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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한 달팽이 Aug 07. 2024

잘 지내? 회사는 잘 다니고 있어?

두 번의 퇴사 위기와 세 번의 부서 이동


2024년 2월 13일,

첫 직장에서 7년을 꽉 채우고 햇수로 8년 차가 되었다.


오랜만에 주고받는 연락 속에서

"잘 지내? 일은 어때? 회사는 잘 다니고 있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안부 인사처럼 가볍게 건네거나, 근황을 확인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힘든 시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아직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고, 벌써 8년 차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하루하루 쌓여온 날들이 어느새 나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8년이 되었다.

만약 입사할 때 "여기가 너의 첫 직장이고, 앞으로 8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라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오래 다니지 못했을 것 같다.


문득, '나는 어떤 생각으로 8년을 다녔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리해 보니, 4년 차와 6년 차에 있었던 두 번의 퇴사 위기와 세 번의 부서 이동이 떠올랐다. 


8년 근속 플로 차트 (flow chart) (사용 프로그램 : EdrawMax Pro)



1. 2017-2019 (Feat. 2015-2016)


이렇게 8년을 다니고 있는 나의 첫 직장은 조명회사이다. 두 번째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조명' 전문 회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입사하면서 8년의 시간이 시작됐다.

*외주인력이 아닌 내부 구성원 혹은 내부 구성원들이 진행하는 일을 의미


과거의 나는 첫 번째 대학에서 다른 전공으로 졸업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특별한 목표 없이 불안하고 막막한 날들이 반복되었고,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가던 중, 문득 이렇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잘못된 출발했다고 느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27살에 늘 꿈꾸기만 하던 '디자인'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실무 중심으로 빠르게 배울 수 있는 2년제 대학에 입학했고, 7살 어린 동기들과 함께 두 번째 신입생이 되었다. 


시작할 때는 확신보다 두려움이 더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내가 원하던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새롭게 배우는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는 일은 행복하고 즐거웠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라고 느껴진 시간들이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가장 열심히 산 2년이었고, 연속으로 밤을 새워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시간을 보냈기에, 첫 직장은 나에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곳이 되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무엇이든 배우는 것이 중요했다. 실무를 접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웬만한 일들은 견딜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이곳에서는 신입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다. 


지나고 보니, 첫 번째 전공이 아니었던 것이 초반의 시간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하고 싶던 일이었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감사함과 배우는 즐거움이 모든 것을 견디게 해 주었다.



2. 2020


4년 차가 되자, 쏟아지는 업무와 압박감, 잦은 야근 등으로 에너지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이나 성취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마저 바닥이 났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가득 차, 머릿속에는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절차에 따라 2개월 동안 마무리와 인수인계 시간이 주어졌다. 업무가 이관되면서 숨통이 트였고,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니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해졌고, 퇴사 전 마지막 면담을 진행했다. 이후 업무 분담 등을 조율한 끝에 결국 회사를 다시 다니기로 했다.



3. 2021-2023


업무가 반복되며 정체기가 찾아오던 무렵, 신설되는 '마케팅팀'으로 옮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하였고, 그것이 이 회사에서의 첫 번째 부서이동이었다.


기존과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런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잠시뿐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너무 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보면, 부서 이동 후의 3년은 나를 갈고닦는 자아성찰의 시간이었다. 이때만큼 스스로를 많이 돌아본 적은 없었다. 덕분에 많이 성장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염증이 악화되었고, 결국 터진 충수가 복막염으로 진행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성장한 만큼 스트레스도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4. 2024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 내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 회사의 새로운 브랜드를 키우는 일'이다.

26년간 B2B와 B2G 분야에서 제조업에만 집중해 회사가 이제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번째 부서 이동 때처럼, 이번에도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막막한 건 여전하지만, 이번엔 이전의 경험들이 있어 좀 더 담담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힘들기만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경험들이 오히려 큰 힘이 된다.



2017~2024 인생 곡선 (사용 프로그램 : Photoshop)



입사 초기에는 어디든 2년은 채워야 한다, 너무 짧은 경력은 오히려 해가 된다, 최소 2년에서 3년 정도가 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서 '입사하면 무조건 2년은 채워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막상 2년을 채우고 나니 그동안 쌓은 경력이 다소 애매하게 느껴졌고, 조금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4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기준을 훌쩍 넘긴 8년이 되었다.


사실 입사할 때만 해도 조명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조명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일에 이렇게 진심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고비를 넘기고 8년 차가 된 지금, 결국 나는 조명도, 일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주어는 농구 │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 완전판, no.24, pp.70-71






그래서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면서,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해내고 싶다.


또한, 이곳에서의 과거와 현재를 브런치에 차근차근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 기록들이 지나온 경험들과 앞으로 쌓아갈 회사 생활의 소중한 아카이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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