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살아있는 사람도 죽이는 사랑의 힘

발칙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성장 일기

by always봄

그 당시 근무하던 학원은 규율이 엄격했다. 핸드폰은 학원 도착 시에 제출하고 하원 때 가져가야 했다. 수업 중에 부모님은 학원 유선 전화를 통해서만 아이들에게 긴급 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학원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유진이의 아버지였다.


‘오늘 유진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00 병원 장례식장으로 오라 전해주세요.’


데스크 직원이 수업 중이던 교실에 노크를 했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달하자 유진이의 큰 두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평소에 덜렁거릴 때가 많아 책이며, 우산 등등을 번번이 놓쳐서 할아버지가 전해주러 학원에 몇 번 오셔서 나도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건강하던 분이 그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황망할 따름이었다.


‘어서 가봐.’


‘네, 샘.’


슬픔에 들썩이는 유진의 어깨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5일 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유진이는 3 일상을 치르고 학원에 등원했다. 슬픔은 사라지고 예전의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돌아왔다.


‘유진아, 괜찮은 거지?’


‘가끔 눈물 나는 거 빼고는 괜찮아요.’


슬프지만 미소를 지으며 지금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그 아이가 대견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학원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유진이의 아버지였다.


‘오늘이 삼우제라 유진이 좀 집으로 보내주세요.’


데스크 직원이 내게 알렸고, 유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천둥 번개까지 치며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노신사가 나타났다.

유령이라도 본 듯 너무 놀라 의자에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우산을 들고 있는 그 노신사는 며칠 전에 돌아가셨던 유진이 할아버지였다.


‘우리 유진이 공부 열심히 하고 있나요?’


‘아... 그럼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할아버님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유진이 잘 부탁드려요.’


‘길도 미끄러운데 살펴 가세요.’


할아버님이 떠나고 바로 유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집에 다 와가요.’


‘방금 어머니가 전화하셨어.’


‘엄마가요? 왜요?’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데.’


‘할아버지가요? 정말이에요?’


‘오늘 할아버지 삼우제라며.’


‘샘, 식겁했잖아요. 그런 걸로 거짓말하면 어떡해요?’


‘빨리 학원으로 튀어와. 아버님 하고 같이.’


상담실에 유진이와 남자아이가 있었다.


‘네가 학원에 전화했던 유진이 아버님이세요?'


‘죄... 죄송합니다.’


‘유진아, 너 연극영화과 진학하는 건 어때?’


‘네? 저 심리학 전공할 건데요.’


‘지난번 우는 연기는 아주 최고였어.’


‘죄송해요.’


‘멀쩡히 살아있는 할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유진이랑 너무 놀고 싶어서 거짓말하게 했어요.’


‘유진아’


‘네?’


‘너 얘가 어디가 그렇게 좋니? 거짓말까지 시키는데.’


‘다 좋아요.’하며 웃는 유진이의 얼굴을 보자 더 이상 혼을 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좋으면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학원을 빠지고 놀고 싶을까?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사랑의 힘. 그날 나 또한 이성이 마비되어 그녀의 거짓말을 한 번은 눈감아 주기로 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학원 빠지면 샘 정말 많이 화낼 거야.’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감사해요.’


그 후 유진이는 양치기 소녀의 이미지를 벗고 연극영화과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지금도 새로운 반을 맡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유진이 얘기를 꼭 해준다. 거짓말의 사례로. 그러면 아이들은 꼭 묻는다.


‘두 사람은 계속 만나나요?’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절대 샘한테 거짓말하지 마.’



Tip 피곤하거나 아프다며 학원 수업 빠진다고 하는 아이 판별법:


신상 핸드폰 사준다고 나가자고 할 때, 나간다고 하면 100% 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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