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내겐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분명했다. 아기를 얻었지만 뱃속에서 쑥빠져나간 느낌은말로 하기 어려운상실감이었다. 출산의 아이러니였다.
출산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든지 상상도 못 했다. 지금까지 이런 젖소는 없었다. 이것은 젖소인가 사람인가를 방불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나의 존재는모유인 것만 같은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모든 산모들이 두려워하는 진통을 다 겪고 마지막에 제왕 절개하는 케이스를 겪다 보니 쓸데없는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나때문에 아기가 고생한 거 같고우리 아기는 선택받지 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모유수유에 집착했다. 좋은 걸 주지 못했으니 다른 걸로 채우고 싶은논리였다.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호르몬때문에 스스로를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시간은 이제 더 이상 내 편이 아니었다.뒤돌아서면 모유 유축을 하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가 게워낸 옷을 갈아입히고 빨래를 하고의 연속. 그런데도 몸무게는 줄지 않았다. 출산 전으로 돌아가지 않은 몸무게만큼 내 마음도 울적했고 나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호르몬의 변화로 산후우울증 뿐만 아니라 탈모도 겪어야 했다. 머리를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쑥쑥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멋과는 아주 거리가 먼 한 마리의 사람 같이 보였다. 겉모습과 더불어 내 속마음도 늙어갔다.
이 사회는 엄마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되어있었고 아기랑 잠시 카페라도 가서 숨통이라도 트자 하면 유난히 내게만 투덜거리는 종업원이 있었다. 아기가 보채면 잠시 동안의 휴식은 바로 끝이 난다. 카페에서 즐기는 밀크티 한 잔도 나에겐 사치가 된다. 내 스스로에게도 주변 시선을 봐도.
모든 것들로부터 초연할 순 없을까.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본다.출산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 그 많은 서러움과 어려움들이 있지만, 출산이 아니었다면 또 이만큼 깊이 있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