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Heyday) 의 정의
모두의 인생에는 최고로 빛나는 전성기가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밝기의 정도일 거다.
누군가의 전성기는 너무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다. 또 어떤 누군가의 전성기는 너무 찰나처럼 짧게 스치는 미약한 빛이라 존재했단 사실도 모르고 지나간다.
어느 정도의 밝기여야 만족스러울까. 너무 뜨거운 빛은 연약한 날개를 녹이고 볼품없는 빛은 아쉬움을 남길 거다.
“안녕하세요. 긴 명절 연휴가 지나고 다시 돌아온 한별 뉴스타 시간입니다. 유독 쌀쌀했던 지난 겨울이 끝나고 이제 봄이 완연한 느낌인데요. 다시 돌아온 한별 뉴스타는 오늘도 한별그룹에서 가장 뜨겁게 반짝이는 팀의 최연소 막내 팀원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게다가 오늘은 특히 열정으로 더욱 반짝이는 분을 모셨습니다!"
눈앞에서 깜빡이는 빨간 불. 돌아가는 카메라. 미리 합을 맞춰둔 다정한 피디님의 큐사인.
“드디어 오늘은 전국민을 패셔니스타로 거듭나게 도와주고 있는 엠지 패션 트렌드 리더 치크폴리오팀을 모셔볼 예정입니다. 지금 제 옆에는 치크폴리오팀 막내분이 앉아계신데요, 아마 한별에서 지금 가장 뜨겁게 주목 받고 있는 팀이라 많이 바쁘셨을 텐데, 귀한 시간 내주신 오늘의 뉴스타를 반갑게 소개해볼게요! 우리 한별 신사업을 가장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는 치크폴리오팀 홍연조님을 모셨습니다."
세련된 새나님의 목소리가 스포트라이터처럼 나를 비췄다.
“안녕하세요 플랫폼 비즈니스 솔루션 3실 치크폴리오 사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홍연조입니다.”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목울대에서 방방 뛰었다. 긴장감에 입술을 짓씹고 나서야 아차싶었다. 오늘은 평소 바르던 틴트 대신 방송에 잘 나와보겠다며 매트한 립스틱을 발랐기 때문이다. 입술을 달싹일 틈 없이 다음 순서 대답을 복기했다. 테이블 아래 숨긴 손가락이 알래스카 얼음을 쥔 거처럼 척척하게 얼어갔다.
"먼저 저희 팀에 소개드리면, 한별의 쇼핑 서비스 '치크폴리오'의 사업모델을 기획하는 팀입니다. 치크폴리오는 패션의 새로운 패러다임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단순히 패션 브랜드들을 입점 시켜 옷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넘어, 한별이 국내에서 최정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인공지능 데이터 서비스를 접목할 예정인데요. 치크폴리오에서는 단순히 옷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모든 구매 내역을 개인 데이터베이스화 시켜 쇼핑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껴줄 수 있도록 나만의 쇼핑AI가 패션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큐레이션 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국내 최정상 IT기업 한별이 라이프 스타일 사업에서 어떻게 새로운 사업을 꾸려나갈 것인지 올 연면 큐레이션 서비스 런칭을 앞두고 현재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여기까지 우리 팀 팀장님 컨펌까지 모두 받아 완성한 팀 소개 멘트를 마쳤다. 절대 틀리면 안 되는 이 방송의 핵심 목적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포털을 기반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IT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답게 한별엔 무수히 많은 팀들이 존재했다. 매일 팽창하는 우주처럼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한별이 서로의 팀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는 목적으로 인사팀에서는 비정기적으로 '한별 뉴스타' 사내방송을 진행한다. 방송엔 각 팀 막내가 출연해 이야기를 전하고 이건 사내에 우리 팀을 피알할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이었다.
신사업 팀에게는 우리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사내에 잘 피칭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선배들이 입 모아 말했다. 그러므로 달달 외운 지문들이 목구멍에서 앞다퉈 나가겠다고 비트를 타느라 랩처럼 빠르게 쏟아냈다.
흡사 리듬의 빠르기만 보면 사내방송이 아니라 쇼미더머니에 나온 수준으로 곡기에 가까운 비트였다.
"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크면 우리 연조님 이야기할 때마다 눈이 막 반짝거려요."
우다다 쏟아낸 경박한 박자에도 새나님은 듣기 좋은 칭찬으로 심신을 안정시켰다. 그 이후로 새나님도 준비된 질문 몇 가지를 더 던졌다. 팀에서 준비중인 치크폴리오의 큐레이션 서비스에 대한 소개까지 끝내자 주요한 산은 좀 넘었다는 안심이 들었다. 그제야 숨 내쉬는 박자가 4분의1박자 정도 길어졌다.
“치크폴리오에 대해 더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지금부터는 연조님에 대한 소개부터 듣고 가도 될까요?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오늘 연조님이 후반부에 이야기해주실 한별과 함께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저희 이번 24년 상반기 신입 한별 공채 때 사용될 예정인데요. 미래 한별인에게 할 이야기에 앞서서 우선은 이 방송을 듣고 있는 한별인들에게도 연조님을 소개드려야 할 거 같아요."
인사팀 소속 새나님 진행은 탁월했다. 뉴스 진행하던 아나운서를 텔레비전에서 똑 꺼내온 것처럼 발음 발성 표정까지 완벽했다. 테이블 아래 안 보이는 곳에서 긴장해 새파랗게 질린 내 손을 몰래 잡아주는 것까지 사람이 완벽했다.
“우선 저는 아직도 가끔씩 꿈을 꾸다가 막 놀라서 깨요.”
합의되지 않은 내 발언에 새나님이 환하게 웃으며 눈을 맞춰줬다.
우리 팀과 관련된 질문들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기계처럼 달달 욀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머릿속이 백지로 환해졌다.
“대학생 때 한별 신입 공채 지원하고 불합격 창 보면서 울었던 그때 악몽을 가끔씩 꾸거든요.”
그제야 새나님은 손에 들고있던 큐시트를 본인 다리 위에 올렸다. 글씨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엎은 것이다.
그것은 즉 지금부터 내 이야기는 맘껏 샛길로 새도 된다는 묵언의 허락 같았다.
“한별은 불합격을 파란색 글씨로 해두고 합격일 때는 빨간색 글씨거든요. 대학생 때 신입 공채 지원했을 때는 매번 파란색 글씨를 봤었거든요. 이제 한별에 입사한지 1년 4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아직도 그때 꿈을 꿔요. 아마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 같아요.”
판교 테크노벨리에서 가장 높게 솟은 한별 사옥에 발 붙이고 산지 1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합격보단 불합격의 감각이 발바닥에 생생했다. 내 인생이야말로 본질이 파란불 반짝이는 불합격인데 잠시 잠깐 샛길로 들어 한별에 합격한 것 같다고 해야하나. 적당히 좋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다 들어가도 될 사내 방송인데도 불쑥 진심이 튀어나왔다.
“맞아요 우리 연조님은 22년 하반기 경력 공채로 입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럼 신입이 아닌 경력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연조님은 어떤 일을 하다 한별 신사업실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더 궁금해지네요.”
정해진 정도正道를 걷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탁월한 진행자 새나님이 먼저 캐치하고 큐시트를 덮은 건지도 모른다.
“대학생 때 신입 공채를 여러 번 쓰고 떨어지면서 제가 한별에 입사하기에는 어학도 학벌도 모두 다 너무 부족하다는 게 피부로 와닿더라구요. 그렇다고 계속 한별만 바라보면서 취준만 매달릴 순 없는 상황이라 졸업하기 전에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했거든요. 그때 대학시절 내내 붙어 살던 선배들도 저랑 똑같이 취업을 못해서 헤매고 있었는데, 그 선배들이 갑자기 모여서 사업을 시작하더라구요.”
“와 벌써 너무 멋있는데요, 그럼 대학 선배들이 스타트업을 차렸다는 거네요?”
“투자받아서 진행하던 게 아니라 정석의 스타트업도 아니었어요. 책 좋아하는 우리끼리 돈은 안 되더라도 열정으로 부딪혀보면 어떻겠냐고 아주 작게 시작했어요. 저도 선배들처럼 책을 너무 좋아하다보니까 정신 차려보니 같이 책을 나르고 있더라구요.”
새나님은 눈을 반짝이며 그때의 우리 사업에 대해 질문했다.
한별에 입사하기 전까지 연조님의 인생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그 목소리에 저절로 지난 추억과 웃음이 팽팽해져 긴장감의 단추가 톡 터져나갔다. 죽기 직전 순간도 아니면서 주마등처럼 찰나 같았던 이십대가 스쳐 지나갔다. 둑 터진 것처럼 편안하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결국은 돈을 바라고 했던 일이 아니라 열정으로 부딪혔던 일이라 저희 사업은 결국 망했고 지금은 세상에서 없어졌어요. 그렇게 실패했을 때 다시 한 번 도전했던 게 한별이었어요. 그땐 신입이 아니라 경력 공채를 썼고, 늘 서류부터 탈락했던 신입 공채랑 달리 지금 여기 있게 되었어요."
“아마 연조님이 선배들과 했던 그 사업이 연조님을 크게 성장시켰기 때문 아닐까요? 지금부터는 올 상반기 신입 공채에서도 사용하게 될 선배들의 인터뷰로 연조님께서 한별에 입사할 수 있었던 나만의 이야기와 노하우를 좀 들려주세요."
실패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내 지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뜨거운 전성기 중 한 지점은 아닐까.
"신입 공채 지원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저보다 훌륭한 스펙과 경험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 한 분이라도 내 인생에는 성공보다 실패 경험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시면, 저처럼 많은 실패의 허들에도 다시 일어서서 뛸 수 있는 회복력을 가졌다는 걸 이야기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면접에서 이야기했던 것도 제가 가진 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단한 성공 성취 경험이 아니라, 실패에도 번번이 다시 일어나서 신발끈 묶고 뛰어가는 집요함과 열정이 한별이 시도하는 신규사업이 하게될 맨땅의 헤딩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거든요. 성공은 늘 성공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구요.”
이 이야기를 하던 가진 거라곤 간절함과 열정 뿐이었던 스물일곱의 내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한별의 창립자 문석준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 시절 스타트업 신화를 일군 장본인이었다. 천재 공학자 소리 듣고 살아온 그는 한별을 창립한 이후 단 한번의 곡절 없이 국내 굴지 대기업으로 일군 기업인이었다. 취업 카페에서 문석준이 아주 간헐적으로 신입 공채 면접에는 참석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개발자 한정이었다.
개발자도 아니오 신입 공채 트랙도 아닌 경력직 수시 채용이었으니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갔다. 문석준을 차치해도 그날 만나게 될 신사업 본부장과 실장 인사팀 인사까지 숨 막히게 높은 벽들이었다.
하지만 그날 들어간 면접 자리 정가운데에는 문석준이 만든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접했던 문석준 얼굴이 실물로 존재했다.
-임원들은 다 말리지만 저는 가끔씩 들어와서 우리 회사에 지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주 즐겁습니다. 물론 오늘 이 자리가 서로에게 즐거운 자리로 기억될진 끝나봐야 알겠지만. 반갑습니다.
문석준의 인사에 파르르 떨려 웃지도 못했다. 최종 임원 면접엔 지원자 셋이 함께 들어갔다. 나를 가운데에 앉힌 이유는 주렁주렁 서로 무거운 무게 자랑하는 왼쪽 오른쪽 지원자 사이 균형추 역할이 분명했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패션의 본고장 문화'를 먹고 자란 왼쪽 지원자.
한별의 최대 경쟁사 T사 해외사업에서 4년 근무하고 역으로 신사업에 매력을 느껴 지원했다는 오른쪽 지원자.
-홍연조님은 이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너무나도 명확한 불합격 시그널 질문을 문석준이 날렸다. 비수가 되어 꽂혔지만 담담했다. 내가 문석준이어도 도 사다리타기 게임으로 왼쪽과 오른쪽 중 아무나 뽑을 거다. 내 양옆의 이들과 뻔뻔하게 어깨 나란히 맞대고 이 최종면접에 올라온 걸로 남은 인생 모든 행운을 박박 긁어다 쓴 거면 어쩌나? 머릿속에서 그런 걱정 나부랭이들이 펼쳐지던 시점이었다.
-반나절만 시원하게 울고, 다시 제가 생업 알바를 하고 있는 이모 주꾸미 가게로 돌아가 취준생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우선은 이모가 주꾸미를 기막히게 다듬는 부엌 영상부터 찍어 홍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애초에 틀에 박힌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니라 판에 안 박힌 대답만 하다 갈 작정이었다. 그때 문석준이 만년필을 든 채 고개를 들었다.
-영상 편집도 할 줄 아시나요? 전공은 그쪽이 아니었는데, 그건 갑자기 왜 배웠을까요?
-인생에 꼭 필요할 거 같아 배워뒀습니다.
-그런 식으로 얕게 아는 게 많은가요?
-네 비록 지금까지 영업사업부였지만 세무회계 지식도 필요해 공부해뒀고, 북리버리 사업은 영업이 핵심이라 직접 아파트 관리사무실을 찾아다니며 발로 뛰다보니 수도권에서 제가 안 들어가본 아파트 관리사무실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필요하다면 발로 즉각 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물론 지금은 묘연하지만 관리소장님들과 제가 쌓아놓은 라포가 언젠간 인생에 필요해질 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언뜻 실패로 보이는 경험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더 먼 시간의 관점에서는 성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문석준이 서류가 아닌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우리 회사는 잘 알다시피 실패보단 성공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본인은 어떤 실패 경험이 있을까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전액장학금을 받기 위해 설립된지 10년이 안 된 대학교에 갔고 덕분에 졸업했다고 말하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교를 대한민국에서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었을 때 모두가 처음 듣는 학교를 말하는 것도 일종의 실패일 수 있습니다. 그 대학 선배들과 창업했고 결국은 폐업했습니다. 하지만 더 먼 미래에 이 모든 걸 성공으로 바꾸려면 지금 빠르게 일어나 다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사소한 실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뛰는 게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석준은 잠시 답이 없었다. 다음 지원자에게로 질문이 넘어갈 게 뻔했다. 실패에 대한 번지르르한 합리화는 꼰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청춘 군상임을 잘 알았다.
-연조님이 지원한 건 우리 회사 신사업실 패션 서비스 사업부예요. 본인은 패션사업에 대한 이력이 전혀 없네요.
-저희 책배달 서비스 영업 뛰러 아파트 뛰어다닌 것처럼 필요하다면 국내 패션 브랜드들을 모두 발로 뛰어 만날 작정입니다. 섬유 공부가 필요하다면 오늘부터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이 현시점 실패로 머무는 패착이 바로 이거였다. 그놈의 열정. 빌어먹을 투쟁심과 도전정신. 아무도 안 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는 걸 모르고 뛰어드는 무모함. 길 없는 곳으로 가면서 뛰다보면 내 자취도 방향을 만들 거라고 믿는 뻔뻔한 패기.
-연조님 운동화는 많이 낡았겠어요. 발로 뛰는 스타일이라.
문석준이 자애로운 투로 말했다. 앞으로 부하직원 아닌 고객으로 남을 타인에게 짓는 브랜드 이미지 재고 차원에서의 웃음이었다. 얼른 돌아가 이모 주꾸미 다듬는 영상을 찍으라는 무언의 격려 같기도.
-우리 한별은 그렇게 일하지 않잖아, 그렇지?
문석준이 옆에 앉은 인사팀 채용담당 팀장을 보며 웃었었다.
-우리는 다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를 신고 있어요. 여기서는.
문석준의 판정패 발언에 왼쪽과 오른쪽이 콧김으로 웃는 소리가 대못처럼 박혔다. 그날 판교에서 집으로 가던 초행길은 가도가도 끝없을 것처럼 멀었다. 너무 멀어 도저히 콧물까지 안 흘릴 수 없을 지경으로.
사내방송 삼십분이라는 시간이 삼초이자 삼억년 같이 흘렀다. 어찌나 촌스럽게 긴장했는지 발끝을 세우고 앉은 자세 그대로 발목마저 뻣뻣하게 굳었다.
“오늘 진짜 최고였어요!”
진행하느라 고생한 새나님이 두 팔 벌려 안아줬다. 내내 멀었던 달큰하고 은은한 향이 훅 코끝으로 다가오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새나님 덕분에 말실수랑 버벅거렸던 거 다 잘 마무리 됐어요. 너무 감사해요.”
“버벅이긴요. 연조님 걱정한 것보다 훨씬 잘했어요. 다음에 또 출연해달라고 하면 또 나와주실 거죠?”
새나님은 나이스한 비지니스 매너의 정석을 보여줬다. 암만봐도 또래인데 도대체 저런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제스쳐들은 어디서 배웠을까. 학원이라도 있는 걸까.
[연조님, 9-1 회의실로 와줘요!]
방송 스튜디오가 있던 저층부에서 우리팀이 속한 9층으로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우리팀 태주님 메시지였다.
회의실로 걸어가는 내내 불편한 치마 허리를 만지작댔다. 사내방송 나간다고 산 새옷이었다. 방송은 앉아서 진행해 치마를 보일 일도 없는데 사치만 부린 셈이었다. 처음 사보는 브랜드라 늘 입던 M사이즈를 시켰는데도 컸다. 걸을 때마다 맷돌처럼 돌아가는 허리춤을 아예 한손으로 움켜잡았다.
회의실 손잡이를 돌리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그대로 굳었다.
“우리 팀 막내 너무 최고!”
우선 태주님이 들고 있는 시퍼런 케이크에 한 번. 거기 적힌 문구에 한 번. 머리에 재빠르게 고깔모자 씌워주는 세빈님 때문에 한 번. 케이크 위에 꽂힌 초가 노래를 부르며 팔을 여덟 개로 벌리며 불꽃을 나누기에 놀라서 한 번. 주연 규연님의 우렁찬 박수 소리에 한 번.
“얼른 초 불어야지!”
마지막으로 팀장님의 목소리에 레터링 케이크 위에서 빛나는 촛불이 보였다.
촛불 앞에서는 두 손 모으고 눈 감아주는 게 예의였다. 얼른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마음을 꽉 가득 채운 이 이름 모를 충만감이 좀 더 오래오래 나와 함께해주기를 기도했다.
“역시 우리 연조님은 소원도 길게 빌어.”
세빈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다 같이 불어주세요!”
내 말에 모두가 웃었다. “아니 오늘은 연조님만 불어야 돼.” 케익 든 태주님의 목소리에 아쉽지만 혼자 입김을 후 불었다. 빠르게 불이 꺼지고 나서야 그 위에 쓰인 글씨가 읽혔다.
‘치크폴리오팀 맨땅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는 막내 사랑해요’
대기업 안 신사업 팀의 숙명처럼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었다. 의식하지 않고 쓰던 말이었는데 태주님이 내 말에 허리까지 숙여가며 웃어준 뒤로 별명으로 붙었다. ‘방법이 왜 없겠어요 맨땅에 헤딩하면 다 찾아져요.’ 개발팀과 기나긴 회의 끝에 우리가 원하는 기능 구현이 연내에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한 순간. 무심결에 입버릇처럼 나온 말이었다. 창업 시절 우리끼리 망해갈 때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쓰던 위로의 트레이드마크였었다. 안 되는 게 어딨냐 맨땅에 헤딩하면 다 길이 있는 법이야. 이젠 누구도 내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으므로 이 거대 자본 한복판에서도 그 말을 쓰며 견뎠다.
“오늘 우리 막내 너무 잘 했으니까 밥 먹고 이따 커피는 밖에 나가서 먹자. 내가 맛있는 커피 살게요.”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이 두 어깨에 손을 척 올려줬다. 좀만 더 과분했다가는 행복에 체할지 몰랐다.
레터링 케이크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식당층으로 이동하게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태주님 저 태어나서 레터링 케이크 처음 받아봐요.”
“어머 진짜?”
태주님은 나의 직속 선배였다. 팀장님과 태주님 그리고 나를 제외하면 우리 팀의 세빈님 주연님 규연님(줄여서 두연님들이라고 우리는 부른다)은 남자였다. 게다가 팀에 유일무이 90년대생이자 직속 선배인 태주님은 나와 어떤 교집합으로 묶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태주님이 그 케이크 집에서 단골이라고 맞춰왔어.” 세빈님이 태주님을 띄워줬다.
“케이크 엄청 비싸지 않아요?”
레터링 케이크는 사먹어본 적도 누군가에게 사준 적도 없지만 비싸다는 것 정도야 알았다. 게다가 아까 케이크 위에 있던 색깔도 4개가 넘었다. 인쇄도 4도를 기준으로 얼마나 빡빡하게 돈이 비싸지는데. 그런 말은 또 ‘궁상’스러울까 입을 다무는 타이밍에 승강기 문이 갈라졌다.
“됐어 얼마 안 해. 집 가서 꼭 다 맛있게 먹어주면 됩니다. 이따 가족들이랑 집 가서 샴페인 터트리면서 축하하면서 디저트로 저거 케익 먹어줘요.”
하하 샴페인. 어색하게 굳으며 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태주님!”
“아 민정님!”
갈라진 문 안에는 이미 다른 팀으로 승강기가 꽉 찼다. 태주님이 빠르게 손바닥을 맞잡으며 인사하는 상대는 내게도 가볍게 눈인사를 전했다. 유민정. 습관처럼 그녀의 사원증 속 환한 얼굴 옆 이름을 읽었다.
“우리 이번주에 연습 갈 때 입으려고 나 옷 시킨 거 어제 왔는데!”
“와 저 먼저 보여주시면 안 돼요? 아니면 아예 커플로 사거나! 저도 태주님이 그때 추천해주신 옷 너무 좋아서 또 사려구요.”
“민정님이 패션 칭찬해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요.”
두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한 사람들마냥 손바닥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나의 레터링케이크보다 수 십 배는 비쌀 골프복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동문, 우리 회사 공채 직속 선후배 사이였다. 그래서 저 둘에게서는 같은 향이 났다. 이건 아까 포옹하던 새나님에게서도 났던 향이다. 매우 달큰하고 포근해 괜히 멀쩡한 호흡이 박자 잃고 한 번쯤 깊고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싶게 만드는 그런 향. 좋은 향수 혹은 집에서부터 뿌리 깊게 박혀 떨쳐낼 수 없는 체취다.
“이따 또 연락 줘요!”
엘리베이터가 식당이 있는 20층으로 올라가는 고작 몇십 초 남짓 한 시간동안 두 사람은 속닥속닥 이야기를 많이도 나누었다. 승강기에서 내릴 때 유민정은 내게 찡긋 특유의 멋진 미국 하이틴 여주인공같은 눈인사를 했다. 세련된 눈짓 인사는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몰라 촌스럽게 허리 숙여 화답했다.
“오늘도 연조님은 특식 코너지?”
세빈님이 놀리듯 물었다.
“넵 저는 오늘도 특식이요.”
태주님은 아마도 유민정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지 핸드폰을 바쁘게 눌렀다.
모두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늘 먹던 그 자리에서 만나자는 짧은 약속을 마치고 갈라진다. 회사 식당 중식은 총 네 가지 코너. 한식 양식 샐러드 그리고 특식. 주로 그날의 가장 칼로리 높은 음식들이 특식으로 배정된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품절되는 것은 샐러드 코너였다. 그 다음으로 한식. 놀랍게도 특식이 가장 느리게 품절된다. 우리 팀 모두 회사 근처에 산다. 서울 전체를 관통해 경기 남부까지 출근하는 내 통근 시간이 가장 길었다.
“어 민정! 역시 샐러드!”
저멀리 잠시 헤어졌던 유민정과 태주님은 샐러드 코너 줄에서 다시 만나 상봉했다. 누가 봐도 세련된 옷차림의 유민정과 태주님의 뒷모습을 잠시 본다. 가장 안쪽에 처박힌 특식 코너로 걸어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었다. 걸음이 유난히 거슬려 내려다보자 치마가 완전히 돌아갔다. 손으로 허리춤을 안 붙들고 걸으니 이 사단이었다. 휙 치마를 돌리며 특식 코너 트레이를 들었다.
“여사님 저 현미밥 가득이요.”
모두가 건강을 생각해 가장 가벼운 샐러드를 받으러 올 때 텅텅 빈 특식 줄에 서서 작게 외쳤다.
샐러드를 함께 받고 자리로 돌아가는 유민정과 태주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 느릿느릿 그들과 떨어진 보폭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내 허리춤의 치마는 자꾸만 헛돌았다. 트레이를 들고 가느라 돌아가는 치마를 붙들 수도 없었다.
“와 오늘 마라탕이네? 엄청 맛있겠다.”
“만두는 나눠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어 알겠어 우리 연조님 만두 다 먹어. 안 뺏어먹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세빈님과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유민정과 인사 나누고 돌아온 태주님이 다시 우리 팀으로 합류했다.
“맞다 우리 연조님 오늘 가족들이랑 파티 어떻게 할 거예요?”
태주님은 아까 샴페인 대화가 안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호의로 되물었다. 사내방송 나왔다고 파티도 샴페인도 없단 말 대신 '그냥요' 때우며 웃었다. 맥없이 끊겨버린 답에 태주님은 유민정과 있을 때의 웃음을 상실한 채 샐러드팩 뚜껑을 열었다.
가볍게 코 박아본 내 어깨에서는 그 어떤 향도 안 났다. 무색무취. 그게 우리 거리감의 원천이었다.
“와, 저분도 맨날 사내식당에서 밥 먹네. 올 때마다 보는 거 같네?”
주연님 말에 모두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마라탕 국물이나 후루룩 떠먹었다. 향기 가진 자들의 가십엔 관심이 안 갔다. 사내식당 답게 오늘도 전혀 맵지도 않은 마라탕인데 또 목구멍이 따끔따끔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