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떼기 9_
냉동실에서 꺼낸
옥수수알 한 줌
손가락 아렸던
지난 여름이
올공올공 잠들어 있다.
아이들이 제법 컸다고
저마다 방문 닫고 들어갔으니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지난 여름 나는,
여름보다 뜨거웠다.
계절이 바뀌고
시험이 끝나고
새학년을 준비하며
아이들의 스케줄이 변동되었다.
겨우 한 두 시간
그저 순서만
보태지고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100mg 분동 하나 얹었을 뿐인데
일상은 두 손 들고 올라가 버리고
배열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이아몬드는 흑연이 되고
흑연으로 돌아온 나의 몽당 시간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들고 끄적인다.
시라기엔 부끄럽고
메모라기엔 억울한
글자들을 늘어놓으며 연명한다.
냉동실 문을 열어
옥수수알 한 줌 꺼내
밥을 안친다.
옥수수알에 갇혀 있던 여름이
압력밥솥에서 달짝지근하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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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마쓰이에 마사이의 소설 제목을 차용하였습니다.
2021. 12. 12. (일)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