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30만명의 민족대이동이 있었다. 2020년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지난 6월 13일에 치러졌다. 청년실업이 수십만이고, 대졸자들의 취업률이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 시니어 세대에서는 왜 그렇게 청년세대가 공무원되는 것에 집착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공무원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경제, 인구적 환경의 근거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나는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8090년대 출생 세대들의 학습 방식의 큰 변화에서 기인한것이라고 보고 있다.
먼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밀레니얼세대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봐야한다. 8090년대생들이 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로 돌아가보자. 손사탐으로 대표되는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의 전과목 과외는 2000년대 초중반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갈수록 치열해지는 교육열과 94년 도입된 수능 시험제도의 성숙화로 인해 수능한방, 인생역전의 전설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손사탐, 메가스터디 알면 이제 아재다
대학이 가지는 가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대였다. 교육이 마지막 계층이동 사다리라고 믿고 있던 온 국민에게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곧 성공한 인생을 보장하는것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중학교에서 특목고를 준비했던 세대, 특목고 준비를 위해 중3내내 학교를 조퇴하고 학원으로 돌았던 세대, 특목고에 가서도 주말마다 학원들 돌았고, 일반고를 다니는 학생들도 더더욱 뒤쳐지지 않기위해 학원을 돌았다.
학원, 사교육은 전세대에 걸쳐 있지 않았느냐고? 맞다. 사교육은 사교육금지가 있던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횡행했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2000년대 들어 이 사교육의 형태가 앞서말한 손사탐, 손주은의 메가스터디를 배경으로 급격히 변화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강남, 8학군, 대치동의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아이들만 누릴 수 있었던 고퀄리티 교수법을 가진 전국 탑 강사진의 수업을 섬마을, 땅끝마을, 지방 어디에서나 누릴 수 있게 된 세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메가스터디를 필두로, 이투스, 대성엠, 비타에듀 등 내로라 하는 과목별 강사진을 보유한 대형 인강학원들이 생겨난 것이 바로 8090세대들의 환경이었다. 더 좋은 환경, 보다 쉽게 접근 가능한 수업환경이 마련되면서 학생들의 인강 의존도 역시 같이 올라갔다. 인강, 수능강의가 재수, 고3의 전유물에 그쳤다면 인강시장은 더 커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학원들은 앞다퉈 고2, 고1, 예비고1 점점 확장하여 늘려나갔고, 수능이 아닌 내신까지 관리해주는 강의까지 나오게 되었다.
수능? 내신? 예비중을 위한 인강까지 나왔다
중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인터넷 강의, 인강이라는 강력한 수업 툴로 무장한 인강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인강세대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전국 학생들의 수학능력 베이스 자체가 매우 올랐다는 것이고, 가장 큰 약점으로는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터넷강의라하면 중고등학교 공부의 보조수단 역할에 그쳤던것이 2000년대까지의 일이었다면, 2010년대에는 사교육시장도 발전과 확장을 거듭해나가며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인강에 익숙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 약해지자 학원들은 토익, 자격증, 그리고 취업분야까지 손을 뻗게 된다. 그야말로 인강이 있어야만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고 취업까지 준비할 수 있게 그 기초체력이 자연스레 약화되어 버린것이다.
더이상, 인강없이 독학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가 없고, 1타강사가 가르치는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의 8090세대들의 학습법이고, 공부환경인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약화시킨다. 키오스크발달로 단순 데스크 노동자들이 사라지고, ATM기가 은행원을 대체하듯 인강이라는 강력한 학습무기가 오히려 학습에서 자기 스스로 공부해서 깨닫는 경험을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어쩌면 공무원 열풍을 만든 이유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서는 특목고를 준비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서는 취업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매우 짜임새있게 프로세스가 구성되어있는데, 이게 바로 사교육에서 가르치는 최적화, 효율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강 수업마다 강사들은 왜 특목고에 가야하는지 모니터 너머 중학생들의 졸린 눈을 뜨게 만들고, 왜 스카이에 가야 성공할수있는지, 왜 공부해야하는지 목적설정해주기 바쁘다.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해서 특목고에 왔어요, 다음엔 뭘 해야하죠?"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왔어요, 다음엔 뭘 해야하죠?" "선생님, 저는 어디로 취업을 하는게 좋을까요, 뭘 준비할까요?"
오랜 기간 누가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살아오는데 익숙했기에 나의 진로, 목적설정을 하는데 서툴고, 자연스레 절대 다수가 하는 공부를 정답처럼 따라가고 있는것이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토익 900, 학점 4, 금융3종, 어학연수 교환학생 경험, 동아리 활동, 인턴 경력까지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수많은 지침들을 인터넷을 통해 풍문으로 들었다. 대기업 인사팀에서는 명시한 적 없지만, 취준생들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에 먼저간 선배들이 남겨놓은 스펙 5종, 7종들을 보며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해내는 사람들도 많다. 스스로 자기 직업을 창직하기도 하고, 꿈이 있어 공무원 준비를 하기도 하고, 늦었지만 진짜 하고 싶은일을 하기 위해 대학이나 기술교육을 배우기 위한 재도전을 하는 등 '나의 삶'에서 주도권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사교육비 부담자체가 줄어든 경우도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인강이 세상을 망쳤다, 사람들을 망쳤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런 경향성을 띄고 있다는걸 말하고 싶은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현상은 다수를 말해야하기에, 밀레니얼이라고 불리우는 8090세대가 인강에 종속되며 겪는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무섭게 느낀것이 패스트캠퍼스였다. 패캠에 대한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사회현상을 그저 말하기 위함인데, 대입과 취업이라는 난관을 헤쳐나간 직장인들이 일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시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것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 물론 신기술이 나오며 GA를 위한 마케팅 스터디와 같은 최신 마케팅 트렌드를 회사에서 배우기 어렵다면 외부에서 배울 수 있다고 보지만, 이마저도 직장인, 사회초년생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여 배우러 나오게끔 만드는것이 지금 직장인 교육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직장인 인강 전성기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약해빠진 인강세대의 잘못이냐'라는 반문이 들 수 있다. 절대 아니다. 그저 흐름이고 현상이라는 것이다. 어렸을때 글씨를 못쓴다고 타박을 많이 받았다. 어릴 때 부터 컴퓨터를 하는게 익숙해서 글씨를 잘 쓸 필요도 없었고, 지금도 잘쓸일이 없다. 브런치 마저도 키보드로 쓰고 있으니까.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왜 요즘 사람들이 글씨를 잘 못쓰냐고 타박하지 않는다. 환경이 변해 글씨를 잘 쓸필요가 없는 시대가 왔으니까.
바꿔말해보자. 미디어의 현자, 멘토, 유명인에게 세상을 배우는데에 익숙한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보는것이 정답이라고 가이드받고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무엇을 비교해보아도 공무원만큼 가성비좋은, 안정적인 직업이 없고, 생애소득까지 고려해보니 이만한 직업이 없다는 총체적 결론을 절대 다수의 대중이 '대신' 내려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것이 결코 비판받을 일이 아니고, 그저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 봐야할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밝히고 싶은 부분은 개인, 스스로의 내적 성장에 있어 인강이라는 도구는 지나치게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도 20대 중반까지 인강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히려 나중에 과실을 얻었을 때 허탈함이 컸었다. 원하는 대학에 갔을 때도 인강선생님이 말해준 장미빛 성공의 미래는 없었고, 원하는 회사에 갔을 때도 정답이라고 여겼던 유토피아는 펼쳐지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고, 스트레스받고, 생각하여 결정하는 것이 익숙치 않은 우리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의가 아니라 내적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