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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Jun 28. 2020

8090년대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2)

인생에 테크트리를 잘못 짰다


본격 8090년대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 시리즈
1편 우리는 인강세대다
2편 인생에 테크트리를 잘못 짰다
3편 사다리는 커녕 보트라도 타보자는 심정 



 어릴때 단짝친구라고 할 것이 없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그 반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빴으니까. 그래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1년이상을 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즈음 친구들이 서로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반친구라서 좋은 것인데, 반에서도 무리지어 다니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껴주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당시에는 또 스카우트를 한답시고 수업에서도 자주 빠지고 담임선생님이 공개적으로 반애들앞에서 비난을 자주 하셨기에 교우관계도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반친구들과 어찌어찌 지내긴했는데, 친구들도 다들 PC방가면 디아블로2를 한다고 했다. 나도 가볍게는 따라했었다. 문제는 나 혼자했다는 것이었다. 여름방학 틈이 날때 한번씩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느라 많이 키우진 못했지만, 정말 학원가기전 1시간은 달콤했고, 꽤나 잘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름방학 말 즈음에 반친구들과 학교에 나와서 서로 안부묻다가 모두 다 디아블로를 여전히 한창하고 있다고해서 다같이 PC방을 갔었다. 다같이 디아블로 계정을 켜고 만나 몬스터들을 잡으러 다녔다. 그리고 다가온 충격은...


 같은 레벨임에도 친구들이 몬스터를 때려잡는 타격이 더욱 세다는 것이었다. 나도 바바리안, 친구도 바바리안 둘다 힘이 센 캐릭터인데 친구는 현란한 스킬을 써가면서 몬스터들을 때려 잡았다. 양손에 도끼를 들고 잡고 다녔다. 나는 한손에 검을 들고 몬스터를 수차례 때려야만 잡을 수 있었는데 이 차이는 스탯과 스킬 트리의 문제였다.


스킬트리를 신중하게 찍어야 바바리안 훨윈드를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싸울때 맞지 않기를 바래서 민첩성을 많이 키워놨는데, 친구들은 힘을 많이 키워놓았다. 그리고, 기술도 나는 한 놈만 팬다는 생각으로 한번 때릴때의 타격력을 높여놨는데, 친구들은 타격 범위를 확장해서 한번에 여러 몬스터를 잡을수있는 기술을 배웠다는것이다. 이 스탯과 스킬트리를 어떻게 키웠는지가 중요한것은 레벨을 한번 올릴때마다 각각의 요소를 한번씩 올릴 수 있고,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 직업별 스탯을 올리는 정석과 스킬트리를 쌓는 방법이 공식처럼 퍼져있었다. 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 여름방학 내내 키운 캐릭터가 망가져버린것이다. 나보다 낮은 레벨의 캐릭터한테 얻어맞고 다닌 것도 이제 이해되는 것들이었다. 직업에 맞는 스탯과 스킬트리가 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어릴적 했던 프린세스메이커게임과 맞닿아 있었다. (Feat. 글감에 영감을 준 회사 동료 L에게 무한한 감사)


 프린세스 메이커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환경에 따라, 어떻게 키우는지 방법에 따라 종국에는 어떤직업을 가지게 될지 결정되었다. 어릴때부터 어떤 아르바이트를 시켰는지, 체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명성이나 평가를 신경써왔는지에 따라, 국왕, 공주, 작가, 수녀, 용사, 창부 등 다양한 캐릭터로 결말을 맺는다. 이 역시도 8가지 요소를 어떻게 키워왔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8090세대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게 된 이야기를 하기위해 여기까지 돌아왔다. 우리는 커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 8090세대의 부모세대가 베이비부머세대라는 것이 중요하다. 베이비부머세대가 성장해오면서 목격해온 세상은 급격하게 성장해 온 대한민국의 성장사 일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건물이 올라가고, 다리가 놓였으며 일사불란하게 전국민이 근로한다는 개념이 따랐다. 


 전쟁의 폐허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오기 까지 가장 많은 권력은 누구에게 있었겠는가. 베이비부머세대가 목격한 권력자는 7080년대 공무원이었다. 단속권한이 있었고, 개발, 등록, 영업의 모든 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은 그야말로 권력의 끝이었다. 사농공상의 유교문화 뿌리가 깊은 조선이 개화하고 전쟁을 치러낸지 얼마 안 된 한국은 여전히 펜끝으로 권력과 부, 명예를 얻는다는것이 익숙한 시대였다. 그래서 펜대가 중요한 시대였다.


 다시, 90,00년대는 어떠했는가 IMF를 경험하며 실직을 경험한 것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개념이 들어오며 생각은 공고해져갔다. 좋은 학교-안정적인 직장의 테크트리를 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명문대 - 화이트 칼라의 신화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공대를 가는것보다 여전히 문과를 가는 것이 선호되었다.



 90,00년대까지는 표에서도 보듯 문과 응시비율이 꾸준히 오르고, 매년 2배 넘는 문과 졸업자가 양산되었다. 펜대쥔 화이트칼라가 엘리트의 상징이었다. 엔지니어, 연구원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내친다는 생각에 사회적으로 투자가 위축되던 시기 안정적인 문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20후반, 30대 초반 취업 적령이라고 보는 구직세대가 인문계 응시 피크를 찍던 시기 대학을 나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2010년이후 공학계열의 정원이 가파르게 늘었고, 인문계열의 정원은 점차 줄어가고 정체했다. 대학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산실이라면, 공학계열 인재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사실 이 관점은 이미 시가총액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시가총액 10위안에 1995년, 2005년만 하더라도 은행이 배치되어있었고, 아직 신기술, 바이오 회사가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2015년, 2020년으로 갈수록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도해온 회사들과 바이오 생명을 다루는 제약회사들이 시총 10위 이내로 들어왔다는 것은 지금 당장 자연공학인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고, 실제로 2019 수능 응시 비율만 보더라도 문이과 응시비율이 1대1에 가까워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8090세대가 공무원시험에 매달렸던 것은 스탯, 스킬트리를 잘못 찍은 자들의 마지막 남은 전직 시험기회가 된 것이다. 전장의 몬스터들은 모두 컴퓨터언어, 생명공학 지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인문학, 사회학의 얇은 방패로 더이상 싸울 수 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것이다. 시대가 자연공학인재를 전사, 법사화 시켰을 때 그저 인문학, 사회학의 단검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예비전직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마을에서 약초를 캐어 파는 NPC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소수이기에 모두 달려드는 것이고.


 어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지만, 이들이 살아온 90,00년대의 학창시절은 모두 특목고 - 명문대 경영학과가 성공의 테크트리로 세워져있었고, 이들중 일부만이 신기술 사회에서 한켠 방을 얻어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소수에게 부여되는 기회이기에 이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차선책은 더이상 없기에 공무원이라는 마지막 전직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세대가 목격해온 성공의 테크트리는 더이상 자녀세대에 적용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이해안되는 자녀세대의 공무원 열풍에 갸우뚱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테크트리 변화는 앞으로도 더 가열차게 변화할 것이다. 단순 코딩만 하는 저임금 근로자들은 자동 코딩봇에 일자리는 잠식될 것이며, 디자인의 외주화를 통해 정규직 디자이너들의 설 곳은 줄어들 것이다. 더 극소수만 살아남는 이 시대에 우리는 더이상 공대생마저도 인생의 성공 테크트리가 될 수 없음을 10년뒤에 깨달을지도 모른다. 


 1편에서 밝힌 것 처럼, 우리의 삶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테크트리 역시 정해진 것 없이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기에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자동사냥이 기본이다. 사람이 아닌 봇이 사냥을 하고 다니는 시대에 테크트리가 아닌, 내가 게임을(인생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 인생관을 세우는 연습을 해야할 시대인 것이다.


+지난번에 쓰겠다고 약속한 공정경쟁은 3편에 꼭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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