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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a 윤집궐중 Jan 20. 2022

38. 노란 꽃 향기

동몽교실 4_ 그림책『코를 킁킁』수업 후기

때: 2011년 3월 4일 금요일 아침

곳: ** 초등학교 1학년 5반 교실        

  

우리가 만난 지 사흘째, 함께 공부한 지 이틀째 되는 아침이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책인 『코를 킁킁』을 읽어주었다.     


선생님: 우리 교실에도 노란 꽃이 있을까요?

아이들: 네에~ 있어요~

선생님: 아, 그래요? 음, 어디에 있나요?

아이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품 판에 있어요. 화분에도 있어요.

선생님: 아, 그렇군요. 우리 교실 곳곳에 노란 꽃이 참 많네요. 그런데 우리 교실엔 이 책에 나오는 꽃처럼 향 기가 나는 진짜 꽃도 있어요. 보이나요?

아이들: 정말요? 어디에 있어요?

선생님: 한번 잘 찾아보세요. 우리 교실에 분명히 있거든요.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 여기저기를 몰려다니며 찾는다. 사물함도 열어보고 장식장 문도 열어 보고, 심지어 멀티데스크 아래쪽까지 기어들어 갔다가 먼지와 함께 빠져나온다. 


교실 가장 뒤쪽에 있는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아이는 부산한 아이들 틈에 혼자 가만히 서 있다.   

  



그 아이: 저희들이 꽃 아닌가요?

선생님: 그대로 멈춰라!

아이들: (모두 멈췄다.)

선생님: **이가 좋은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여러분이 노란 꽃인 것 같다고 해요.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그런 것 같나요?     


네, 아니오 소리가 왁자지껄 섞인다.      


선생님: 음, 여러분은 이 책에 나오는 ‘노란 꽃’일까요, 아니면 ‘곰이나 다람쥐, 달팽이’일까요? 선생님 생각에 여러분은 향기를 맡고 킁킁거리며 달려가고 있으니까...

아이들: 곰이랑 달팽이예요!

선생님: 그럼 노란 꽃은 어디 있을까요? 계속 찾아보아요.     


 아까 그 아이의 옆 분단에 있는, 역시 마지막 줄에 앉은 여자아이가 팔을 높이 치켜든다.     


선생님: 네, **이 말해 보세요.

다른 아이: 선생님이 꽃인 것 같아요.

선생님: 그대로 멈춰라!

아이들: (그대로 멈췄다.)

선생님: **이가 선생님이 꽃이래요. 그럴까.....요?

아이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맞아요. 선생님이 꽃이에요, 선생님이 꽃이라고요? 킥킥킥, 와, 선생님이 꽃이래~

선생님: 맞아요! 선생님이 꽃이에요. 선생님한테 꽃이 있어요.     


아이들이 달려 나온다. 교사 코트 주머니를 열어보고, 바지 주머니도 확인해 본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 꽃은... 선생님 마음속에 있어요.

선생님: 아, 맞아요, 맞아! 꽃은 선생님 주머니가 아니라 선생님 마음속에 있어요. 여러분 보이나요?

아이들: 아~니요. 안 보여요.

선생님: 음, 왜 안 보일까...?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아이들: 몸속에 있어요.

선생님: 여러분은 마음을 볼 수 있나요?

아이들: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한 아이에게 교사가 다가선다.     


선생님: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하게) **야~

선생님: (굳은 표정으로) **야!

그 아이: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아, 볼 수 있어요!     


(작은 체구지만 야무진 느낌을 주는 이 아이, 마음도 참 명랑하구나.)     


아직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아이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시연한다. 아이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방긋 웃는다.      


(그래, 너는 지금 노란 꽃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거야.)     


교실은 마음을 볼 수 있다는 아이들과 없다는 아이들로 왁자지껄하다. 교사는 그 달콤한 소란을 즐기고 있다. 그때 갑자기 한 아이가 손을 든다. 

     



한 아이: 선생님, 우리 마음에는 꽃이 없나요?

선생님: 와~,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사실은 선생님 마음에만 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에도 꽃이 있어요.

아이들: 진짜요? 그런데 왜 안 보여요?

선생님: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마음에 있는데 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걸까요?

아이들: …….

선생님: 음, 그 꽃은 언제 우리에게 보일까요?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걸까요?

아이들: 봄이 오면요.

선생님: 아, 맞아요. 우리 교실에 ‘봄’이 오면 우리는 그 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한 아이: 그런데 언제 봄이 와요?     

다른 아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봐요.

선생님: 그래요. 겨울이 지나면 우리 교실에 봄이 올 거예요. .... 그런데, 가만! 우리 교실에 봄이 오고 있나 봐요.

아이들: 정말요? 어디요, 어디?

선생님: 지금 우리 반 친구들이 ‘코를 킁킁’ 거리며 어딘가로 막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에요.


몇몇 남자아이들이 코를 킁킁거리는 흉내를 내며 그림책 속 동물들처럼 달린다. 교실은 또 한 번 소란스러워진다.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볼 수 있어요? 언제 봄이 와요? 어디로 가야 노란 꽃을 볼 수 있어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 질문이 다른 질문에 묻혔다가 다시 솟아오르고 묻히기를 반복한다. 교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 곰, 달팽이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있다. 그들을 깨운 것이 ‘노란 꽃’의 향기라는 걸, 그 꽃은 바로 우리 마음에서 피어난다는 걸 녀석들이 ‘발견’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이런 상상해 볼 수 있는 우리 반은 ‘동몽교실’이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이가 노란 꽃 화분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와, 화분 가지고 왔구나, 창가에 놓고 보자’라고 말했더니 화분을 창가에 두고 다시 와서 말한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 ‘노란 꽃’을 가지고 온 거예요.”     


나의 무신경을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감동이 앞선다.    

 

-

11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신입생이었던 이 아이들은 이제 곧 고3이 될 것이다. 달리고 있는 아이들의 코끝에 어느 한순간, 노란 꽃 향기가 스치기를 기도한다.      






2011년 3월 4일 초고

2011년 3월 26일 정리

2022년 1월 20일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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