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대금이 15조원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 거래 대금을 추월한 수준이었죠. 이를 두고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가상자산 투자는 청년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가상자산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둬 이른 나이에 퇴직하는 2, 30대 ‘파이어족’ 소식이 들려오고 있죠.
또다른 의견은 지금이 ‘버블’일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상자산 가격이 바로 투기의 징후라는 것이에요.
버블이 꺼지면 벌어지는 일
버블이란, 실체가 없는데도 가격 상승이 지속되다가 결국 거품(bubble)이 터지듯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는 현상입니다.
팽창했던 버블이 꺼지면 개인과 사회가 위험에 빠집니다. 익숙한 예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있죠.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경제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수출 증가 등으로 어느 나라보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어요. 1980년대 연평균 성장률이 4.6%에 달할 정도로요.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일본 사람들은 앞다투어 땅을 사기 시작했고, 곧 엄청난 거품이 더해진 땅값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죠.
그리고 버블은 그 성질대로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까진 우리가 잘 아는 대목이죠?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버블이 꺼지면 즉, 급등했던 자산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경제가 안정되는 거 아닌가?”
버블과 기업, 버블과 금융기관, 버블과 개인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졌는지 알면 조금 쉬워집니다.
[기업] “경기 호황인 줄 알았는데 버블이었다니. 사업을 확장하며 빌렸던 대출금 먼저 갚아야겠어.”
>> 설비 투자 감소
[금융기관] “김 대리, 오늘부터 신규 대출 억제해! 기존 대출금도 못 돌려받게 생겼다고.”
>> 자금 중개 위축
[개인] “자산 가격이 내려간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해. 소비를 줄이자.”
>> 소비자 물가 하락
대출을 받지 못해 투자를 이어갈 수 없는 기업은 이윤이 줄어듭니다. 곧 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의 수입도 적어지죠. 가계가 악화한 개인은 다시 소비를 줄입니다.
이 때문에 물가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경기 불황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죠.
버블은 왜 생기는 걸까?
버블 시기에 일본은 ‘일본 땅을 다 팔면 미국 땅을 네 번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집값이 매우 비쌌습니다.
상식적으론 이해하기 쉽지 않죠. 그렇게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버블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버블은 투자자의 비합리적인 행동에서 기인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더라도) 지금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과신한다는 거예요. 또는 군중심리에 섞여 투자하기도 하고요.
물론, 결과적으로 버블이었던 자산에 투자했다고 해서 꼭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근거로 한 합리적인 선택에 의해서도 버블은 발생하니까요.
믿을 만한 정보일지라도 그 절대량의 부족 혹은,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 때문에 투자 자산의 가치를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 버블일까?
최근 들어 경제 ‘버블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주택 가격이, 세계적으론 주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이에요.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0년 3분기 우리나라 주택 가격은 2019년 4분기 대비 9.3%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6%, 독일 5.4%, 캐나다 4.8% 등 주요국에 비해 높은 편이죠.
그리고 지난 2월엔 국내외 주가가 급격하게 하락했습니다. 2020년부터 이어진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고요.
국내외 자산 시장은 정말 버블인 걸까요?
통상 버블이 붕괴한 이후에나 그 자산 가격이 버블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미리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이야기예요.
버핏 지수란?
단, 현재 자산 시장이 버블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척도는 존재해요.
먼저 버핏 지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의 비율을 뜻하는데, 버핏 지수가 70~80% 수준이면 저평가된 증시, 100% 이상이면 거품이 낀 증시로 해석합니다.
주식 시장에서 ‘버핏 지수’는 적정한 주가 수준을 측정하는 기본 지표로 평가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른 의견을 내는 전문가도 많아지고 있어요.
2010년대 중반부터는 FAANG*으로 불리는 대형 기술주가 주식 시장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버핏 지수는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애플(Apple),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
기술주 등 신성장 산업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고, 신성장 산업의 기업 주식이 주식 시장 내 비중을 많이 차지할수록 버핏 지수도 상승한다는 설명이에요.
부동산 시장 버블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rice to Income Ratio·PIR)’과 ‘주택 구입 부담 지수(House Affordability Index·HAI)’를 참고할 수 있어요.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가격이 평균 수준인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PIR이 10이면 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소득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주택 구입 부담 지수(HAI)’는 연평균 가구 소득 대비 주택 담보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요.
우리나라는 대출 상환 요구 소득을 연평균 가구 소득으로 나누어 100을 곱해 산출합니다. 결과 값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소득과 비교해 대출이 과중함을 의미해요.
버핏 지수나 HAI, PIR은 경제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산 투자를 결정할 절대적인 참고 자료는 아닙니다.
이 같은 지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거니와, 앞서 말했듯 버블은 버블이 지나간 자리를 살펴봐야 비로소 그 진위를 판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버블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아는 것, 지금 하는 투자가 근거 없는 과신을 발판 삼진 않았는지 체크하는 것은 중요해요.
"곤경에 빠지는 건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에서 인용한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이따금 떠올리며 나의 금융 생활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