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 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이 작품을 다루는 것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말 귀한 작품이기에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잊힌 드라마가 되었을 즈음 다루는 것도 유의미해 보인다. 또한 수백 번 감상한 것을 기념하고 작품을 존중하는 의미로 기록하고자 한다.
내용이나 주제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기보다 그와 관련된, 혹은 관련되지 않은 이 작품의 특징을 다루어 보려 한다. 첫 번째는 아역배우와 관련된 부분이다.
인물의 어린 시절을 먼저 보여준 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인이 된 인물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개방식이라면 이 작품은 아역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분량이 매우 적고 등장하는 방식이나 시점이 다르다. 성인 배우의 회상에 의해 등장하며 같은 회상이 여러 번 반복되기보다 극 후반부에 새로운 내용을 회상을 통해 내용을 설명할 때 추가적으로 등장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보영 배우도 좋지만 김소현 배우를 무척 좋아하기에 방영 당시 성인 혜성의 모습이 먼저 나온다는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생각해 보면 시청자라고 인물의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전개되면서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극 중 인물들과 함께 알아가는 느낌이 내용과도 잘 맞아서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장르의 결합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법정,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미스터리. 언제 봐도 이 모든 장르를 한 작품에 녹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수하야, 일어나 아침이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야, 생뚱맞게 집에서 왜 그런 거 입고 있어, 이거 설마 꿈이야?
그럼 이게 꿈이지, 생시냐? 넌 꿈도 유치 찬란하다. (드레스를 들어 올리며) 콘셉트가 이게 뭐니, 이게. 어?
왜, 예쁜데…/됐고, 꿈이나 빨리 깨. 나 이거 너무 불편해.
싫어, 내 꿈이야. 내가 깨고 싶을 때 깰 거야.
(포옹 도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피 흘리는 혜성을 보고) 이게 뭐야? 어?! 안 돼, 이러면 안 돼! 일어나, 정신 차려!
그저 그런 꿈속 로맨스 장면인 줄 알았으나 이내 혜성은 수하에게 현실에서의 말투로 이야기한다. 그러다 혜성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현실에서 민준국이 범죄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며 시청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한 장면 내에서 장르 전환이 자연스럽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박혜련 작가 시리즈'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집필한 '피노키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서로 닮은 듯 다르다. 이종석 배우가 모두 남자 주인공을 맡은 점이 가장 눈에 띄지만 이외에도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개성 있는 설정, 명확한 주제의식이 특징이다. 세 작품 모두 효과적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작품 중간중간에 혹은 후반부에서 못 박은 곳에 또 박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여러 번 반복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대사나 장면에서는 다소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기본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검색했을 때 SBS 공식 홈페이지에 배우뿐 아니라 작가 개인 채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여러 설정과 전개방식을 통해 변주해 낸 덕분에 세 번째인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볼 때 비슷한 느낌은 확실히 있었지만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영 시작 전부터 극 중에서도, 실제로도 열 살 연상연하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보면서 나이 차를 이렇게 활용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인 9살, 19살 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십 년 뒤, 혜성을 계속 찾아다니는 수하의 모습을 보면 그리 어색하지 않다. 19살, 29살 때의 만남도 수하가 아직 미성년이기에 잘못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어느 순간 고등학생인 것을 잊게 되고 필요에 따라 대사로 시청자를 문득 상기시킨다. 혜성이 수하의 첫사랑이라는 설정과 수하가 경찰대에 진학하기까지 겪는 우여곡절은 나이 설정을 잘 활용한 디테일의 예시이다.
2013년도의 SBS 드라마 라인업은 지금까지도 기억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시작으로 여름부터 연말까지 방영한 작품들이 이례적으로 연달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해이다. 이 작품은 시청률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 자체로도, 주연배우들의 연기경력 중 일부로도, 본인을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에게도 존재감이 남다르다. 반복감상을 즐기는 본인 기준으로도 정말 많이 봤지만 여전히 이따금씩 생각 나는 작품이다. 특정 배우에 대한 호감, 특정 장면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등 저마다의 이유로 추억 상자 속에 있는 다양한 작품 중 이 작품만큼 다시 볼 만한 이유가 많은 작품은 앞으로도 만나기 쉽지 않을 듯하다.