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기록 보관실 안은 정적과 먼지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세 사람은 마치 조심스레 들어온 침입자처럼 천천히 책장들 사이를 거닐었다. 파비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책등의 오래된 제목들을 읽었고, 클라라는 손가락 끝으로 먼지를 걷어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루키우스는 말없이 책장 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클라라가 초조하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 대체 뭘 찾으려고 하는 거야? 끝도 없잖아."
파비우스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답했다.
"기록 보관인은 중요한 기록을 따로 정리했을 거야. 그걸 찾으면 돼."
루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보관실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에 따로 분류된 책장들이 있는 것 같은데."
파비우스와 클라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보관실 가장 구석진 곳에 낡은 책장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책장이 다른 책장과 달리 유난히 깨끗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파비우스가 책장에서 손을 뻗어 한 권의 기록물을 꺼내 들었다. 표지에는 단순히 『유베니스 마을 주민 기록』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고, 페이지들은 이름과 날짜로 가득했다. 파비우스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중얼거렸다.
"이상한데…"
클라라가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며 불안한 듯 물었다.
"뭐가?"
파비우스는 안경을 다시 한 번 고쳐 쓰고 책을 주의 깊게 응시했다.
"이 기록들이... 이상해. 생일 날짜가 어느 순간부터 아예 적혀 있지 않아."
루키우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파비우스는 책을 넘기며 다급하게 말했다.
"여기 봐. 처음 페이지는 모두 생년월일이 있어.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모든 생일 기록이 사라지고 이름만 기록돼 있어. 날짜가 아예 없다고."
클라라는 긴장한 듯 팔짱을 꼈다.
"그럼 그때부터 생일이 사라졌다는 뜻이야?"
파비우스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루키우스는 심각한 얼굴로 파비우스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중 기록 보관실 바깥, 광장 쪽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클라라는 조급히 창문 앞으로 다가가 밖을 내려다봤다.
“광장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세 사람은 서둘러 도서관을 나와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광장 한복판에는 누군가 화려하게 장식한 커다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루키우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이 케이크… 갑자기 누가 여기 둔 거지?”
광장 옆에서 마르쿠스와 유스티나가 작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팔짱을 낀 채 큰 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 케이크가 여기에 왜 있는 거냐고! 지금 이걸 축하할 생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유스티나는 차갑게 팔짱을 끼고 그를 비꼬듯 바라봤다.
“그럼 네 말대로라면 우린 이제 아무것도 축하할 수 없는 거겠네? 생일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마르쿠스는 유스티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클라라는 루키우스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이유가… 우리가 아까 책에서 읽었던 그 내용 때문인가?”
루키우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생일이 없다는 건 단지 축하할 일이 없다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숙하고 있는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때, 광장 한쪽 구석에서 플로라가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는 마치 누군가에게 보이기라도 하는 듯 품 안의 작은 바구니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런 플로라의 곁에 서서 침착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루키우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저 아이의 존재가 우리가 생일과 성숙을 왜 되찾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파비우스는 여전히 책을 품에 안고 심각한 눈빛으로 말했다.
“맞아. 아이를 키우는 건 단지 책임뿐 아니라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해. 생일이 없다면 우리는 그런 성숙을 가질 수 없어.”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케이크를 둘러싸고 서로 논쟁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촛불을 켜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케이크 위의 흰 크림은 점점 말라갔고, 축하의 말이 쓰였어야 할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렇게 유베니스의 시간은 다시 무거운 정적과 불안 속에서 흘러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점점 더 깊은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었다.
루키우스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 케이크를 말없이 응시하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가 생일을 되찾지 못하면, 이 마을도 영원히 멈춘 채로 남게 될지 몰라.”
그의 말은 아무도 듣지 못한 채 공기 중에 흐릿하게 퍼져나갔고, 광장 위로 내려앉은 시계탑의 그림자는 더욱 길어져만 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바람이 스쳤다. 케이크의 크림은 굳어 갔고, 촛불은 끝내 켜지지 않았다.
그때 게시판에 새 종이가 붙었다.
— 주민기록 점검 안내: 오늘부터 배급 지연
— 정오 전후 이동 통제 예고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골목 끝에서는 낡은 스피커 기둥을 옮기는 이들이 보였다. 어깨 무전기에서 짧은 시험음이 세 번 울렸다.
유스티나는 작은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었다. 잡음 사이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삑, 삑, 삑.
“낮엔 건드리지 말자.” 루키우스가 말했다. “밤에 확인해. 언덕 쪽이든, 탑이든.”
파비우스는 도서관에서 가져온 얇은 지도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클라라는 케이크 상자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
광장 위로 시계탑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시작될 것처럼 공기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