머지 조무래기들은 그저 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그가 없는 부대라면 간섭이나 잔소리, 갈굼이 없을 것이라 생각 들면서 해방감에 놓이기도 했다. 마침 함께 가는 통신과 병사가 나와 친한 후임 장 이병이었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정상병과 같이 가게 되면 막내 역할에 더불어 정상병의 수발을 모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꽤나 골치 아픈 것도 있었다. 장 이병은 정상병과 함께 같이 갈 생각에 어떡하냐고 내게 물어왔다


"이 일병님 어떡합니다... 망했습니다 ㅜㅜ"

"됐어 걔 어차피 놀기 바쁠 테니까 대충 비위 맞춰주고 돌아와~"

"가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장 이병을 배웅하고, 며칠이 지났다. 워게임은 월화수목금 5일에 걸쳐서 진행하기 때문에 금요일이면 볼 수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있고, 여전히 정상병 때문에 힘들지만 그래도 몸은 편하니 감사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갑자기 장 이병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일병 님 정상병 와서 대박 혼났습니다 ㅋㅋㅋ"

"아 그래? 멍청하긴, 그럴 줄 알았다 ㅋㅋㅋ 걔는 상병짬이나 먹고 왜 거기까지 가서 그러고 있냐 ㅋㅋ"

"정상병이 명령어 입력 잘못해서 중간에 과장님 빡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ㅋㅋ"

"에휴 그 짬 먹고 거기 가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ㅋㅋㅋ 아니 걍 후임이나 가라고 하지 거길 왜 바득바득 가서 그러냐"

"이일병 님은 정 상병 없으니까 좋으십니까"

"개 좋지 ㅜㅜ 계속 안 왔으면 좋겠어 아주 그냥 영영 거기서 전역 좀 하라고 전달해라 ㅋㅋㅋ"


 정말 신나게 통화 중이었다. 워 게임장에는 상시 전화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무실과 통화하는데 무리 없었기에 신나게 선임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통화 중 갑자기 쎄한 느낌이 왔다. 보통 한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으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제외한 배경 소리는 잘 안 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화 중간부터 수화기가 약간 열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밌냐....?"

"뭔 소리야 ㅋㅋㅋ 뭐하냐"

"ㅋㅋㅋㅋㅋ.... 반말하냐?"
"이 새기 뭐하냐 ㅋㅋ 형한테 장난치ㄴ.........네?"

"형이야 ㅋㅋㅋㅋㅋ 재밌었냐?ㅋㅋㅋㅋㅋ"

"아 네 정상병님"

"ㅋㅋㅋㅋㅋ 내일 보자 ㅋㅋㅋㅋㅋ"

"네 들어가십시오"


 방심했다. 내가 가본 적도 없는 워 게임장의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워 게임장에 전화기가 한대만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후임이 정 상병 몰래 빠져나와 다른 방에서 나와 통화 중이었는데, 워 게임장의 수화기가 모두 한 번호로 연결되어 있 어서 다른 곳에서 수화기를 들면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어쩐지 익숙했다. 어릴 때 엄마가 이모와 통화하고 있으면 안방에 가서 수화기를 들어 몰래 엿듣다가 엄마한테 혼나곤 했는데, 이렇게 익숙한 열린 전화소리를 왜 눈치 못 챘을까.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당장 정상병이 복귀한다. 어떻게든 변명을 하든, 거짓말로 막 든 해야 한다. 


 다른 선임들에게 말했다. 정상병이 워낙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고, 그래서 정상병의 후임이자 나의 선임인 사람들도 정상병을 탐탁지 않아했으므로, 털어놓았다. 선임들은 돌아가며 걱정을 해주었고, 정상병의 동기마저도 와서 토닥이며 내일 죽었다 생각하고 싹싹 빌라고, 자기도 말을 잘해놓을 테니 걱정 말고 자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공포였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공포였다. 하필 이날은 야간 근무마저도 없어서 10시부터 잠들 수 있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한숨만 나오는데 도리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계속 사건만 복기되고 있었다. 얼마나 잠이 들고 싶었으면 침대에 누워 모포를 머리 위까지 덮어 눈을 꼭 감았지만 생생하게 그 목소리가 기억났다.


"ㅋㅋㅋㅋ 재밌냐?"


분명 모든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아니, 모든 대화를 놓쳤더라도, 마지막 대화 일부만 들었어도 충분히 큰일이다. 제대로 청소를 안 해도 갈굼을 먹고, 아침에 음식을 남겨도 갈굼을 먹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를 해도 건방지다고 혼나는데, '감히' 일병 따위가 상병 뒷담화를 까다 걸리다니... 기억에는 2시까지 잠을 못 잤고, 잠에 들었으나 꿈에서마저 정상병에게 혼나고 갈굼 먹고 다시 깨기를 반복할 만큼 악몽이 연속되었다.


 겨우 아침에 일어나 저녁이 오지 않기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은 유독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낮 식사 당번임에도 밥이 넘어가질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다. 그가 부대로 복귀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그는 5시 언저리에 올 것이다. 5시가 되었고, 병사를 태운 버스가 부대로 들어왔다는 무전을 들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그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 할까. 무릎 꿇고 사죄를 할까. 그리고 버스에서 그가 내리고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왔다. 먼저, 정상병을 데리고 갔던 과장님이 들어오셨고, 이윽고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갔다. 


그를 마주한 순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상병님 오셨습니까"

"..... 후... 내가...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내가 널 갈궜어도... 아무리 나라님도 없는데서 욕한다지만... 이새기를 어떻게 쳐죽일까... 고민이 되더라고... 어이가 없어 어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ㅋㅋㅋㅋ 하... 진짜 건방진 게 ㅋㅋㅋ 정상병? 그새기? 걔? 내가 니 친구냐?"

"죄송합니다."

"내가 진짜 어제 버스 타고 여기 보내달라고 했어. 워게임은 끝났고, 나는 돌아와도 됐으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고. 도저히 용서가 안돼. 진짜 패 죽여 버리고 싶다니까 ㅋㅋㅋ"

"잘못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할 거 아니야 ㅋㅋㅋ 이새기 가오 잡는다고.... 하... 만만하겠지... 어떻게 힘들게 해 줄까?"

"...."

"후... 그런데, 과장님이 나 포상휴가 챙겨주시고, 말년 휴가에 다 붙여서 나갈 수 있게 해 주신다면서 치킨까지 사주면서 달래더라고. 너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그래서 진짜 진짜 너 패 죽이고 싶은데 ㅋㅋㅋ 그냥 넘어갈라고.... 일병 새기랑 싸우는 것도 너무 한심하잖냐? ㅋㅋㅋㅋ"

"죄송합니다..."

"꺼져"


 그리고 끝이 났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32살, 당시 사건이 발생한 것이 22살이었으니, 10년이 지난 일인데 글을 쓰면서도 생생하게 대사들이 생각난다. 그때의 긴장감과 그의 표정,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와 웃음소리까지. 


 살다 보면 군대 선임의 뒷담화를 하다 걸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밤샘을 하는 경우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실마리를 찾아가고, 문제를 마주하기 전까지 두렵고 공포스러울 뿐, 막상 상황이 끝나면 종료다. 더 이상 문제는 문제 되지 않는다. 


 군대가 무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행, 제한된 행동거지, 그리고 엄격하게 서열화된 내부 질서에 종속된 채 전역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서의 가장 상위에 있는 선임의 존재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이 사건을 거치며 나는 다시 한번 어떤 배움을 얻었다는 사치스러운 말로 수식할 수 없을 만큼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우유를 하나 더 먹고 얼차려를 받아도, 본부중대의 스카웃제의를 받고 이동 의사를 밝히기 직전의 두려움 보다도 군대에서 잊지 못할 가장 큰 사건은 선임 뒷담화 걸린 사건이었다. 


 보통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이후 친해져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고, 당시를 추억하며 웃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후로 단 한 번도 정상병의 전역 이후 만난 적도 이야기를 한 적도 없을 만큼 지리하게 싫었다. 이렇게 군생활에서 한 선임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다음부터는 후임 빌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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