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1
라이킷
13
댓글
6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어허영감
Dec 09. 2024
1. 갑각스럽게 맞이한 퇴직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길을 가는 것
2023년 5월 중순
나는 퇴직을 1년 반 남기고
강원도 동해안 어느 도시의 소방서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파릇파릇한 봄
의 새싹들로
양간지풍 위세를 떨치던 산불에 대한 긴장감도 어느 정도 해소되어
이제부터 퇴직까지 남은 기간 차근차근 은퇴를 준비하리라 생각하고
하반기에 있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퇴직자반 교육도 신청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어나지도 상상하지도 말아야 될 안타까운 일로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처럼
은퇴는 갑자기 다가왔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던 어느 날
수중정화 활동을 하던
직원 1명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고 믿고 싶지도 않은 갑작스러운 동료의 사망은
늘 행복한 순간을 함께했던 가족들은
듬직하고 자상했던 가장과의 아픈 이별을 해야 했고
나를 비롯하여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위험한 순간을 함께했던 소방관들은
또 한 명의 소중한 동료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소방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직원들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이번일이 발생한 것은 나의 부덕의 소치이고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또 마음 한구석에 소방서장의 책임뒤로
이제는 더 이상 소방관 생활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는 나약함도 함께 따라왔다
지금까지 많은 선, 후배님들을 먼저 보냈건만
동료의 죽음은 언제나 익숙하지도 믿기지도 않은 비 현실이었다
매일 밤 안주 없는 소주 2병을 마시고 나서야 잠이 들 수가 있었고
그렇게 3일이 지나
동료는 다시 올 수 없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렇게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아내와 상의 없이
소방본부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그날 저녁
직장 생활관계로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사직원 제출을 이야기해야 하기에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먼저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3일 내내 수고 많았어요"
"여보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지금까지 했으면 충분히 잘 해낸 거예요"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내일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
그날 우리의 대화는 그 짧은 두 마디로 끝이 났다
다음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직원 제출 사실을 알렸고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품을 내주었다
그날만은
아내의 아들이 되어 정말 원 없이 울어 보았고
그녀의 토닥거림 하나하나가 한없이 작아져 버린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며칠 뒤 사직원이 수리되었고
퇴직일자까지 6월 30일 자로 정해지면서
나의 퇴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소방서에 남아있는 나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케비넷의 제복들을 정리하면서
비록 폐기해야 하는 옷들이었지만 제복 한벌 한벌이 소방관으로서의 자부심이었기에
정성을 다해 잘 접고 포개어 최대한 깨끗한 곳에다 처리했다
케비넷이 점점 비어가면서
소방서의 남은 시간도 카운트 다운되듯 줄어들고 있었고
퇴직이 일주일 남았을 때는 출동에 필요한 기동복 2벌만이 케비넷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크고 작은 출동들이 있었고
그 출동 한번 한 번이 소방관으로 하는 마지막 임무일 수 있다 생각하니
힘들기보다 소중함으로 다가왔다
시간은 인
정
사정없이 흘러간다는 말을 실감하며
빠르게
그날이 왔고
나는 담담
하
려 애쓰며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다시는 입을 수 없는 소방관의 상징 같은
애증의 주황색 기동복과 기동모를 착용하고 거울 앞에 서니
사명감과 패기 넘
치던
젊고 멋지던 소방관은 어디 가고
흰
머리와 주름이 조글조글한 늙은 소방관이 억지 미소를 짓고 있다
행여 직원들에 들킬라 서둘러 기동복을 벗고 나니
드디어 소방관을 은퇴하고 자유인으로 돌아가는구나
울컥함과 미묘한 감정들이 밀려
왔다
퇴근 시간 때까지 있을 자신이 없어 11시 이후는 휴가 신청을 내버렸다
나의 소방관으로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뿐
마지막 남은 결재를 하고
하나라도 남아 있는 나의 흔적이 있을까 한 번 더 체크해 본다
소방관으로의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행정과 막내 반장이 들어와 거수경례를 한다
"서장님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순간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울컥함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와
하마터면 까마득한 후배에게 눈물을 보일 뻔했다
사실 나의 은퇴는
공식적으로는 명예퇴직이었지만
결코
명예롭지 않았기에
그 어떤 퇴임 행사는 물론 직원들과의 사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드디어 11시가 되었고
강릉에서 아내가 도착했다
가저온 떡을 구내식당에 전달하며
지금까지 맛있는 밥을 해주신 주방 사장님에게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소방관이 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남편이 32년 소방관이면 아내도 함께 32년을 소방관으로 살았다고
현직때와 은퇴 후에도 영원한 인생 동지로 살아갈 아내와 함께
소방서의 각 부서를 돌며 정들었던 소방관 동료들에게
그동안의 고마움과 앞으로의 안전한 임무수행을 당부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부서를 방문하는 내내
그들과 웃는 모습으로 작별하고 싶어 올라오는 울컥함을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119 구조대 직원들과 작별할 때까지
평상시와 같은 믿음직한 소방관의 모습을 유지한 채
정들었던 소방서의 정문을 나설 수 있었다
정문 나설 때
어깨너머로 소방관들의 알 수 없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들렸지만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이미
얼굴
은
눈물이 홍수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 눈물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제 새롭게 자유인이 되는 한 사람이
32년을 소방관으로 살아온 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 때문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울음에 인색한 아내도 그날은 의리 있게 함께 펑펑 울어 주었다
32
부작 재난영화 속
소방관
은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처럼
그렇게 자유인이
되었다
그때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신 후배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유가족분들이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keyword
퇴직
소방관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