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성장 일기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인생은 무대요. 우리 모두는 연기자이며, 역할이란 가면을 쓰고 연기를 잘할 때 성공한다.’ 수업도 한 편의 연극이다. 학생이란 관객 앞에서 ‘선생님’이란 연기를 완벽하게 연기해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종의 연극. 내 연기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향상되고 있는 걸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수학, 영어샘이 한 팀을 이뤄 80여 명의 아이들의 담임이 되어 그들을 관리하던 학원이었다. 내 파트너 수학샘은 교육에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수학과 팀장이었다. 우리가 맡은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최상위 반이었다. 하지만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긴장이 풀려 지각, 결석도 늘고 공부량도 줄어들 때, 학원 경영진들은 우리에게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그 당시 가능했던 체벌이나 기합을 통해서 그들을 교육한다면 오히려 반발만 더욱 가져올 뿐이었다.
과연 무슨 방법으로 아이들을 설득해 그들이 긴장감을 갖고 꾸준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수학샘이 내게 수용하고 싶지 않은 제안을 했다. 하지만 딱히 내게 묘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 제안을 실행하는 날, 우리는 비장하게 칠판 앞에 서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고, 평소와 다른 우리들의 표정에 그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을 때까지 여전히 자리는 다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우리 사이에는 숨소리조차 멎은 듯 적막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나 빈자리가 다 채워지자 수학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새 너희들이 지각, 결석도 잦고, 숙제도 다 해오지 않고, 긴장감은 바닥을 치고, 이 모든 것이 너희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영어샘과 나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오늘 반성의 의미로 너희를 대신해 우리가 벌을 받겠다.’
수학샘과 나는 교실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민망함과 잠시 후에 저들의 얼굴을 어찌 마주할까 하는 두려움에 신체에 존재하는 모든 혈액이 얼굴로 쏠려 폭발할 듯 화끈거렸다. 아이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황당함에 어이없어하지는 않을까? 우리의 ‘쇼’에 비웃지는 않을까? 하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푸시업을 하면서, 동시에 학원 전체가 떠나가도록 ‘반성합니다.’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라는 복명복창을 하기 시작했다. 10회 정도하고 있을 때였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크게 외쳤다. ‘반성합니다.’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교실은 통곡의 장이 되었다. 50회의 푸시업을 끝내고 일어났을 때,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민망함이었을까? 미안함이었을까? 그 두 감정이 내게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우리들의 연기에 감정이 동요됐다. ’ 쇼‘까지 하면서 아이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말의 진정성에.
그 후 아이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학년 말이 될 때까지 지각, 결석은 사라졌고, 성적 또한 눈부시게 향상되었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그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2년 동안 그들과 호흡하면서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고, 연기력도 일취월장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부모 되었고, 가끔 만나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중의 하나라고. 과연 지금도 그런 ‘쇼’가 통할까?
Tip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
누군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끔 그 사람 앞에서 ‘연기’가 필요하다.
단, 그 연기는 진정성이 동반되어야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