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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Apr 19. 2020

동물의 숲, 사회학적으로 파헤치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게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 한 달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스위치 타이틀 게임으로는 마리오, 젤다, 링피트, 포켓몬에 이어 5번째 대박게임이 터졌다. 불매운동의 여파로 국내 스위치 수급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대작이 터져 나가면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동물의숲 에디션 인기가 터져나간다.


 먼저 가장 빠르게 반응이 나타난 곳은 한일 양국의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 구매 줄이다. 게임은 언제나 구매할 수 있으나, 동물의 숲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디자인된 스위치 게임기가 한정적으로 공급된다는 소식에 오프라인 대기줄이 생겼다. 


게임을 즐기는 조이콘과 게임기를 거치하는 독이 에디션 디자인의 특징이다.


 민트색과 하늘색 칼라톤의 모동숲 에디션은 매장마다 극소량 들어오고 있어 되팔이 하는 사람들까지 가세해 밤샘 줄이 여전하다. 사실 이런 대기줄에는 4가지 요인이 겹쳐버렸다. 


 (1) 먼저 불매운동 여파로 스위치 판매량이 줄자 지속적으로 공급이 감소해오고 있었다.
 (2) 배터리 보완 버전의 스위치가 나오면서 이전 버전이 커스텀 펌웨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중고 스위치 가격이 급격하게 올랐다.
 (3) 코로나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추며 생산량마저 급감하여 품귀현상이 벌어졌다.
 (4) 마지막으로 에디션 버전이 품귀현상이 일자, 암시장 거래 가격이 80만 원까지 오르며 그 열기를 더했다.


 대기줄 보도로 인해 불매운동,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이 일었지만, 그만큼 정보확산세까지 겹치며 국내외 게임 패키지 판매량 역시 터졌다. 일본에서 3일 만에 200만 장 팔린 것은 논외로 하고, 국내에서는 집계는 안되었지만, 게임기 구매를 위해 열어둔 티몬 서버가 104만 접속자를 기록하고 터졌다는 것만으로 이미 국내 인기는 체감되고 있다.


 그럼, 이런 품귀현상, 인기를 만들어낸 진짜 모여라 동물의 숲(이하 모동숲)의 인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제 게임 구매욕구를 느끼는 시점부터 재미를 느끼고 생활이 되어가는 개시 24일 차 170시간 유저의 경험으로 해석해보자


친구 신청받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정치인의 선언,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모동숲의 시스템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모동숲의 친구들은 모두 공평한 기회에서 노력을 하면 공정한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정의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직접 살펴보자 


#1. 북반구? 남반구?


- 우리는 수많은 게임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현실에서 돈이 많은 사람은 시작부터 쉽게 게임을 시작하여 열심히 현질 없이 게임을 키워온 유저들은 이런 금수저 현질러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고통을 잊고,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게임에서 조차 현실과 다름없는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모동숲에서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태어날 곳을 정할 수 있으며, 피부색, 눈코입, 머리 스타일등을 고를 수 있고, 심지어 첫 나의 보금자리 역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소득이 높고, 남반구에 태어나는 사람은 빈곤에 허덕인다. 


 호주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국가들은 높은 빈곤율로 인해 범죄가 상존하며, 오랜 기간 선진국의 식민지로 살아오며 정치전 선진 단계를 경험할 수 조차 없다.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조차 열악하여 낮은 교육 수준으로 악순환 역시 반복된다. 


 전 인구의 40%가 몰려있다는 남반구의 인구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가는 동안 북반구의 사람들끼리 지구촌, 글로벌 협력 등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대화들만이 오갈 뿐이다. 반면, 모동 숲은 내가 북반구에 갈지 남반구에 갈지 선택할 수 있으며, 내가 어느 반구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시작선이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북반구와 남반구의 계절차에서 발생하는 곤충, 열매, 화석의 다양한 차이로 인해 북반구의 주민들이 실제로 남반구 주민의 섬으로 놀러 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남반구에 태어나길 바라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2. 나의 외모


 현실의 학교나 사회에서는 PC를 강조하지만, 문화적으로 수십 년간 학습되어온 인종간 차별은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 서양인들이 아시안을 폭행하고 차별하는 수많은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봐온 디즈니의 공주들을 보며 미의 기준을 코카서스 인종에 맞추고 있으며, 여전히 수많은 화장품, 의류 회사들의 매력적인 모델은 백인이 주류이다.


 흑백 논쟁이 무성하지만, 이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차별을 논하며 호남은 푸대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흑인에 대한 차별은 예민하면서도 아시안, 황인종에 대한 차별은 흑인차별에 비하면 아예 의식조차 안한다고 느낄만큼 더하다.


 모동숲에서 피부색은 어쩌면 캐릭터의 상당 부분(2.5등신에 가깝다)을 차지하기에 중요해 보일 수 도 있지만, 피부색으로 나의 활동이 제한받지 않는다. 열매를 따거나 낚시를 할 때에도,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에도 오로지 나의 돈으로 구매 가능한 지에 대해서만 판단받기에 플레이하며 내 캐릭터가 어느 피부색을 갖고 있는지 조차 망각하기 쉽다.


 피부색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 눈 모양, 코와 입증도 너무나도 다양한 종류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가 입고 있는 옷이고, 인기가 많은 옷은 비싼 옷이 아니라 '마이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직접 도트를 찍어 만드는 옷이다. 또, 이런 디자인의 옷을 서로 칭찬해주고 디자인 코드를 공유하며 따라하기도 한다. 피부색은 배제된 채 누군가의 더더욱 독특한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모동숲에서 펼쳐지고 있다.


모동숲에서 미의 기준은 누가 더 독특한가이지, 인종간 서열에서 오지 않는다.


#3. 내 집 마련, 주거의 안정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반구와 나의 이목구비를 결정하고 나면 드디어 무인도에 도착한다. 나의 부주의로 돈 한 푼 가져오지 않았지만, 너구리는 너그럽게도 먼저 살 집부터 마련하라고 텐트를 준다. 물론 내가 어디에 집을 얻을지도 자유이고, 텐트를 짓고 나면 그제야 너구리에게 갚을 채무가 기록된다.


 나도 사회초년생이 되어 돈을 벌어보기 시작하니 보금자리에 대한 고민은 지울 수 없는 큰 것이었다. 당장 같은 월급을 받는다 해도 나같이 서울에서 부모님 집에 얹혀 지내는 사람은 주거비라도 덜 들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들은 주거비, 생활비 버는 족족 돈이다. 그렇게 시작부터 벌어져간다.


 그렇다고 안심할 것도 아니다. 막상 결혼하려고 집을 알아보는데도 도저히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억원대 집들만 남는다. 그마저도 한 해가 갈수록 치솟고 있어 당장 빚을 내서라도 사지 않으면 이제 저 아파트들은 날아가버릴까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청년 임대주택들이 그렇게 싸지도 않다. 경쟁률은 높으면서도 월세가 7~80 가까이 되는 것도 많아 과연 내 집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주거비를 감당해야 하나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그래서 다들 무리해서라도 빚을 내어 수십 년을 갚을 요량으로 집을 사는 게 아닐까


모동숲에서 집 걱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곳에서도 좋은 집을 지으려면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하다. 500만벨(벨: 화폐단위 원) 정도는 있어야 넉넉하게 집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섬의 열매를 하나 따서 팔면 100벨이다. 간혹 좋은 물고기를 낚으면 1,000 벨씩 나오기도 하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면 10만 벨까지도 벌 수 있다.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하루 10만 벨을 벌어 옷을 사고, 가구를 사도 몇만 벨이 남아 이것을 꾸준히 저축만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또, 아침 8시에 열어 밤 10시에 닫으므로 야근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주민들과 대화하고, 적당히 낚시하고, 돌아다니며 꽃구경을 하고 잠들어도 곧 빚을 갚아 집을 더 큰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바로 재미인 것이다.


내 집 마련 걱정은 없다. 일단 사람이 몸 뉘일 곳은 준다.


 내게 사는 곳, 외모, 주거의 안정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도 개입되지 않은 것은 현실에서의 조건이다. 흔히들 요즘 게임에서 많이 한다는 '현질'이라는 것이 없다. 모두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동일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동숲에 내가 빠지는 이유이다.


 내가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졌기에, 결코 꼼수란 있을 수 없다. 부정부패하지 않다. 상점에서는 내가 딴 사과와 다른 주민이 딴 사과의 가격을 차별하지 않으며, 내가 이렇게 돈을 버는 과정에서 차별이 없이 공정하다. 오로지 나의 노력, 땀으로 나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조금 더 큰집, 더 특이한 옷이라는 내 세계에서 추구하는 나의 가치관 지향점을 획득할 수 있다.


 동물의 숲 시간은 현실과 동일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밤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기 지치고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타임슬립이라는 꼼수를 통해 게임을 더 빠르고 신속하게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타임슬립이라는 꼼수를 쓴 사람들은 게임으로 할 것 다했다고 접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재밌는 것은 이들의 이런 꼼수나 편법이 나의 무인도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빠르게 돈을 모으고 빠르게 집을 키우고 더 크고 웅장한 섬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나의 섬은 하루하루 어떤 주민이 우리 무인도로 놀러 올지 기대하며 잠드는 곳이다.


 혹자는 한국인에게 모동숲이란 빨리 빚 갚고 노후를 즐기는 것이 힐링 자체인 게임이라고 재밌게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표현이든, 어떻게 힐링을 하든 부모의 배경으로 좋은 조건에서 대학에 가고, 불공정한 편법의 과정을 통해 타인의 기회를 앗아가고 열매를 취하는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모동숲이 치유해주고 있다. 


 MZ세대가 왜 모동숲에 빠져들고 있는지, 어쩌면 사회적 병폐가 만들어낸, 몰리고 몰려 갈 곳을 잃은 세대의 유일한 안식처가 이 작은 기계 속 세계는 아닌지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다. 한심하다고 혀만 차기엔 현실은 더더욱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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