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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a 윤집궐중 Jan 22. 2022

39. 공감의 문제(feat. 옷소매 붉은 끝동)

눈발떼기 22_ 에디트 슈타인의 공감, <옷소매 붉은 끝동> 정주행


공감, 이해, 친함


"엄마는 공감이 돼야 이해돼요, 아니면 이해가 돼야 공감이 돼요? 저는 이해가 되어야 공감이 되거든요. 이해가 안 되는데 공감해야 할 때 치는 맞장구는 '공감하는 척' 하는 거고요. 엄마는 어느 쪽이세요?"


딸아이가 불쑥 물었다. 요즘 [에디트 슈타인]을 읽으며 '공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던 것이 아이의 귀에 들렸나 보다. 



공감이라는 게 뭘까?
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공감이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그런 상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다른 사람의 일인데 '깜짝 놀라며 뛸 듯이 기뻤던 경험'이 있었다면, 이때 그 사람과 나는 어떤 관계인 걸까? 타인과 타인 사이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의 대화는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공감'이라는 이 익숙한 단어가 점점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렇게 않게 '공감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그러기로 작정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또 한편으로 '능력'이라는 말을 덧붙여 놓은 걸 보면,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공감하게 되거나, 공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바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동시에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떠한가? 공감하고 싶지만 공감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고, 대개의 경우 공감은  '공감하고 싶다'는 의식과 무관하게 불현듯 찾아온다.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글을 읽을 때도 그렇다. 무언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그 마음의 정체를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워서 댓글을 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걸 보면 이해를 해야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현상이 먼저 일어나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해석해 내는 과정이 '이해'인 것 같다.


"'공감'은 언제 일어나는 걸까?" 

"친하면 공감이 잘 돼요."


딸아이의 대답을 들으니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분명히 그렇다. 친한 이의 말에 공감이 더 잘 된다. 그런데 그 사람과 어떻게 친해진 걸까? 공감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친해지는 것이고, 친해지는 만큼 공감의 조건의 점점 더 충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함은 공감의 조건이라기보다는 결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 최초의 공감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친한 사람뿐 아니라, 전혀 친하지 않은, 심지어 전혀 모르는 이의 말이나 글에 공감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낯 섬이나 의외성이 공감을 더 특별한 것으로 부각하기도 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내가 안방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부녀는 식탁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기질이 맞는다는 것은 저런 것인가 보다. 나는 생각거리가 생기면 바로 혼자 있고 싶어지는 반면, 남편은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한다. 내가 못하는 일을 아이는 즐겨서 정말 다행이다.)


".... 그러니까 이런 걸 공감이라고 하는데, 친구란 이런 게 가능한 관계를 말하는 거지."

"음, 그렇담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네요? 그냥 친구는 있지만 진정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건가...?"


남편과 아이의 대화를 들으며 '공감'이라는 낱말이 여러  층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내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심리학에서의 공감

현상학에서의 공감

에디트 슈타인의 공감


에디트 슈타인이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공감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하는 공감이 어떤 상태인지(내가 사용하는 공감의 의미와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내가 공감했던 순간들'을 샅샅이 뒤져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옷소매 붉은 끝동


얼마 전에 종방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시청률이 높았다고 해서 검색해 보니, 남자 주인공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번에는 '이준호'를 검색했다.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고 한다. 선입견에 물든 나는, 내 취향은 아니겠다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자리 걷기(하루에 7777보를 걸어야 하는데, 다 못 걸은 날에는 이렇게 편법으로 채운다.^^:)를 할 때 틀어놓는 용도였다. 그런데 점점 걸음수를 채운 다음에도 앉아서 보게 되었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연이틀 밤을 새우며 정주행 했고, 마지막 2회는 유료 결제까지 해서 봤다. 감정이입이 마구 되어서 저릿저릿한 심정으로 보았고, 어제는 하루 종일 그 언저리에서 검색하며 하루를 보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감정이입이고, 그 강도가 세니까 이걸로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이 드라마에 마음이 끌렸을까? (한 장면도 눈 떼지 않고 숨 죽이며 볼 만큼 몰입했던 것은 아니지만(중간에 종종 잠들기도 했고, 다른 일하며 귀로만 듣기도 했다), 끝까지 살뜰히 챙겨 봤다는 것은 분명히 마음을 잡아끈 그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 마음이 끌린 이유

1.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악역이 없다.
2. 정조와 성덕임의 밀당 아닌 밀당이 이해된다.
3. 역사 속 정조의 운명을 알기에 '엄마의 마음으로' 정조를 지켜보았다(여기에는 배우 이준호의 매력도 꽤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4. 성군과 성덕임이라는 두 가지 꿈(의무와 사랑)으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정조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5. 페미니즘, 인권, 계층, 개인을 구속하는 제도 등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6. 클리셰로 흐르는 듯하다가 턴 하는 대사와 장면이 감칠맛 난다. 
7. 하고 싶은 말을 하되,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연출?) 의도가 감지되었다.
8. 시청자를 상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보자고 질문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연출과 작가가 궁금해져서 검색하다가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지점이 소설, 대본, 연출 가운데 어디에 가장 많은 지분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대본집과 소설도 읽어볼 생각이다. 


'의빈 성씨'를 검색해 보니 중요한 대목들의 기저에 팩트가 탄탄하게 들어 있다. 정조의 후궁 가운데 유일한 승은 궁녀이고, 정조에게 각별한 여인이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드라마 내용 대부분이 픽션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픽션이라고 해서 그 각별함의 정체를 드러내는 서사가 설득력을 잃는 것은 아니지만(픽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제대로 감정이입되었다), 그 서사가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팩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감동이 증폭되었다.  


그해에 정조가 승은을 내리자 울면서 "세손빈(효의왕후)이 아직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했으니 감히 명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죽음을 맹세하며 사양했다. 이에 정조는 의빈의 뜻을 받아들이고 종용하지 않았다.
1773년(영조 49년)에 청연공주, 청선공주, 궁녀 영희, 경희, 복연과 고전소설 《곽장양문록》(전 10권 10책)을 국문 필사하였다. 이 소설은 필사 시기가 알려진 소설 가운데 최고로 오래된 필사소설이며, 의빈이 필사한 부분의 하단에는 '의빈 글시'라고 표기되어 있다.
황윤석의 《이재난고》에 의하면 1780년(정조 4년) 12월에 의빈 성씨로 추정되는 나인이 임신한 지 여러 달 되었고 1781년(정조 5년) 7월에는 의빈 성씨가 임신 중이었다. 반면에 정조의 《어제의빈묘지명》에서는 합궁한 달에 바로 문효세자를 임신했다. 즉, 원빈 홍씨와 화빈 윤씨가 간택되고 나서 1781년(정조 5년)에 정조가 다시 승은을 내리자 의빈 성씨는 거듭 사양했다. 이에 정조가 의빈의 하인을 꾸짖고 벌을 내리자 정조의 승은을 받아들였다.
1782년(정조 6년) 8월 26일 전에 상의(정5품)가 되었고 문효세자가 태어난 당일에 소용(정3품) 봉작을 받았다. 12월에 작호(爵號)를 올리는 일을 도목정사(관리의 치적을 심사하여 면직하거나 승진 시킴)에서 거행했고 1783년(정조 7년)에 의빈(정1품)으로 진봉했다. 정조는 좌의정 이복원(李福源)과 우의정 김익(金熤)에게 빈호를 의논해서 정하라고 했으나  직접 '의(宜)'자로 정했다.
의빈은 마음이 약해서 칠정(七情, 마음의 병) 증세가 있는데 문효세자 사망 이후 중병에 걸렸고 본궁으로 피접을 떠났다가 조금 나아지자 다시 돌아왔다. 정조는 매일 의빈이 씻는 모습을 보고, 약을 제조하고 달일 때는 항상 검열했으며 약봉지와 약그릇은 모두 침실 안에 보관하고 쓰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786년 9월 14일 미시(오후 1시~3시)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사망했다.
《어제의빈묘지명》과 《이재난고》에 기록된 의빈의 증세는 대부분 임신중독증의 증상(해산할 달에 기력이 가라앉음, 정신 혼미, 사지가 뻣뻣해짐, 명치 부위의 통증 등)과 일치한다. 임신중독증의 원인 중 하나가 노산인데 의빈 성씨는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34세에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임신중독증은 치명적인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의빈 성씨 역시 결국 졸서했다.
1786년(정조 10년) 11월 20일에 상계군(常溪君)이 의문사 하고 12월 1일에 정순왕후는 의빈과 문효세자는 온갖 증세가 처음부터 괴이 했는데 이는 은언군이 아들 상계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독살 했다고 주장하며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식음을 전폐하겠다는 언문 교지를 내렸다. 이후 구선복(具善復)이 상계군(常溪君)을 추대 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선복은 능지처사 되고 은언군(恩彦君)은 강화도로 유배 되었다. 12월 27일에 손용득(孫龍得)은 내관 이윤묵(李允默)이 의빈을 독살했다는 의혹스러운 소문이 파다하다고 했다. 정조는 의빈의 약을 조제하고 달일 때 반드시 직접 검열했기 때문에 근거 없는 말이라고 했다. 이에 손용득은 유배형을 받았고 이윤묵은 당시 이미 유배 중이었다. 또한 민간에서는 화빈 윤씨가 독을 썼다는 소문도 있었다.


한 두 줄에 불과한 역사적 사실에  <옷소매 붉은 끝동>이 부여한 표정과 목소리, 거기에 나는 감정 이입되었다. 소설과 대본, 연출, 배우 가운데 어느 쪽을 향하여 더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어쩌면 그 모두에게) 매우 감사하고  '친밀감'을 느낀다.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게 '공감'이 일어났다. 이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순히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실지로 몸의 세포들이 반응했다.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들던 몇몇 씬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리로 미리 생각하고, 다 이해하고 난 뒤에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이 아니다. 몸이(감정이) 먼저 반응했고, 그 경험이 그것을 헤치며 들여다보도록 이끌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지극히 사적인 나의 경험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그것들로 다 설명되지 않고 남겨져 있는 무엇까지.



(세 번째 단락을 써야 글이 마무리될 거 같은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 에디트 슈타인>도 조금 더 읽고, 소설 <옷소매 붉은 끝동> 부터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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