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취향 한 샷이 추출되는 과정

by 모정연

완벽한 하루의 완성은 무엇이 마침표를 찍어주는가.

“여기 통닭 방금 튀긴 거 한마리만 주세요.”

퇴근 후 버스를 두 번 환승하면 강남부터 우리 동네까지 서울을 모두 휩쓴다. 회사 저녁 코너는 단출하게 두 개 코너만 운영된다. 한식과 샐러드. 당연히 언제나 탄수화물 가득한 식사를 선택한다. 그럼에도 퇴근길에 연량이 다 소모되어 기진하기 일쑤였다.

“앗 아니요 사장님 그거 말고 여기 앞에 얘가 좀 더 큰 거 같은데요!”

“에휴 다 똑같은데, 알겠어요. 이걸로 다시 튀겨줄게요.”

하지만 오늘은 한 달 내내 준비했던 숙원사업과도 같은 사내방송이 끝난 날이었다. 비록 샴페인도 파티도 없겠지만 통닭으로라도 기념하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냄새로 늘 유혹당하지만 모른 척 뒤돌아섰던 그 통닭집이었다. 초벌해둔 닭을 다시 튀기는 동안 다른 손으로는 버스에서 내내 애지중지 들고 온 레터링 케이크를 들고 콧노래도 흥얼댔다. 버스에서 서서 오면서 혹여나 레터링 케이크가 박스 속에서 뭉개지기라도 할까 균형 잡느라 손에 빨갛게 박스 손잡이 자국이 남았다.

“맛있게 튀겨주세요!”

닭벼슬 모양 로고를 넣은 빨간색 앞치마 두른 사장님이 인자한 미소로 봉지를 건네주셨다.

“자주 와요!”

건네받은 봉지를 달랑달랑 레터링 케이크 들지 않은 오른손에 들고 걸었다. 정류장에서 신호등을 건너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우리 동네. 야트막하게 시작되는 언덕으로 제법 빼곡한 밀도로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빌라 초입을 알리는 슈퍼를 등지고 오르막을 얼마쯤 올라 숨이 좀 찬다 싶을 때쯤 우리 빌라가 나온다.

통닭과 케이크를 양손에 번갈아 들고 4층 꼭대기를 오르자 먹기 전부터 마음이 배불렀다.

퇴근하며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온 건 처음이라 엄마도 꽤나 놀랄 터였다. 엄마가 괜히 호들갑을 떨까 싶어 한별 뉴스타 방송에 나간다는 건 여태 비밀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선 그때였다.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

크게 부르며 정신없이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통닭 튀기던 기름 소리가 정다웠다면 지금은 소름끼치는 소리들이 부엌에서 들려왔다. 냄비 하나가 통째로 곧 불길에 삼켜질 것처럼 혹사당하는 중이었다.

“엄마!”

당장 가스레인지를 끄고 부엌과 연결된 다용도실 창문을 열었다. 거의 소리를 지르며 바싹 말라 타들어가기 일보 직전의 냄비를 싱크대에 처박은 뒤 안방으로 뛰어갔다.

“뭐야? 무슨 소리야?”

얼굴에는 벌겋게 장판 자국이 박힌 엄마가 그제야 부스스한 머리 꼴로 걸어 나왔다.

“엄마 지금 가스레인지 켜놓고 잠을 잔 거야?”

“아니 깜빡 잠들었었어. 아 고구마! 너 오면 준다고 내가 아까 올려놨는데!"

그제야 엄마 얼굴이 필요 이상으로 붉다는 걸 깨달았다. 단박에 엄마 어깨에 코를 박고 개처럼 킁킁댔다.

“또 혼자 술 마셨어?”

“아니야! 봐봐 많이 탔어? 맛있는 고구마로 기껏 골라 사온 건데!”

“진짜 술 마시고 이 집까지 다 태워먹으려고 작정한 거야?!”

데시벨이 순간 치솟았다. 요즘 부쩍 혼자 술 마시고 잠들기 일쑤인 엄마에 대한 응축된 불만 표출이었다.

“어 피곤해서 잠깐 깜빡 좀 졸았다. 어차피 불 난 것도 아니고, 너 아니었어도 나도 타는 냄새 나면 알아서 깨서 껐을 거야. 잠깐 존 거 가지고 유난 떨지마. 다 너 생각해서 그런 거 가지고.”

“내가 언제 고구마 먹고 싶대? 이게 유난이야? 내가 십분만 늦게 왔어도 집에 불 날 뻔 했는데?”

“그 전에 당연히 내가 일어나서 껐겟지! 불 난 것도 아닌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너는!”

“왜 맨날 그렇게 술을 먹어? 이거 뭐 어디 가서 치료 받아야 될 수준인 거 아니야?”

“힘들어서 한 잔 마신 거 가지고 어디서 사람 정신병자 취급이야?”

오가는 말들에 서로가 지켜야 할 마땅한 마지노선이 사라졌다.

“우리한테 이 집 하나밖에 없는데 이거까지 날려먹을까봐 그러잖아!”

“어휴 그래 네가 월세 내는 대단한 집 내가 태워먹을 뻔해서 미안하다. 됐지?”

“월세 얘기가 왜 나와?”

“네가 먼저 그 얘기 꺼내고 싶어서 이렇게 성질내고 있는 거 아니야! 결국 불도 안 났고 아무 일도 없는데! 술 먹는 것 가지고 트집 잡고 싶어서!”

아무래도 엄마는 술이 덜 깬 게 분명하다. 더 해봤자 득 볼 것 없는 싸움이었다. 코트도 벗지 않고 가방에서 핸드폰만 꺼냈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넣으며 삼선 슬리퍼에 발을 욱여 넣었다.

“지 아빠랑 똑같이 무슨 일 있으면 뛰쳐나가기부터 하기는.”

원래 엄마의 특기가 비아냥대는 거라는 걸 잊지 말자. 제발. 여기서 똑같이 말해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운 현관이 주의하지 않으면 쾅 닫힌단 걸 알면서도 방관한 채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아까와 반대로 내리막을 걷는 건데도 올라올 때보다 호흡이 더 거칠어졌다.

아빠와 이혼하기 전부터 엄마는 술을 자주 마셨다. 인생에 친구가 술밖에 없다는 말을 10대 때는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어른들의 삶이란 그럴 수도 있나 보라고. 내가 스물이 되고 서른 가까이 될 때까지 술에 의존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보니 엄마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피곤하고 괴로우면 술로 도망친다는 건 도피로밖에 안 들렸다.

“도대체 월세 얘기가 왜 나오냐고!”

기껏 올라온 오르막을 다시 내려가면서 구시렁댔다. 와중에도 슬리퍼 밖으로 숭덩 고개 내민 발가락이 시려웠다. 분노를 더 끌어올려야 추위가 가실 것이다. 엄마에 대한 불만이 결국 신세 한탄으로 절로 넘어갔다.

샴페인이나 파티는 없어도 적어도 가스레인지 불길은 너무한 거 아닌가.

더 너무한 것은 이 빌라촌은 어둑한 시간 갈 곳이 없단 거였다. 그 유명한 스타벅스 하나 없는 동네. 하물며 24시간 운영하는 햄버거집 하나가 없다.

결국 갈 곳이 없어 이곳으로 왔다.

일 년에 한 두번쯤 엄마와 대판 싸우면 갈 곳이 없었다. 그나마도 이곳 평상에 누가 앉아있으면 눈치를 보며 동네 열 바퀴를 돌아야 했다. 그나마 오늘치 행운이 남아있었는지 평상이 비어있었다.

“안녕하세요.”

노란색 슈퍼 간판 아래 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슈퍼보단 구멍가게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불리는 이곳은 규칙 없는 빌라들이 움집한 달동네 초입을 지키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자그마한 슈퍼 간판 조명이 어찌나 밝은지 가로수보다 시원하게 동네를 비췄다.

게다가 슈퍼 바로 앞 평상은 침대로 치면 킹사이즈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단히 컸다.

여름에 해변 파라솔을 꽂아두면 초등학생들의 포켓몬 성지가 되는 곳. 아직은 날이 덜 풀린 초봄 밤이라 한산했다.

“저, 이거 정말 죄송한데 현금을 오늘 못 가져와서요.”

계산대에 소프트콘 아이스크림 하나와 새우깡을 올리며 그제야 주머니를 뒤졌다. 이 슈퍼에 올 때마다 현금을 꼭 챙겨오곤 했는데 오늘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됐어 내가 현금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가게에 물건 사러 왔으면 돈만 주면 됐지.”

할머니는 언제나 쿨했다.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았지만 이쪽 빌라촌으로 넘어오게 된 건 5년 전 쯤이었다. 지하철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래쪽에만 살았던 터라 올 일이 없던 동네였다. 이 빌라로 이사온지 오 년 정도가 됐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데면데면하게 인사해주셨다. 반갑게 아는 척 해주는 것보다 오늘은 이런 무관심이 더 반가웠다.

“근데 오늘은 나도 오늘은 일찍 문 닫아봐야 해서 오래 못 있어. 한 삼십 분 있으면 문 닫아야 돼.”

“네 저 그렇게 오래 안 앉아있을 거예요. 그냥 평상에 아주 잠깐만 있다가 갈게요.”

앉아있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할머니는 쪽집게였다.

“추우면 이거 가져가서 덮든지.”

할머니가 계산대 의자 뒤에 걸쳐뒀던 담요를 건네셨다. 할머니 등 체온이 닿아 따뜻한 걸 얼른 손사레 치며 거절했다. 그 와중에 아까부터 갖다 대고 있던 삼성페이는 여태 인식이 안 됐다.

“이게 또 이 지랄이네.”

젊었을 적 한 미모 하셨을 게 분명한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매가 단말기를 째려봤다.

“그거 그 핸드폰에 씌워놓은 껍데기 그거 벗겨서 다시 대봐봐.”

퍼뜩 말씀대로 실리콘 케이스를 벗겼다. 아마 그립톡 때문이었는지 케이스를 벗기자마자 출금 안내 카드사 팝업들이 액정 위로 쏟아졌다.

“아 이제 결제 됐나봐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잠깐만 앉아 있다가 갈게요.”

많이 온 건 아니었어도 늦은 밤 엄마와 한 판 할 때마다 새우깡 하나를 사들고 평상에 늦게까지 앉아있다 가던 걸 기억하시는 게 분명했다. 부드러운 바닐라 맛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에 새우깡을 푹푹 꽂아 넣었다.

일상에 기쁨이 끼어들 틈 없이 너무 빡빡하면 축하 잔치도 사치가 되곤 했다.

달달한 맛으로만 범벅이어야 마땅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자 듬성듬성 심어넣은 새우깡 때문에 짭쪼름한 짠맛이 더 진하게 번졌다.



우리 회사 카페는 저렴하다.

아메리카노를 천 원에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더 좋은 건 층마다 구비되어있는 커피 머신기였다. 이건 공짜였다! 매 층마다 비치된 최고급 기계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아메리카노를 추출해줬다. 어차피 커피 효용은 잠을 깨워주고 일상의 각성이었다. 커피머신기 바로 옆 싱크대에서 텀블러를 씻었다.

엄마와 화해 못한 아침은 가슴에 묵직한 돌을 얹어둔 것처럼 갑갑했다.

어젯밤 아이스크림과 새우깡 반 봉지를 비우고 돌아가자 안방 문은 닫힌 채였다.

식탁 위엔 다 식은 통닭 그리고 뭉개진 케이크가 가지런히 올려져있었다. 아마 엄마가 정리해둔 모양이었고 버스에서 내내 뭉개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 가져간 게 무용하도록 왼쪽으로 치우쳐진 채였다. 어제 가스레인지에 놀라 케이크를 바닥에 거의 내동댕이 칠 때 뭉그러진 듯했다. 정신없이 행주로 감싸 싱크대에 처박은 냄비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새카맣게 타버린 고구마 알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엄마가 몽땅 버렸을 거다.

다 씻은 텀블러를 머신 추출기 아래 갖다댔다. 위잉. 머신기가 추출을 앞두고 근엄한 소리를 낸 바로 그때였다.

“근데 그 브랜드 옷 너무 기본 사이즈 자체가 좀 크지 않아?”

“그래서 저는 일부러 한 번 물세탁 해서 늘려주면 좋더라구요.”

커피 머신기 뒤로 이어진 휴게 라운지는 칸칸이 파티션으로 가려졌다. 네다섯 명씩 친한 사람들끼리 앉아 쉬라는 의도였다. 쉬는 공간에서는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설계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새하얗게 솟은 파티션들 아래 북유럽에서 건너왔다는 최고급 쿠션감을 자랑하는 등받이 소파 의자들이 즐비했다. 서너명 씩 마주앉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간이 티테이블도 사이에 놓여있다.

IT기업 답게 출퇴근 시간은 매우 자유롭고 특히 우리 회사는 코어 타임의 개념조차 없었기에 대다수가 회사로 출근하는 날에는 열시 경부터 붐볐다. 물론 코로나 이후로도 계속 재택을 실시하고 있으니 아침 나절의 휴게 라운지는 늘 한산하고 한적했다. 시크한 커피 머신기의 웅장한 소음에도 가까이에서 건너오는 말소리를 모두 먹어주진 못했다.

“아니면 아예 다음번에 그 브랜드 성수에서 팝업 열면 같이 한번 가봐도 좋겠다 선배님이랑.”

“그럴까? 그거 어차피 우리 팀한테는 입장권 주신다고 하셨거든.”

“근데 선배님은 팀 분들이랑 같이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아님 우리 둘은 따로 예약해서 갈 수 없는지 내가 MD님한테 부탁해봐도 되고.”

두 사람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너무 뻔했다. 유민정과 나의 직속 사수 태주님.

태주님과 나의 교집합은 같은 팀 직속 선후배란 게 전부였고. 유민정과 태주님은 직속 선후배만 아닐 뿐 모든 것에서 교집합으로 묶여있었다.

둘은 회사 바로 앞 가장 높게 솟은 오피스텔에서 함께 자취하는 것마저 같았다. 안에 영화관부터 웬만한 시설들은 다 구비되어있다는 그곳에 회사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

풍문으로는 그 오피스텔 헬스장에 가면 사내 헬스장보다도 회사 사람 마주치기가 더 쉽댔다. 내 턱이 벌어졌던 건 보증금만 일 억 가까이에 월세가 백 만원이 넘는다는 것. 물론 가장 놀라운 건 그런 걸 턱턱 내고도 저곳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것.

두 사람은 같은 강남권 외고 출신에 같은 대학 선후배에 우리 회사 공채 선후배였다. 물론 그 외고, 그 대학을 나온 후 우리 회사 공채로 입사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둘은 '패션'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대동단결했다.

또 사내 동아리에서도 수십 개나 되는 골프 동아리에 함께 가입해 활동 중이었다.

태주 선배가 호의로 던지는 질문들이 내겐 온통 난제인 게 많았다. 휴양지로 가본 곳 중 가장 좋았던 나라는?(비행기라곤 제주도 갈때만 타봤다.)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위스키와 와인 차이도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돈 안 드는 가성비 최고의 러닝을 말하자 근력 운동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가장 좋아하는 옷 브랜드는? (이거야 내 업이라 죽어라 공부했어도 '남들에게 유행하는'브랜드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는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방 스타일은? (에코백만 주구장창 메고 다녀도 편하기만 한데 가방에 스타일이란 게 있어야 하나? 가방이란 게 지퍼가 있냐 없냐 정도라면 몰라도) 가장 좋아하는 향수 취향은?

나는 태주 선배가 이야기하는 향수들의 향에 무지했다. 회식할 때 고르는 고급 고깃집 리스트와 콜키지 되는 곳에 가져가면 좋은 와인 위스키 종류들에 무지했다. 여름 겨울 꼭 해외로 떠나는 선배와는 달리 제주도 또한 수학여행 말곤 가본 역사가 없다.

나의 빈약한 추억과 경험들은 나를 취미도 취향도 없는 무색무취의 홍연조로 완성했다.

하지만 유민정은 달랐다.

그녀는 태주님을 만날 때마다 '오늘 선배 무슨 향수 뿌리셨네요.' 단박에 알아맞췄고 태주님이 새로 산 가방의 브랜드와 신발이 어디서 온 신상인지 알아차렸다. 선배에게 좋은 골프복을 거침없이 추천해 링크를 날려댔고 선배에게 소개팅 주선도 여럿 해준 걸로 알고 있다.

패션 사업부 소속인 나보다도 모든 패션 트렌드 역량 면에서 유민정이 압도적으로 앞섰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온 사람들은 그 중에서 나만의 것을 골라내 취향으로 취한다.

닥치는대로 눈앞에 있는 아무거나, 주어지는 대로 급급하게 입고 살아온 이의 팔레트가 얼룩덜룩 무질서하게 만들어진 것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선배님이랑 같은 팀이면 이런 팝업들도 업무 시간에 같이 가구, 너무 재밌겠다.”

유민정의 목소리가 거기까지를 읊었을 때였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세 방울 정도 나온 뒤 추출을 멈춘 기계가 이상한 굉음을 내뿜었다. 남의 대화를 더는 엿듣고 싶지 않아 얼른 자리를 뜨고 싶은데 머신기까지 말썽이었다.

어제 슈퍼 할머니가 삼성페이 인식 못 하는 단말기를 툭 친 것처럼 나도 머신기 옆구리를 한 번 툭 쳐봤다. 안 되면 번거롭더라도 다른 층 커피 머신기를 쓰러 갈 각오까지 한 참이었다.

분명 가볍게 톡 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머신기가 웨에에엥 이상한 소리를 냈다. 수 백만원짜리 머신기를 고장이라도 낸 걸까 아연한 표정으로 질린 순간.

“어? 연조님이다!”

가까워진 해맑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니 기계가 막 곧 폭발할 것 같아. 이거 원래 소리가 이래요?”

한번도 이 기계를 써본 적 없다는 듯 유민정이 해맑게 물었다. 태주님과 나란히 서있는 두 사람 손에는 사내카페도 아니고 회사 1층 건물에 입주된 투썸플레이스 컵이 들려있었다. 아마도 오피스텔에서 함께 나와 오천원짜리 커피 한 잔을 사마시는 여유를 즐긴 듯했다. 회사에 오면 천원짜리 혹은 이 무료 커피가 지천에 깔려있는데도.

“얘가 가끔 이래요.”

고장났다고 말하기도 궁색해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

“커피 아직 안 마신 거면 우리랑 같이 마시러 갈 걸.”

태주님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여기 머신기 커피를 좋아해서. 이게 산미가 진짜 지독해서 엄청 시거든요.”

“맞다 우리 연조님은 이 머신기 커피만 먹어. 막 하루에 네 잔도 마신다? 그치.”

물론 태주님은 내가 4천원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이 지독한 산미 때문에 머신기를 찾는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태주님은 내 이야기를 웃기다는 듯 유민정에게 가끔씩 면전에서 전하곤 했다. 연조 정말 귀엽지 않아? 같은 말들을 덧붙였다. 태주님 세계에 이런 무색무취 인간은 처음인지 그녀는 착한 성정답게 개성없음을 귀엽다고 포장해줬다.

“저는 그럼 커피 얼른 다른 층 가서 가지고 올게요.”

유민정이 그런 나를 대나무 먹는 푸바오 바라보듯 웃으며 관찰했다.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인사하고는 빈 텀블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때마침 손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주르륵 연이어 3개나 메시지가 도착했다.

[헤이! 왜 안 와!]

[큰일났다 일단 비상구로 와]

[우리 꿀떡 노리는 놈이 생긴 듯]

물론 내게도 이 삭막한 건물에서 아침을 함께 보내주는 든든한 친구가 있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