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을 휩쓸고 간 '밀레니얼 세대', '90년생이 온다'의 열풍은 회사의 진짜 '밀레니얼 세대'와 '90년생', 'Z세대'에게 수많은 고민과 물음을 던졌다.
1. 나는 밀레니얼인가?
2. 90년생 다운 행동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3. 그들이 생각하는 밀레니얼답고 90년생답게 행동해줘야 하나?
어느새 밀레니얼스럽고, 90년생 세대의 특징을 모두 담아내는 회사에서의 직장인은 어떤 모습일까?
매년 회사들은 연초마다 외부강사들을 불러다 강의를 듣는다. 올해 소비 트렌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어떤 유행어들이 요즘 유행하는지, 그리고 요즘 친구들은 어떻게 기성세대와 다르게 생각하는지. 소비 트렌드는 언제나 가구의 소형화된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유행어들은 갈수록 난해해지고, 요즘 친구들은 기성세대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복장, 태도로 우리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강의를 듣고 난 후 경영진들이 일간지에서 특집기사로 낸 '밀레니얼 세대의 모든 것'을 PDF로 만들어 돌렸다. 그 특집기사에는 밀레니얼이라면 합정, 성수 등 힙한 곳에서 커피와 술을 마시러 다니고, 옷은 다소 펑퍼짐하고, 알록달록하게 입으며 스마트폰을 들고 에어팟을 낀 채로, 힙합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고 집에 와서는 혼술을 하면서 1일 1 치킨을 한다고 써놨다.
유력 일간지, 주간지들이 어른들을 망쳐놨다 / 출처 : 주간조선
"엥? 00 씨는 밀레니얼이 아닌가 봐? 맨날 회사 끝나면 집에 가잖아?"
"아? 네?! 밀레니얼 아닌가;; 맞을걸요?"
"아니야 00 씨는 이어폰도 중국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맨날 입는 옷도 청바지에 맨투맨티고, 노래도 힙합 노래 이런 건 잘 모르지 않아? 술도 안 좋아하잖아?ㅋㅋㅋ"
"아 그러네요 저는 밀레니얼이 아닌가 봐요 ㅎㅎ"
그렇다. '그들'이 규정해준 밀레니얼 세대에서 한참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그날로 나는 '밀레니얼'안하기로 했다. 어차피 규정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한테 규정 외가 된다는 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밀레니얼이 아니었을까?
출퇴근이 왕복 3시간씩 걸리도록 멀리서부터 통근을 하기 때문에 퇴근을 하고 집에만 도착해도 늦은 시간이기에 도리어 오랜 친구들과 술자리도 쉽게 못 가졌다. 에어팟은 20만 원을 호가하는데, 중국제 이어폰은 2만 원이면 산다. 그리고 어차피 대기업에서 그 '밀레니얼'스럽게 입고 다니는 거 또 한 마디씩 할 거잖아? 무신사에서 옷을 하나 산적이 있다. 라이더 재킷들이 많이 보이길래 하나 사 입고 회사에 갔더니만 호평일색이다.
"오 오늘 00 씨 오토바이는 어디 두고 왔어?"
"오늘 어디 달리는 거야?"
"근데 그거 회사 복장규정이랑은 안 맞지 않아?"
과장 좀 보태서 하루 만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일관적인 질문들을 감당해내느라 바빴다. 알고 있다. 그들은 주니어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말했지 않은가. '밀레니얼'스럽게 입으면 한 마디씩 할 것이라는 것을. 역시나 밀레니얼 기준에 벗어났다고 생각되어 다행이었다.
회사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의 취향을 이해하고자 일종의 위원회를 열었다. 사내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임의 선정하여 '밀레니얼의 생각을 회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청년정당을 만들겠다고 전국청년위원회, 대학생위원회 만들어놓고 당대표 앞에서 열심히 발표하고 토론하면 00위원, 00대표 직함 하나 달아서 정당 활동시켜주는 정치판이랑 크게 다를 게 없다.
청년정당을 표방하지만, 막상 청년들은 취준을 하거나 일을 하고 있다. / 출처 헤럴드경제, 아시아투데이
현업에서 치이고, 바쁘지만 '밀레니얼 위원회'는 별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우리 회사의 상품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밀레니얼 시각의 마케팅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다. 비극적 이게도 그 상품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역시 '밀레니얼'이다. 내 옆에 앉아있는 애가 그걸 만든 애인데, 얘보다 나이도 많고 그 사업을 잘 모르는 내가 비판하고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부의 논리에 갇혀서 시야가 좁아졌을 때 외부의 새로운 영감만 전달해줘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아무도 모른다. 위원회에서 밀레니얼 행세를 하는 나도, 그 팀에서 상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그 애도 365일 주 5일 근무하고 포괄 연봉제 안에서 일하면서 매주 주말, 언제 떠날지 모르는 휴가만을 기다리며 현생을 갈아 넣고 있는 애들이라는 것을.
형식적이지만, 또 회사원다운 논리로 성실하게 타조직 상품 서비스에 대해서 열심히 피드백을 했는데, 앞에 계시던 높은 어르신께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물어왔다.
"그런데, 실제로 00 씨는 온라인으로 그 비싼 상품을 구매하라고 하면 하겠어요?"
"저요? 아니요. 그 비싼 걸 사는데 왜 모바일로 뚝딱 사겠어요. 직접 가서 착용해보고 체험해보지 않으면 선뜻 구매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흠.. 00 씨는 생각보다 '밀레니얼'느낌이 아닌데? 나랑 더 가까운 거 같은데?"
"하하! 리더님께서 좀 더 젊은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가?! ㅎㅎ "
말했지 않은가. 이미 우리는 규정된 개체라고. 기성세대와 소비행태도 달라야 하고, 사고도 정규분포 행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밀레니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에 대화에서만 보더라도 '밀레니얼'이면서도 결코 그들이 원하는 대화 양식을 지켜줘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이 밀레니얼 위원회라는 것도 정점을 치닫고 있었다. 지금은 정리되어가고 있는 유튜브 시장에 직장인 유튜버들이 는다는 소식을 듣고, 위의 높으신 어떤 분이 우리 밀레니얼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 회사를 위한 유튜브를 만들고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실제로 유튜브를 따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 영상을 기획하고, 스크립트를 짜고 영상 촬영과 스튜디오, 조명 대여, 이후 영상편집과 자막 작업까지 얼마나 많은 비용과 공수가 드는지 알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팟캐스트였는데, 팟캐스트는 목소리만 자르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앞의 부대비용이나 시간 공수 모두를 줄일 수 있는 묘안이었지만, 결국 기각되었다. 이미 '유튜브'가 꽂혀있었다. 매주 모여 유튜브 주제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촬영을 한다면 누가 MC를 보는 것이고 누가 디렉팅을 할 것인지. 그리고 비용처리를 위한 품의는 누가 쓰고 해당 협조를 어디에 받아야 하는지 이야기들이 오갔다. 정말 다행인 것은 연말이 지나가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잊히고 다른 이슈와 이슈로 덮어졌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가릴 것 없이 개인 유튜버, 홍보팀 유튜브가 쏟아지고 있다 / 출철 이과장, 마이굿튜브
지나와보면 지난 한 해는 때아닌 사상검증을 통과해와야만 했다. 주말에 무얼 하고 노는지, 생각은 얼마나 독특한지, 옷을 입거나 취미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독특하고 세련되었는지에 대한 물음들이 생각지 못한 순간에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밀레니얼이 아니면, 그럼 편할까? 나는 생각보다 회사에서도 저녁에 술자리를 부르든, 회식이든, 또 점심에 상사분들과 밥을 먹을 때도 결코 빼는 적이 없었다. 또 부득이하게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나와 급히 일을 처리하는 것도 내 자존심의 영역이었기에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뭐 젊은 꼰대들 마냥 이 회사가 내 회사다 이런 건 아니고, 진짜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했다.
그런데, 지나오는 시간 동안 빠짐없이 들은 얘기는
"그래도 요즘 친구들 워라밸 좋아하잖아"
"그래도 회사에서 눈치 안주고 휴가 다 보내주잖아"
"솔직히 이만큼 돈 주는 회사가 어딨냐 어린애들한테"
"하.. 진짜 5년 전에 00 상무님 계셨을 때 일했으면 그런 소리 못할 텐데"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거야, 진짜 니들 들어오기 전에는 00 시스템도 없어서 죽어났다 진짜"
우리들은 '밀레니얼'이 아닌 것처럼 일을 해도 밀레니얼 취급을 받으며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워라밸 좋아하고, 틈만 나면 여행 다니고, 돈 많이 받으면서 불평이 많은 세대로 규정되어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의 양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출퇴근 시간 평균은 모두 오차 없이 비슷했고, 장기여행은 시니어급들이 더 잘 갔다. 또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뿜어내는 불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으 10분의 1도 안되었다. 승진, 평가, 같은 팀 또는 타 팀의 싫은 사람들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졌다.
옥상과 흡연실은 수많은 회사에 대한 비토가 오가는 현장이다 / 출처 헤럴드경제
물론 나이가 들며 밀레니얼이니, X세대니 나이로 사람을 규정하기보다 그들이 가진 생각들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좋은 시니어들도 있다. 나 역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꼰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자기보다 조금만 어리고, 조금만 늦게 회사에 들어오면 미숙하고,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주니어 세대들을 한데 묶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고, 워라밸만 좇는 철없는 애들"로 치부해대는 오피스의 빌런들은 꼰대로 '규정'할만하다.
아직까지 브런치에서조차 발견되는 수많은 젊은 꼰대, 나이 든 꼰대들의 '밀레니얼, 90년생'규정 행동에 대해 비토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그저 나이, 성별 따위로 묶어서 규정하는 그 행태 자체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것이다. 부디 이 글을 끝으로 발견되는 꼰대들이 안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