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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한 달팽이 Aug 22. 2024

브랜딩의 발단

가지고 있는 것 다시 보기


덥석 브랜드를 키워나가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겁이 났다.

1년 전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었기에 더 두려웠다.


어느새 '브랜딩'은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됐는데, 막상 해보려고 하니 도대체 그 브랜딩이 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마치 얼굴은 익숙하지만 친하지 않은 직장동료처럼, 잘 아는 듯하면서도 실은 하나도 모르는 느낌이었다.


거의 한 달을 책부터 유튜브까지 손에 닿는 모든 자료를 찾아다녔다. 조사를 하면서 다시 느낀 건 정말 많은 브랜드들이 흐름에 맞춰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인지도와 팬덤도 함께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특히 관련 분야에서 이미 경력을 쌓아온 사례들을 보면서 '시작점이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닐까...'라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앞서나간 경험담들은 유익한 정보로 가득했지만, 시작 단계에 있는 내게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알고리즘의 영향이었는지 어느 날 유튜브 목록에 'MoTV' 채널의 영상이 떴다. 그렇게 발견한 이 영상은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


프릳츠 김병기 대표가 말하는 카페 브랜딩. 창업. 경영. 마케팅. 일하는 방식. 직업인 교육. 조직문화. 브랜드 디자인, MoTV, 2020년 9월 23일

출처 : https://youtu.be/txidZue_9WA?si=QjcgnlEU60mlartv


모춘 : 해보니까 어떠세요?

병기 : 너무 다르죠. 어떠세요?

모춘 : 그래서 찾아왔어요 지금.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병기 : 너무 다르죠. 디자이너 하면.. 이제 멋있게 그리시고 이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산시장 다니고, MOQ 확인하고

모춘 : 그게 반 이상인 것 같아요.


결과물만 봐온 입장에서는 다들 척척 잘 해내는 것만 같았고, 이면에 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질적인 고민과 현실적인 조언담긴 대화를 통해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다.



내가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내가 경험한 일들이 똑같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나는 인지도와 마케팅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남이 가진 것만 너무 크게 보고 있었다.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라면 '제품 제조'가 브랜딩의 중요한 일부이자 본질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쉽게 여긴 채 불리한 시작이라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제품을 설계하고, 업체를 방문하고, MOQ*를 확인하는 등의 익숙한 일들이 내가 가진 경쟁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용기가 났다. 브랜딩과 관련된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기죽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한 달을 보냈는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만 집착했던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졌다.

*Minimum order quantity(MOQ) : 기본으로 주문해야 하는 최소 수량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제품 제조의 과정을 몸체라고 했을 때, 이제부터 할 일은 그 몸체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전체 과정으로 보면 두 가지 중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었고, 이것만으로도 난이도가 많이 낮아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곰곰이 생각해 보니,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었다. 타고난 감각이 있거나 트렌디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선입견, 마케팅 경력과 인지도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나를 짓눌렀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가지지 못한 것을 더 크게 본다고들 하는데, 나도 거기에 완전히 빠져 내가 가진 것과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8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내 경험처럼, 다양한 브랜드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 또한 치열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졌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저 결과만 보며 쉬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경험 순서에 따른 차이


그제야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정리해 보았다.


1. 브랜드 설립 및 인지도 상승

2. 제품 제조 (시안, 제품 설계, 목업 제작, 금형 제작, 제품 양산)

3. 판매 및 마케팅


신규 브랜드의 제품 제조 및 판매 과정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해 본다면, 제조 경험만 있는 우리는 1단계와 3단계에서, 마케팅 역량을 보유한 전문가는 2단계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먼저 경험을 쌓은 후 다른 단계를 접하게 되므로, 겪어보지 못한 단계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떤 것을 더 먼저 경험했느냐의 순서 차이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2단계에 대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유리할 뿐 그 과정이 절대 술술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질지 모르고,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생길 수도 있다. 다만, 시행착오를 덜 겪거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확보한 에너지를 시작점에서 발생한 격차를 줄이거나 더 부족한 단계에 쏟을 수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노력해서 부지런히 채워나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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